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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오로 Sep 11. 2021

나의 시간에 네가 있길

나의 서른에 만난 한 살의 너

    다시금 장마가 시작된 듯 일주일을 내리 어두침침 비만 오더니, 일순간 가을이 되어버렸다. 한창 눈 내리던 1월, 새해 벽두가 밝자마자 맞이한 새 생명은 '어느새' 가을이 되어 탄생을 목전에 두고 있다. 올해 나의 달력은 '월'이 아니라 '주'로 흘러갔다. 40주를 한 주 한 주 세어가며 이번 주는 아기가 얼마큼 자랐고, 다음 주면 얼마큼 더 성장할지 기대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가을이 와 버렸다. 2021년 나의 봄도, 나의 여름도, 나의 가을도 모두 아기의 시간들로 지나버렸다.


    12주 차 안정기가 되기를 애타게 기다렸다가 커피도 마시고, 회도 먹었다. 궁금했던 성별을 고대하며 시간을 보내면 어느새 또 4주가 훌쩍 지나 16주가 되어 있었고, 다시 아기 만나러 가는 주만 기다리다 보면 또 벌써 3~4주가 금방 지나가 있었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벌써 세 분기나 지나버린 나의 2021년이 보인 것이다.


    문득 위기감을 느꼈던 이유는, 나의 시간이 아닌 아기의 시간으로 지내는 이 순간이 계속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내가 서른 살 때, 아기가 태어나 1살이었어'가 아니라 '아기가 태어나던 해, 나는 서른 살이었어'라고 말하는 예민하고 미묘한 차이 때문이다. 12주 차, 16주 차, 28주 차, 36주 차를 세어가며 한 해를 보내는 지금처럼 나는 앞으로도 아기가 50일, 아기가 100일, 아기가 돌, 아기가 몇 살인지를 내 시간과 기억의 기준으로 삼을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다. 


    임신을 확인한 순간부터 나는 온전히 아기의 시간을 살았다. 임산부가 아기에 집중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임산부임과 동시에 직장인이고, 누군가의 친구이자 가족이고, 글 쓰는 일을 즐기고, 달달한 초코와 바닐라 라테를 좋아하는 어떤 사람이다. 그런데 올해의 나는 오직 임산부이기만 했다.


    아기가 내 시간의 주체가 된다는 것은 생각해보면 무서운 일이다. 출산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에도 한동안 아이의 시간으로 내 삶이 기억될 것 같은 불안함이 생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돌아보니 내 나이는 50이 되어 청춘이 쥐도 새도 모르게 지나갔다는 말을 하게 될까 무섭다. 물론 아이가 태어난 이상 그런 부분에서 적지 않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는 각오하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라는 존재를 잃지 않으면 좋겠다. 언젠가 아기의 시간이 온전히 그의 것이 되었을 때, 되찾은 나의 시간을 돌아보며 공허하지 않기를 바란다.


    아기는 태어나서 엄마와 자신을 분리하는 자아 분리의 기간을 지난다고 한다. 어쩌면 나에게도 이런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나와 아이를 분리하는 과정에서 다시금 나와 나의 시간을 되찾고, 그 시간의 한 부분에 가 있기를 바란다. 아기의 시간 속 조용히 나이 먹어가는 내가 아니라, 나의 시간 속에서 쑥쑥 자라는 아기가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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