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대체 어느 병동소속이냐
일하는 병동이 1층에 있어서 출근하면 로비에서 병동입구까지 5분 이내에 도착이 가능하다. 엘리베이터를 타거나 로비에서 멀어서 한참 걸어야 하는 병동이 대부분인 것을 생각해 보면 동선도 짧고 편리하다. 하지만 이런 부분 때문에 최근 울며 겨자 먹기로 떠안은 일이 있으니 요즘 우리 병동은 거의 정신과 병동이 되었다.
들은 이야기라 사실 여부는 확실치 않지만, 몇 달 전 우리 병원 여러 건물 중 어딘가 있는 4층 중환자 병동에서 누군가 병실 유리를 깨고 투신을 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유리자체도 튼튼한 데다 열리는 문도 아니라 깨질 거라 생각하지도 못한 데다 창문 밖은 발코니 같은 것이 전혀 없는 빌딩건물이었기에 결국 투신한 사람은 사망했다고 했다. 아마도 그 사람이 환자였던지 이후로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 여러 회의를 거친 끝에 투신할 수 없는(?) 1층 병동으로 정신과 환자를 배정하자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이 때문에 나에게는, 졸업한 지 너무나 오래되어 지식도 거의 없는 정신과 병력 환자들을 무조건 받아야 하고 그렇게 받기 시작한 환자들은 하나둘씩 늘기 시작해서 안 그래도 바쁜 날이 더 많은 밤근무가 더욱더 힘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부분 정신과 환자들은 신체적으로 아픈 사람들은 아니기에 간호사들이 덜 힘들거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보통은 정신이 맑지 않은 환자들은 어두운 밤의 낯선 공간이 더 혼란하기 마련이고 병원이라는 공간에 갇혀서 모르는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잘만하면 혈압재고 잠들까 하면 약 주고 하면서 집과는 전혀 다른 생활을 하기 때문에 입원생활이 절대로 쉽지가 않다. 처음엔 비교적 가벼운 건강문제로 입원을 했더라도 오랜 기간 병원생활을 하면 점점 지남력도 떨어지고 가족이나 아는 얼굴이 보이지 않으면 불안하고 평소와 다른 정신건강 상태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더욱이 정신과 병력을 가진 환자들이나 뇌졸중이나 감염에 의해 정신이 흐려진 환자들을 간호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그런데다 말도 어눌하게 하고 같은 단어를 쓰더라도 다른 의미로 사용하는 등의 정신과환자 특유의 특징이 있는 경우에는 안 그래도 어려운 영어가 너무너무 어렵다.
내과환자들이 입원하는 병동이라 알고 일하러 왔던 나에게 우리 병동은 이제 정말로 잡과가 틀림없다. 오늘 내가 맡은 환자도 빈방 하나를 빼면 4명의 환자인데, 그중 두 명이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다. Confused 하다는 표현을 쓰는데, 정신이 맑지 않아서 내가 누구인지 겨우 알고 생일을 물어봐도 주저하며, 그러다 보니 당연히 오늘이 며칠인지 여기가 어딘지 병원엔 왜 온 건지는 전혀 모르는 환자들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간호사라 소개를 하니 그건 기억해 주는 것 같다는 사실이다. 이런 환자들에겐 수시로 엉뚱한 소리를 할 때마다 여기가 병원이다, 너는 환자다, 어디가 아파서 온 거다라는 이야기를 계속 반복해줘야만 한다. 입 아프게 말해야 하는 건 그나마 쉬운 일에 속한다.
일부는 자신을 해하거나 남을 해하게 할 우려가 있어서 더욱 신중히 관찰해야 하는 부류인데, 한국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으나 미국에서는 인권문제로 가능하면 억제대 사용을 의사가 오더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간호사 판단으로 위험하다면 safety attendant로 불리는 sitter를 요청하고, 그나마도 자살충동이 있는 환자가 아니라면 우선순위에서 밀리기에 인력이 오지 않아서 허튼짓(?)은 하지 않는지 오며 가며 매의 눈으로 감시하면서 다른 환자들도 함께 봐야만 한다. 이런 부분도 영어 못지않게 나에겐 위험하고 못할 일이라고 느껴진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왜 이러는 것인지도 알 수 없는 정신과 질병을 가진 환자들에겐 질 좋은 간호를 제공해 주기도 어렵고 나도 환자를 예의주시해야 해서 심적으로 매우 피곤하다. 게다가 정신적인 질병뿐만 아니라 그런 문제 때문에 가정교육이라던지 사회성이라던지 갖출 기회를 가지지 못했거나, 오히려 범죄에 노출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행동문제라고 부르는 폭력성이나 성희롱 및 성폭력을 인지하지 못하고 병원에서 분출하는(?) 사건사고도 빈번하다. 방안에 있는 물건을 던지고, 자기 머리를 벽에 꽝꽝 박는다거나 간호사나 조무사들에게 폭언과 폭행을 시도한다던지, 정신과 약 복용을 거부하거나 약물치료를 위한 IV를 잡아 빼는 건 너무 흔한 일이다.
