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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오로 Jul 09. 2021

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임산부의 완패

    상습범이 분명했다. 자동차의 조수석 앞 유리창에 네모난 스티커가 붙었다가 떼어지면서 남은 자국이 있는 것으로 보아 불법 이중주차가 이번이 처음은 아닌 것 같았다. 이미 협소한 그 주차공간에 마치 원래 그런 자리가 있었다는 듯 그 차는 당당히 주차되어있었다.


    상가에서 볼 일을 마치고 저녁을 먹으러 나가려던 참이었다. 불법주차 차량으로 우리 차가 나갈 수 없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차주가 단번에 전화를 받고 내려와서 차를 빼주었다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만한 상황이었다. 양심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렇게 주차해놓고 간 상황에서 언제 전화가 올 지 모르니 전화벨 소리를 키우거나 자주 확인을 하거나 둘 중 하나는 해야 했다.


    주차장은 덥고, 배는 고파오는데 아무리 연락을 해도 차주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남편도 나도 슬슬 짜증이 올라오고 있었다. 어떻게든 차를 빼보려고 앞 뒤로 애를 써 봤으나 소용없었다. 제자리에서 불법주차 차주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 말라는 짓을 한 건 저 차인데,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가 받으니 세상 열 받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30분가량이 지났을까 마침내 남편이 남겨놓은 문자를 보고 차주에게서 연락이 왔다. 죄송하다는 일언반구 없이 내려가겠다는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단다. 괘씸죄가 더해져 극적인 짜증이 올라오고 있었다. 누가 이렇게 뻔뻔한지 얼굴이나 보자는 마음과 본인이 기다리게 한 사람이 배가 불쑥 나온 임산부라는 걸 보고 인간이라면 일말의 미안함이라도 느끼길 바라며 나는 굳이 차 밖에서 그 차주를 기다렸다. 남편도 잔뜩 성이 나서 한 마디라도 할 심산으로 같이 서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드디어 그 뻔뻔한 차주가 모습을 드러냈다. 젊은 여자였다. 한 손엔 어린 여자아이를 안고, 한 손엔 더 어린 남자아이를 태운 유모차를 끌며 '죄송합니다' 하면서. 순간 남편도 나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한 손으로 애를 차에 태우고, 그 옆에 제멋대로 구르는 유모차, 그 와중에 아이들의 종알거리는 말에 지체 없이 반응까지 하는 그 모습을 보고 차마 입이 어지지 않았다. 나는 당당히 내놓고 있던 배를 머쓱하게 쓰다듬으며 차에 탔고, 남편도 '휴.. 네' 하더니 차에 탔다.


    차에 탄 우리는 웃음이 터졌다. 그 호기로움은 어디 가고 우리는 깔끔하게 완패한 채로 조용히 차로 돌아온 것이다. 남편도 나도 같은 마음이었다. 혼자서 어린아이 둘을 케어하는 모습이 도리어는 안쓰럽기까지 했다. 그 쩔쩔매는 모습에 조용히 차로 돌아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불과 1년 전만 같았어도 이번이랑은 반응이 사뭇 달랐을 것이다. '애는 애고, 잘못은 잘못이지, 민폐녀다.'라고만 생각했을 거다. 그런데 이번엔 '그래, 잘못은 잘못인데 얼마나 정신이 없었겠어.'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임신을 하고 나니 세상이 조금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세상을 볼 때 블러 처리가 되어있던 부분이 선명해졌다. 예전에는 '아이'만 보였다면 이제 그 옆에서 고생하는 '부모'들이 보인다. 우는 아이, 생떼 부리는 아이, 종알거리는 아이, 킥보드 타는 아이만 보였는데, 이제 달래는 부모, 혼내는 부모, 의미 없는 말에 끊임없이 대답하는 부모, 두 발로 달려서 킥보드 쫓아가는 부모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직 시작도 안 한 육아에서 느껴지는 동병상련의 마음일까, 먼저 시작한 이들을 향한 존경의 마음일까, 임신이라는 마법에 걸려 세상이 마냥 아름다워 보이기 때문일까, 남편과 나는 이전보다 좀 너그러워지고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 새로운 경험은 늘 또 다른 배움을 주고 그만큼 시야를 넓혀준다. 임신을 하면서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무언가 배우고 조금은 자라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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