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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오로 Jun 05. 2021

너를 알게 되었다

너에게 쓰는 편지

2021년 1월 18일 월요일 : 너를 발견한 날.


  금요일에 휴가를 쓰고 4일 만에 회사에 출근을 했어. 휴가 기간 동안 오빠랑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출근도 아직 안 했는데 너무너무 피곤하더라. 그래서 그런지 일도 손에 안 잡히고 하루 종일 부산스러웠어. 오후부터는 오한이 느껴지는 거야. 몸살기가 있는 것처럼 몸도 아프고 머리도 너무 아팠어. 그래서 오빠한테 일찍 퇴근하자고 얘기하고 집으로 왔지. 그때가 5시가 좀 넘은 시간이었는데, 8시간도 못 채웠는데 힘들어서 회사에 있을 수가 없었어.

 

  이전에도 생리하기 전에 비슷한 증상이 있어서 나는 또 그런 줄 알았던 거야. 이번에는 생리 전 증후군이 좀 세게 오나보다 했어. 내일 보건휴가를 쓸까 말까 고민하면서 퇴근을 했지. 몸이 안 좋아서 오빠가 혼자 육개장을 사 오기로 하고 나는 집에 먼저 내려줬어. 집에 오는 길에 오빠는 계속 차홍이-며칠 전 차홍이라는 아이가 본인에게 '아빠, 나 나가고 싶어'하는 꿈을 꿨다고 함-타령을 했는데, 나는 그럴 수가 없을 거라고 생각을 했어. 정말로 그럴 일이 있을 수가 없을 것 같았어.


  정말 정말 아닐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그래도 혹시나 몰라서 임신테스트기를 먼저 해보게 된 거야.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지 정말 희미하게, 정말로 희미하게 너의 존재가 나타난 거지. 믿을 수가 없고, 믿기지가 않아서 그리고 이게 정말인지 아닌지를 모르겠어서 오빠한테 연락도 못하고 우선 씻었어. 다 씻고 나오니 오빠가 집에 도착해서 어떻게 되었냐고 묻더라고. 오빠도 아닐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내심 기대하는 느낌이었어. 내가 잘 모르겠다고 결과지를 보여주니까 오빠는 예상했던 '임신이 아니야'라는 말이 안 나와서인지 깜짝 놀라더라고. 희미하게 보이는 너를 손에 쥐고 눈에 반짝 눈물이 고이더라. 그 모습을 보는 나도 눈물이 날 뻔했어.

 

  그날 저녁은 아파서 잠을 한 숨도 못 잤어. 온몸이 불덩이같이 열이 오르고 몸살기 때문에 살에 이불만 스쳐도 너무 아파서 하룻밤을 내리 끙끙거렸어. 오빠도 한 숨도 못 잤지. 이게 임신이라면 두 번 다시 못할 것처럼, 그렇게 너무 아프더라.



2021년 1월 19일 화요일 : 너를 발견한 지 이틀째 되는 날.


  밤새 앓고 결국 나는 휴가를 썼어. 오빠는 출근하고 4시간 후에 퇴근하기로 했지. 아침에 잠깐 열이 내렸는지 땀이 나면서 잠을 꼴딱 잤다. 달더라. 아파서 그런지 입맛도 없고, 속도 괜히 울렁거리는 거야. 그래서 대충 유자차만 마시고 오빠가 올 시간이 되어 겨우 일어나 씻었어.


  병원에 가는 길은 너무 어리둥절해서 사실 실감이 안 났어. 그래도 기분이 묘했는지 아픈 게 덜 느껴지더라. 그때도 분명 열이 38도가 넘었을 텐데 나랑 오빠는 그게 그냥 임신의 과정인 줄 알았던 거야. 그렇게 병원에 가서 초음파로 자궁을 보는데 아직 네 집이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하더라. 곧 만들어질 것 같으니 피검사는 따로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일주일 후에 다시 보기로 하고 진료를 끝냈어. 그래서 임신이라는 건지, 아닌 건지. 답답해서 내가 물었다. "그래서 제가 임신을 한건 가요?" 하고. 90% 이상의 확률이라고 하더라고. 그게 뭐야, 했다는 거야, 안 했다는 거야.


