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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오로 May 05. 2021

배 나온 여자

산모의 배가 되기까지

    나는 배에 힘을 주고 다니는 습관이 있다. 운동을 거의 하지 않는 내가 내  몸뚱이에게 제공하는 유일한 복근 운동의 일환이기도 했고, 술로 다져진 나의 뱃살을 잠시나마 감추고자 함이기도 했다.  서 있거나 걷는 동안이라도 허리와 배에 힘을 주고 다니면 날씬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오전 공복에는 홀쭉하던 배도 음식이 들어차는 오후가 되면 어느새 볼록 존감을 내뿜는 녀석이기에 방심은 금물이었다.


      그러나 내 배에 세입자가 들어선 후부터 내 배는 내 것이 아니게 되었다. 배에 힘을 준다는 것은 세입자를 향한 강한 공격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의식적으로라도 힘을 빼고 다녀야 했다. 임신 초기 아직 나와서는 안될 시기임에도 이미 스리슬쩍 나와버린 배가 날 조롱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힘은 못주고, 배는 나오니 사람들을 만나면 괜히 쑥스러웠다. 열심히 숨겨왔던 뱃살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기분이었다.


    임신을 하기 전에는 임산부가 배 나오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고, 임산부는 배 나온 사람이라는 명제가 무조건적으로 성립하는 줄 알았다. 몸소 임신을 하고 보니 10달의 임신 기간 중에서 길게는 5개월까지 임산부라고 구분 지어질 만큼의 배가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론 하루아침에 배가 나오진 않을 것이라고 예상은 했으나 이렇게까지 오래 동그란 임산부 배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약간 충격이었다. 그 기간 동안 나는 그냥 배 나온 사람일 뿐이었다.


    임신한 산모의 배는 신성하고 아름다운 것 그 자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아보면 그 배는 우리가 흔히 D라인이라 말하는 그 배였지 D라인이 되기까지의 똥배 비스무리한 그것은 아니었다. 나는 분명 임산부이지만 지나치며 만나는 사람들은 내가 임산부라는 걸 모를 테니, 신경 쓸 필요 없다는 걸 알면서도 괜스레 불쑥 나온 배가 부끄럽기 그지없었다. 무의식에 자꾸만 배에 힘이 들어가는 걸 다시 빼느라 임신 초기 굉장히 애를 먹었다. 차라리 빨리 티 나게 배가 나왔으면 싶기도 했으나 고작 6~10cm의 아기 세포가 지내기에 이 정도 똥배 수준의 자궁도 펜트하우스일 테다.


    미미하고 어정쩡하게 튀어나온 배는 놀랍게도 내 옷태까지 바꿔버렸는데, 임신하기 이전이랑 똑같이 입어도 묘하게 태가 달랐다. 특히나 바지에 상의를 입었을 때 그 어정쩡함은 빛이 났,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상한 지 설명할 수 없지만 어딘가 이상한 그런 모양새였다. 상황이 이러한 데다 다리도 붓고 허리도 조이니 결국 나도 임부 원피스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임신 6개월 진입을 얼마 남기고 있지 않은 지금 내 배는 어정쩡한 똥배에서 임산부 배로 변해가는 중이다. 그 배로 변하기 위해 나는 매일 조금씩 통증을 느낀다. 자궁이 커지면서 배가 콕콕 아픈 거라고 한다. 배가 커지면서 벌써 허리가 아프고, 몸이 둔해져 내 몸이 점점 내 몸 같지 않아지고 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내가 아픈 만큼 세포였던 아기도 이제 어엿한 인간의 모습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모든 변화들이 놀라우면서도 아직 잘 실감이 나지 않는다.


    인생에 몇 번이나 이렇게 극적으로 배 나온 여자가 되어볼 수 있을 까? 매일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나지만 그 와중에도 손꼽히는 신기한 경험을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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