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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간호사 이민의 현실

과연 미국은 올만한 곳인가?

by 미국간호사 Sophia

최근 미국에 대한 여러 뉴스들을 접하면서 제가 미국간호사를 결정하고 준비하며 지내온 10년과는 현재 상황이 많이 변한 듯하여 글 올려봅니다.




처음 미국간호사를 해야겠다고 결정하고 엔클렉스를 접수한 것이 2015년 여름. 당시엔 미국으로 이민 가는 간호사가 많지 않았고, 있더라도 영주권을 위해 기다리는 시간이 길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2000년대 초반에 미국의 간호사 부족으로 관광비자만 가지고 미국에 와서 병원에 취직한 뒤에 엔클렉스를 치고 일했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한국에서 일하고 있던, 이미 엔클렉스를 가진 간호사들이 수월하게 미국으로 떠날 수 있던 시기가 있었다고도 들었다. 영어점수가 없이 미국 취업비자와 영주권을 딸 수 있던 거의 유일한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뭐든 영원한 것은 없는 법. 어느 정도 부족분이 채워지자 스케줄 A라 불리던 미국간호사 슈퍼패스의 길은 자연스레 막혔고, 언제 그렇게 쉽게 미국을 갈 수 있었냐는 이야기가 나오는 시기로 변했다.


그러나 비교적 쉽게 미국에 갈 수 있는 직업군이었던 간호사는 한국에서보다 훨씬 좋은 조건을 마련해 준다는 것이 부각되면서 문호가 막혔다고 말하면서도 오히려 더 많은 한국 간호사들이 미국행을 원했고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했다. 나도 그들 중 하나였다.


2018-19년도에는 거의 10년간 꽉 막혔던 이민 문호가 열리면서 꽤나 많은 간호사들이 빠른 이민수속의 속도를 체감하며 미국으로 가기 시작했다. 그 상황을 지켜보며 한편으론 다행이다, 아직 기회는 있다고 생각했으면서도 아직 영어점수와 엔클렉스 합격을 하지 못했던 나는 아쉽고 속상한 마음이 컸다. 내가 들은 가장 빠른 수속기간은 10개월이었는데, 그분은 영어점수를 받자마자 거의 두어 달만에 짐을 쌌던 것 같다. 참 부러웠다.


2020년에는 뉴노멀을 만든 코로나가 창궐하면서,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서 간호사가 엄청나게 부족한 상황을 겪었다. 코로나 전담병원으로 입사를 해서 고생은 정말 많이 했지만, 이때 비로소 우리나라에서도 간호사로 일한 만큼 대가를 주는 일도 처음 생겼었고 - 이제는 더 이상 없고 이 일에도 여러 문제가 있긴 하다- 그동안은 해외간호사를 받아들이지 않던 나라들까지 능력 있는 경력간호사를 필요로 하면서 우리나라의 젊고 경력 있는 많은 간호사들이 같은 일을 하고도 돈을 더 많이 받는 해외로 눈을 돌리는 계기가 되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그 당시에 내가 고려했던 나라만 해도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그리고 미국까지.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거의 모든 선진국에서 한국간호사가 취업비자나 영주권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을 내세우고 있었다. 나 역시 마지막까지 미국과 뉴질랜드를 후보로 두고 저울질을 했으나, 가족과 떨어져서 살지 않아도 되며 이왕 일해서 돈 벌거라면 액수가 더 많은 곳으로 가자고 결정한 것이 지금 미국살이를 하게 된 이유이다.


미국에 건너온 2024년 초까지만 해도 이런 분위기의 연장이었다.


영국은 브렉시트 이후에 유럽연합에서 조달하던 간호사가 부족해져서 한국에도 기회를 주었고(이건 정말 처음 있는 일이라 가고 싶었음),

호주도 기존에는 한국에서 간호대를 졸업한 것을 인정해주지 않았다가 학위 매칭을 해주는 것으로 변경하였으며 우리나라의 간호대학이 4년 제로 바뀐 이후에는 학위매칭이 거의 100%에 이르는 상황이 되었고,

뉴질랜드는 아무런 조건 없이 비지터비자로 6개월간 머물며 CAP이라는 리뉴얼코스를 이수하면 취업이 가능했기에 취업비자로 변경을 해주었고, 이듬해에는 아예 영주권신청가능 직업군에 간호사를 넣어주었다.

캐나다도 NNAS라는 아주 느리고 까다로우며 누락이 잘되는 프로세스를 유지하다가 미국 엔클렉스를 같은 면허시험으로 인정해 주면서 이를 이용해 캐나다로 이민 갈 준비를 한 사람들도 꽤 보았고, 워킹홀리데이부터 간호사 이민까지 연결해서 준비하는 케이스도 심심치 않게 알게 되었다.

미국은 욕 많이 먹는 나라이긴 하지만 여전히 세계 제일의 강대국이며 전 세계 기축통화의 나라여서 갈 수만 있다면 안 갈 이유가 없는 나라이기도했고.




지난 10년간 많고도 긍정적인 변화들이 있어왔는데, 올해는 미국으로의 이민은 오기 힘들어진, 또는 오기 싫어진 한 해인 것 같다. 꼭 미국을 선호하는 게 아니라면 차라리 다른 나라를 추천해주고 싶은 분위기인 것도 사실이다.