  사실 임신이라는 말이었는데, 나는 아직도 믿기지가 않았던 것 같아. 결국 산모수첩을 받지 못하고 어버버 하다가 1층 대기실에 있는 오빠에게 갔어. 기대 잔뜩 했는데 내가 빈 손으로 와서 아쉬워하더라고 ㅋㅋㅋ. 왜 피검사 안했냐고 하더라. 많이 기다렸나 봐. 그래도 들은 얘기를 전해주니 기분이 좋았는지 오빠가 소갈비를 사줬어. 비쌌을 텐데 내가 아파서 많이 먹지도 못했네. 밥 먹으면서 양가에도 처음 알렸어. 오빠네는 열렬한 반응이었고, 우리 집은 할 일 했는데 그래도 잘했다. 정도? ㅋㅋㅋ.


  그렇게 비싼 소갈비를 먹으면서도 너무 아파서 집에서 쉬고 싶었어. 그래서 얼른 먹고 집으로 왔는데, 계속 열이 나는 게 이상해서 오빠한테 체온계를 사 오라고 했지. 재보니까 38.5도 38.6도가 넘는 거야. 인터넷에 찾아보니까 38도가 넘는 건 미열이 아니라 고열이라고 하더라고. 아이가 있어도 무조건 해열을 해야 한다고. 아이에게 너무 안 좋다고. 갑자기 너무 무서웠어. 아직 만나보지도 못한 너에게 내가 뭔가 잘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병원에도 전화해봤는데, 누구 하나 정확하게 말을 못 하더라고. 오늘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한테 물어보고 왔어야 했는데 어버버 하다가 놓친 게 너무 후회가 되더라. 여기저기 찾아보다가 결국 38.9도가 나와버려서 어쩌지 못하고 임산부도 먹는다는 타이레놀 500을 사다가 밤새 두 알을 먹었다. 약기운이 떨어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38도가 넘어서 잠이 기가 막히게 깨더라.


2021년 1월 20일 수요일 : 너를 발견한 지 3일째 되는 날.


  결국 다시 휴가를 쓰고 아침 일찍부터 다시 병원에 갔어. 병원에서 진료를 기다리는데 어제 봤던 간호사님이 오시는 거야. 일주일 후에 보기로 했는데 왜 벌써 왔냐고. 안 좋은 일로 왔냐고. 열이 나서 온 게 좋은 일은 아니니까 당연히 그렇다고 했더니 식겁을 하더라고. 안 좋은 일이라는 게 낙태였나 봐. 나도 깜짝 놀라서 "아니에요! 이 아이는 축복이에요!"라고 해 버렸지 뭐야. 얼굴 한 번, 세포 한 번을 보지 못 한 네가 벌써 나에게는 축복이 되어있었나 보더라.

 

  간호사님은 열 때문이라는 걸 듣고 열을 재더니 38도에 화들짝 놀라서 나를 코로나 검사하는 데로 보냈어. 다행히 2주 전부터 신속진단을 그 병원에서 할 수가 있게 돼서 15분 만에 음성이 적힌 확인서를 들고 진료를 볼 수 있었지. 해열제를 처방받고, 열이 38도가 넘어가면 꼭 먹으라고, 임신 내내 열이 진압이 안되면 무서운 고민이 필요하다고. 겁도 주고 약도 주고.

 

  얼른 약국 가서 처방받은 약을 한 알 먹었어. 그래도 약을 먹어서인지 조금씩 열도 내려가고 몸도 거의 안 아팠어. 집에 와서 돈가스에 우동먹고, 약 먹고 열재고, 저녁 먹고 하루 푹 쉬면서 끔뻑끔뻑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조금씩 되새겼다.