또 다른 문제는, 정신과병동이 아니어서인지 인계를 주고받거나 의사가 적어놓은 노트를 보더라도 이 환자가 어떤 이유로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지, 어떤 치료를 지금껏 받아왔는지 등의 자세한 내용이 생략되어 있어서 신체적으로 진단받은 모든 질환과 수술내역, 치료과정을 공유해 놓은 노트에 비해 정보가 너무 빈약하다.
그래서 더욱 환자에게 맞는 간호를 제공하고 있는지를 알기가 어렵다. 어쨌든 할당받은 환자는 일하는 시간 동안에는 최선을 다해 간호한다는 것이 내 기본값인데, 아는 만큼 보이는 데 전혀 보이는 것이 없으니 그냥 처방받은 약 주고 잠 안 자면 계속 자라고 다독이고 배고파하면 간식만 계속 주면서 너도 말똥 나도 말똥 한 밤을 보내고 나면 결국 내가 퇴근할 즈음엔 본격적으로 잠에 빠져든 환자를 보게 된다.
내과병동이지만 수술한 환자도 오고, 수술해야 하는 환자도 오며, 병명 진단을 위해 내시경 등 검사가 필요한 환자도 오는 딱히 정해진 특기가 없는 곳이라 좋게 말하면 그만큼 배우는 것도 많다. 간호대학 다닐 때 수많은 질병의 병태생리와 간호방법에 대해 배운 것이 얕은 지식이나마 남아있고, 요즘은 구글링 하면 없는 정보가 없어서 모르는 단어와 개념은 한글로 된 포털사이트에서, 자세한 설명은 구글을 십분 발휘해서 최대치로 공부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시험 칠 때도 아주 작은 부분이라서 중요도가 떨어지고 이름만 겨우 들어본 병명을 가지고 온 환자들도 종종 있어서 배움에 흥미가 있고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심심하지 않아서 좋은 면도 있다.
요즘은 뜸해졌지만 병실에 투석전문간호사를 불러서 커다란 기계를 밀고와 신장투석을 하는 걸 본 적도 있고, 초음파검사도 환자가 어디론가 가는 것이 아니라 포터블 기계를 가져와서 병실에 불을 끄고 커튼을 치고 직접 검사를 한다. 우리나라에선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일이다. 캣스캔이라 불리는 CT나 MRI 정도나 되어야 환자를 검사실로 보낸다. X-ray도 밤이고 낮이고 포터블로 직접 와서 찍고, 간단한 시술도 병실에서 한다. 이제는 익숙해진 풍경이지만 처음엔 역시 미국병원은 한국과는 참 다르구나. 뭐든 가져와서 해주네... 하는 부러운 생각도 했다. 사실 그만큼 의료비용이 추가되는 것이긴 하지만.
솔직한 심정으로는 이유가 있어서 병동을 여러 분과로 나누었을 텐데 성격에 걸맞은 환자들을 좀 보내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한다. 내과라는 분야만 해도 정말 수많은 질병과 기저질환과의 관계로 예상치 못한 여러 합병증과 증상들이 있어서 그것만으로도 벅차고 중한 환자들을 보는 것이 부담스러운데, 갈수록 정신과에 가야 할 환자들과 요즘은 호스피스 환자들도 함께 보고 있어서 조용할 틈이 없는 것 같다.
이전에 글에도 언급한 적이 있는 호스피스 환자들도 여전히 많이 만나고 있는데, 한국에서도 임종간호를 경험해보지 못한 나에게 이 나라의 문화와 처리방식은 여전히 낯설고 어렵다. Code status라 부르는 환자의 소생여부에 따라 더 이상 치료의 의미가 없는 환자들은 당사자나 가족들과 상의를 해서 호스피스 단계를 정하는데, 최소한의 통증조절과 신체적 부담만을 줄여주는 상태이고 바이탈이 흔들린다고 해서 즉각적인 조치를 하지도 않는다. 가능한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하게 한다는 의미이다. 이 때는 Primary team에서는 더 이상 환자를 보지 않기 때문에 오롯이 간호사의 판단으로 환자에게 처방된 약들을 적절히 주고 상태를 확인해서 사망 후 호스피스팀에게 연계를 해야 한다. 우리말로 해도 어려운 이야기를 영어로 해야 하고, 아직도 어떤 말을 해야 상황 적절한지 모르기도 해서 이 부분도 사실 피하고 싶다면 안 하고 싶은 부분이기도 하다.
