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종훈 Oct 24. 2023

응웬 띠 탄린

지금은 제 나라로 돌아갔을 응웬 띠 탄린

언젠가 내 베트남 가서 우연히 들른 중식당이 그녀가 주인인 식당이라면

그야말로 기막힌 조우(遭遇)일 것인데  그렇든 말든 그녀가 바람 이루어

돈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는 것 그것이

또한, 나의 바람이다.  



    

자주 가는 동네 중식당 소소루에 어느 날

서빙을 하는 낯선 아가씨가 보였다.

용모도 그렇고 주문받는 한국어도 어눌해

친한 주인에게 넌지시 물어본즉

베트남 아가씨였다.

오지랖 넓게 이름도 함께 물었는데

이후 몇 번 되풀이 들어도 도무지 생경하고

외워지지 않던 이름. 그것처럼 아가씨는

모든 것 낯설 이국(異國)의 이곳까지 어떻게 왔을까?

이렇다 할 돈벌이 없는 나라의

자식 여럿 딸린 가난한 집안의 딸로

그곳이 어디든 저 하나 이 악물고 일하면

지긋지긋한 가난 끊을 수 있으리라는 일찍 철든 생각으로

가족들 눈물 바람 배웅받으며

밀림(密林) 속 동네 허위허위 걸어 나왔던 것 아닐까?

모롱이 돌 때마다 뒤돌아보며

삼키고 삭였을 그 속울음으로 하여

가뜩이나 비 잦은 나라에

또 얼마나 많은 비 내렸던 것일까?

한 날 지저분한 식탁 말끔히도 훔쳐내는

아가씨의 걸레질 지켜보다 문득 육, 칠십 년대 이 나라의

누나와 언니들이 떠오르던 것인데

야반도주하듯 몰래 동네 빠져나와

무작정 상경해서는 섬유며 봉제 공장 취직해

악착같이 번 돈으로 부모님 소 사 드리고

동생들 공부시켰다는 그 애틋한 이야기가

반세기도 넘은 지금 아가씨의

작고 연약한 등으로 하여 새삼 떠오르던 것인데

좀처럼 입에 붙지 않은 그녀의 이름 몇 번이고 되뇌어

응웬 띠 탄린, 여기  단무지 좀 더 주세요

라고 한 것은 이곳이 제 이름 불러줄

그 누구도 없는 서럽고 외로운 곳 아니라는

생각했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응웬 띠 탄린, 응웬 띠 탄린


그 이름이라도 불러주는 것이

화장이며 치장은 언감생심

오직 공장과 몸 하나 겨우 눕힐 쪽방 오갔을

이 나라 한 때의 수많은 누나와 언니들의

핏기 없던 민낯과 초췌한 입성 위로하는

나름의 헌사라 여겨져서였다.

응웬 띠 탄린의 월급은 얼마나 될까?

그조차 삼분의 이를 송금한다는

주인의 말 아니라도 그 눈물겨운 돈

허투루 쓰지 못할 것인데 그 돈이

제 나라 돌아가면 번듯한 중식당 차리는 것이

꿈이라는 그녀의 바람 이룰 종잣돈 되어

언젠가 내 주인이 된 그녀의 식당에서

자장면 한 그릇 맛나게 먹는 생각하면

공연히 즐거워 슬그머니 웃음 짓기도 한 것이다.


'응웬 띠 탄린 사장님, 여기 단무지 좀 더 주세요'

그런 나를 그녀가 용케 알아보든 말든.  

작가의 이전글 우는 남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