호주는 여전히 영주권을 따기엔 어려운 나라지만, 뉴질랜드와 자매나라여서 간호사로서 일하는 것에서는 많은 부분에서 동등한 위치에 인정하기에 뉴질랜드간호사로 먼저 시작한 뒤에 급여와 살기가 더 좋은 도시지역인 호주로 넘어가는 방법을 선택하기도 하고, 또는 시골외곽지역에서 경력을 시작한다면 여전히 추천할만한 나라이다.


영국은 취업비자를 받고 일하다가 5년이 경과하면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기 때문에 신분문제에 대해서는 아직도 안전하다 생각하긴 어렵지만, 유럽에서 살아보고 싶은 사람들에겐 매력적인 나라임에는 틀림이 없다.


캐나다는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인 미시간과 국경을 접하고 있어서 약간의 견해차이가 있을 수 있는데, 모든 캐나다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우리 병원의 40퍼센트에 해당하는 간호사들이 캐나다 국경지대에 살면서 우리 병원으로 출퇴근을 하기 때문에 어쩌면 캐나다보다 미국이 더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겪어본 바로는 미국인들은 캐나다사람에 비해서 참 많이 닳았고 약삭빠르다는 점에서 순박하고 친절한 캐내디언들과 지내는 것이 정신건강에 더 좋을 수도 있다는 의견을 살짝 내본다. 그리고 캐나다는 겨울스포츠와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너무나도 천국 같은 나라이기도하다.)


미국은 좋은 것보다 나쁜 게 더 많아진 것 같다. 일단 미대통령의 자국우선주의 덕분에(?) 미국인으로 태어나서 살아온 사람이 아니라면 무조건 차별받을 조건을 가진 사람들로 비치는 나라가 되었고, 미국에서 태어나진 않았지만 영주권을 받은 이후 미국국적을 선택한 후천적 시민권 취득자의 안전도 더 이상 완벽히 보장되지 않은 나라가 되어버렸다. 영주권자는 참정권을 제외한 부분에서는 시민권자와 동일한 권리를 준다고 말해왔지만, 국적이 미국이 아니므로 언제든 박탈당할 위험이 있다는 점에서 불안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미국에서 맘 편히 살기 위해 시민권을 택하는 영주권자도 꽤나 많아졌다는 풍문을 들었다. 비이민비자인 학생비자, 인턴비자, 사업비자, 여행 및 출장비자를 가진 사람들은 더 힘들어졌는데 얼마 전 조지아주에서 일어난 일은 한국인인 내 입장에선 무조건 미국이 너무한 일이지만, 앞으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에 억울하지만 조심해야 하는 게 사실이다.


이민비자를 받으려면 몇 년씩 기다려야 하기도 하고, 영주권은 100만 불을 내라고 하고, 급기야 H1B 취업비자도 2년간 추첨하는 비자인데 해마다 10만 불을 내라고 하면 도대체 어떤 사람이 해당되어 미국에 올 수 있을지..


미국은 총기규제가 사실상 없다 싶은 곳이라서 무조건 안전한 지역에 모여 살아야 하고 그러려면 돈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안전한 지역이어도 사건 사고는 피할 수 없다. 대부분은 우리나라에서 북한과 전쟁 나는 확률로 총기사건이 일어나는 느낌이지만, 일단 일어나면 누군가는 죽는 결말이기에 무서운 생각은 항상 든다.




그럼에도 미국에까지 와서 안 되는 영어에 좌절하면서 간호사를 꼭 해야 하는 거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그렇다’이다.


이는 다른 나라에서 간호사로 살아보지 않았기에 할 수 있는 편견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제 미국생활 겨우 2년 차가 할 말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미국병원에서 일하면서 사계절을 보내고 적응하며 느낀 것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결코 간호사로는 일할 수 없다는 확고한 마음이다. 다른 직업은 모르겠다. 미국간호사가 모든 면에서 월등히 한국간호사보다 좋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한국에서 도저히 이해해보려고 해도 이해되지 않던 많은 것들이 사실은 비정상이었고, 비상식이었다는 것을 이곳에 와서 알게 되었고, 간호사라는 직업이 힘들고 고된 일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우리나라보다는 미국이 분명한 대가를 주려고 노력하고 지킨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그리고 이민자의 입장에서, 그 나라의 핵심직업군에 들어와서 돈 벌고 살아갈 수 있는 기회는 손에 꼽히는데 간호사라는 좋은 무기가 그런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해외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충분히 추천해 줄 수 있다고 본다.


모든 일은 다 끝이 있다. 어떤 어려움도 다 지나간다. 그러니 만일 지금 주변의 여러 가지 시끄러운 사건사고들로 자신의 미래 결정을 망설이고 있다면 그냥 그 일들을 몰랐던 때로 돌아가서 자신을 위한 길이 어떤 것인지 냉정히 생각하고 판단하길 바란다.


우리나라는 그립지만, 난 이곳에 사는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리고 한 번뿐인 내 인생에서 뭔가 의미 있는 일로 내 삶을 마감할 수 있다면 그걸 여기에서 해보고 싶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게 응원을 남긴다.


P.S) 이번주는 근무때문에 하루 늦게 올립니다. 다음주에는 원래대로 월요일에 업로드 될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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