2021년 1월 22일 금요일 : 너를 발견한 지 5일째 되는 날.


  여전히 체온계로 계속 열을 체크하고, 물 많이 마시고, 화장실 자주 가는 부산스러운 회사생활을 했다. 얼른 집에 가고만 싶었으나 시간을 채워야 해서 겨우 회사에 붙어있었어. 다행히 열은 기본 체온으로 온 것 같은데 이상하게 회사만 가면 0.5도가 올라가더라고. 이제 좀 편하게 다닌다 싶어도 회사는 역시 회사인가 봐. 요즘 일도 별로 없는데 어디서 스팀이 그렇게 나오는지.

 

  집으로 오는 길에 내 친구에게 너의 존재를 알렸다. 큰 시험을 치르고 술에 진탕 취해있던 친구가 과연 널 기억할까 싶으면서도 그 취한 목소리로 참 기쁘게 널 축하했어. 어제보다 조금 더 실감이 나더라고. 정말 내가 너를 가졌다는 걸.


2021년 1월 24일 일요일 : 너를 발견한 지 7일째 되는 날.


  내일이면 진짜 너를 마주할 수 있다니 굉장히 기대되고 궁금해진다. 오늘은 오빠랑 호수공원으로 산책을 하러 다녀왔어. 날은 좋은데 집에만 있기는 아쉬우니 가까운 호수공원에 다녀온 거야. 겸사겸사 스타벅스에서 디카페인 커피도 마시고, 서점에 들러서 육아 대백과를 사려고. 근데 결국 거기서 커피는 못 마셨어. 디카페인을 파는 유일한 스타벅스에 손님이 너무 많아서 그냥 짧게 산책만 하고 돌아왔다.

 

  산책하면서 새로운 감정이 느껴졌어. 남녀 둘이 다니는 모습이 갑자기 굉장히 부럽게 느껴지는 거야. 오빠와 둘이서 조촐하게 손 잡고 다니던 그 모습이 나는 언제나 좋았는데, 이제 왠지 누군가의 손에는 다른 손이 잡히겠다 싶더라고. 이렇게 같이 손잡고 다니는 게 이제 보통일은 아니겠다 싶더라고.

 

  뭔가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넜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 복합적인 생각이.


2021년 1월 25일 월요일 : 너를 발견한 지 꼭 일주일 되었고, 너는 세상에 존재한 지 5주 2일이 되는 날.


  원래 내일 가기로 했던 병원을 하루 당겼어. 나도 오빠도 너의 존재가 너무 궁금했기 때문에. 그리고 주변에 얘기라도 하려면 확실한 무언가가 필요했거든. 두근두근 드디어 진료가 시작되고. 흐릿흐릿한 초음파 화면에 정말 작은 검은색 타원이 보이더라. 그게 너의 집이라고 하더라고. 6mm래. 정말 작더라. 너는 어디 있는지 아직 보이지 않았어. 그래도 아기집이 생겼고, 의사 선생님이 주수 계산과 함께 임신 확인서를 써줬어.

 

  내 손에 쥐어진 산모수첩과 너의 초음파 사진 그리고 임신확인서를 훈장처럼 손에 쥐고 목이 빠지게 기다렸을 오빠에게 갔다. 오빠는 한참을 초음파 사진을 보더니 또 그렁그렁 하더라. 나도 한 번 더 실감이 나기 시작했어. 뭔가 있군. 내 몸에. 무언가 자라고 있군. 양가에도 초음파 사진을 보내고, 친한 친구 몇몇에게도 임신 사실을 알렸어. 실감 +1.


  앞으로 열 달, 세상에 없던 누군가가 있게 되어버리는 과정을 나와 오빠가 잘 지켜내 볼게. 잘해보자, 랑랑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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