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생명의 존재는 언제나 축하받을 일이지만 모든 부분에서 축복만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니었다.
임신확인서를 들고 부서장님께 면담을 요청했다. 잦은 인력 유출로 고민이 많던 시기에 나의 갑작스러운 면담요청이 부서장님께 그리 달가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회의실로 가는 내내 '무섭게 왜 그러냐'며 긴장하신 눈치였다. 임신확인서를 확인하신 부서장님은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는 표정으로 나에게 축하와 격려의 말을 전하셨다. 출산까지 10개월, 출산휴가 3개월 그리고 육아휴직 1년 동안 내 앞에 앉은 이 인력을 맨파워에서 조금씩 제외해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분명 잘못한 일은 아니었지만 어쩐지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부서장님과의 면담이 끝나고, 나와 직접적으로 함께 일하는 리더와의 면담에서도 정확하게 똑같은 표정과 말투로 희비가 엇갈렸다. 대단히 자연스러운 현상에 대한 축하와 경험자로서의 격려를 전하면서도 한 편 아쉬움과 순간적인 당혹스러움이 혼재했다. 가뜩이나 인력난에 시달리는 부서인 데다가 진행하는 과제까지 늘어나고 있어 한 사람 한 사람이 아쉬운 상황인 것을 나도 모르지 않았다. 더욱이 신입과 전배 인력이 주를 이루는 이 부서에서 7년째 같은 업무를 보고 있는 나는 나름 귀한 인력이었다.
내가 속한 부서는 조직이 매우 젊고, 남성이 주를 이룬다. 그렇기에 이 부서에서 여성의 결혼과 임신은 근 10년 동안 내가 유일하다. 임신한 인력이 오랜만이라 다들 적잖이 당황했고 조심스러웠다. 사내에서 모성보호(임산부) 인력으로 구분되고 나면 8시간 초과 근무를 할 수 없고, 휴일에도 출근할 수 없게 된다. 초과근무가 잦은 부서의 특성상 하루 8시간'만' 하는 근무로는 '온전히 일하는 인력'이라는 느낌을 주긴 어려웠다. 자연스레 내게 할당되는 업무가 줄어들었다.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한 배려이기도 했고, 과제 전체의 일정을 보호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다행히 내가 임신한 1월은 마침 진행 중이던 과제가 거의 끝날 무렵이라 업무 자체가 별로 없었고, 한창 부서원들이 숨 고르기를 할 때였기에 별 느낌이 없었다. 문제는 새로운 과제가 시작될 무렵이었다. 새로운 과제의 업무를 나누는 과정에서 나의 주 업무는 '후배 양성'이 되어 있었다. 과제 일정 상 한창 바쁠 시기에 내가 출산휴가를 들어가기 때문에 중요 업무를 줄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고, 반박할 수 없었다. 내가 어떤 일을 하다가 인수인계를 한다고 한들, 인수자에게 역시 부담일 뿐이었다. 처음부터 '나의 일'인 것과 중간에 '내 것이 된 일'은 다르다는 걸 알고 있기에 더 이상 칭얼거릴 수 없었다.
게다가 리더의 입장에서 그것은 일종의 배려이기도 했을 것이다. 주요 업무를 할당하면 자연스레 업무 강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고, 그 대신 신입인력들의 빠른 성장을 도와 그 빈자리를 채워주길 바란 것이다. 그런 마음들이 고마웠지만 한편으로 잔인했다. 상황과 의도가 어찌 되었든 업무에서 배제되었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력하게 업무를 쟁취할 수도 없는 나 스스로가 무력했다. 배려와 배제 그 사이 어딘가에서 나는 감사함과 무력함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7년째 같은 업무를 보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나도 이제 어느 정도 일에 익숙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도 손에 익고, 자신감도 넘쳤다. 날개도 다 자라고 비행 연습도 얼추 끝난 시점이었다. 이제 훨훨 날아다닐 순서였는데, 일순간 날개를 다시 접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연연하는 것은 아니지만 입사 동기들보다 진급도 1년 늦어질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입사해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분주한 모습 뒤로 나는 잠시 정지선에 멈췄다.
나는 지금 7년을 쉬지 않고 다닌 회사를 무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쉬어야 하는 과도기에 있다. 업무에서 조금씩 멀어지는 것이 여간 두려운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을 내려놓아야 할 것 같아 겁이 난다. 일로써 자아성취를 하는 타입은 아니었는데, 막상 밥그릇에 밥이 줄어드니 불안한 마음이 든다. 가끔 농담조로 수석님께 '육아휴직 다녀오면 제가 할 일 없는 거 아니에요?' 하고 물어보면 '많아지면 많아졌지 절대 그럴 일은 없을 테니 맘 놓고 다녀오라'고 하신다. 위로가 되면서도 마음 한편에선 일도 좀 줄어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니, 정말 일이라는 것은 '이기적인 애증'이다. 배려는 고맙지만 배제는 되기 싫은 이기적인 애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