미국은 우리나라나 다른 여러 나라에서 바라보기에는 대단한 강국이나, 선진국은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되는데 그 이면에는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많은 사람들이 있다. 오히려 미국에 태어나서 평생을 살아온 것이 저주라 느껴질 만큼 드넓고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소외되고 폭력과 시궁창인 환경에서 살아내야만 하는 사람들 말이다. 그중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환경을 벗어나서 스스로 선택한 삶을 살고자 노력하기도 하지만 또 많은 사람들은 그런 노력조차 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더 나은 삶이 있다는 것을 알지도 못한 채,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벗어나지도 못하고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지도 배우지 못한다는 사실에 씁쓸함을 느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가끔 그런 환자의 배경과 미국에 환경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다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사실인 미국의 어두운 면이라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미국에 비해 강한 힘을 가졌다고 보기는 힘든 작은 나라이지만 많은 부분에서 체계를 갖춘 교육과 사회시설이 있고 또 어떤 면에서는 월등히 낫다고 느끼는 바가 있다. 분명히 아직도 더 혁신하고 개선돼야 하는 부분이 있지만, 문맹률도 낮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합리적인 생각을 할 줄 아는 지식적, 인지적 능력이 높은 국민이라고 느껴진다. 사회적인 문제들을 파고들자면 여전히 어두운 면이 없지는 않지만 미국처럼 의료인들이 지금 나처럼 대책 없는 환자들을 만날 기회는 많지 않은 것 같다.
내가 경험한 미국사회는 교육의 수준과 국민을 위한 사회기반시설의 평균은 선진국이라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갭이 매우 크고 그만큼 우리나라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가능한 나라이다. 안전한 지역과 위험한 지역이 명확하게 갈려있고, 학군을 따져야만 사건사고에서 벗어날 확률이 크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갱 영화에서나 보던 세상에 있나 싶던 장면들을 눈앞에서 실제로 겪을 수 있는 곳이 바로 미국이다.
내가 일하는 지역은 미시간 주에서도 유명한 디트로이트인데, 한때 잘 나갔던 자동차의 도시도 유령도시로 전락했던 역사가 있다. 도시를 다시 재건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투자금을 쓰고 이전의 명성을 되찾으려 노력 중이나 그럼에도 대낮에도 돌아다니기엔 흉흉한 분위기는 매번 느낄 수 있다. 8마일이라 부르는 동서로 갈린 도로가 있는데 그 도로를 기준으로 아래쪽인 디트로이트 지역은 밤에는 돌아다니지 않는 것이 신상에 좋다는 말을 여전히 듣고 있고, 낮에도 신호대기를 하면 홈리스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들 중 꽤 많은 사람들이 우리 병원의 고객으로 방문한다.
내가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이 도시에서 간호사로 일하지 않았더라면 결코 알 수 없을 일들을 많이 경험한다. 그리고 그만큼 우리나라가 얼마나 안전하고 상식적인 나라인지를 상대적으로 느끼게 된다. 이민 온 것을 후회하지는 않지만 이민 오지 않는 것도 충분한 이유가 된다는 생각을 요즘 특히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간호사로서 한국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다. 지금도 도마 위에 있는 PA간호사를 나도 했었고, 여전히 경력 많은 또래 간호사들의 취업난과 어려움을 항상 듣고 있다. 간호사가 아니었다면 40대가 되어서 미국까지 이민을 생각했을까 싶을 정도로 이곳에서의 직업생활은 만족스럽다. 앞으로도 성장할 기회가 있고, 나이의 한계를 고민할 필요가 없으며, 간호사의 업무와 노고에 감사를 표하는 상식은 한국에선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나라에서 이런 부분들의 어려움들이 해결되어 더 이상 미국과의 차이가 없어진다면 이민생활을 접고 귀국할 의사가 충분히 있지만, 아무래도 내가 은퇴할 때까지는 어렵지 않나 하는 생각에 오늘도 정신과 환자들과 호스피스 환자들을 돌보며 밤을 새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