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국간호사 Sophia Jan 22. 2024

어휴 난 못한다 못해

소심쟁이가 이렇게 큰 사고를 친 이유?

 학창 시절 나는 부끄럼이 많기도 하지만 나서기도 좋아하는 E도 아닌 I도 아닌 이상한 아이였다. 일단 처음이 어렵지, 익숙해지면 누구보다 주목받기를 좋아했던 것 같다. 어쩌면 이 또한 환경이 나를 만든 것 같기도 한데, 몇 가지 사건이 이를 증명해 준다.

첫 번째 사건은 어렸을 적, 학교를 가기도 전인 어린이 시절이다. 가까운 친척이 방송국 PD였다. 당시에는 예쁜 어린이선발대회가 있었고, 내 사촌이 그 대회에서 수상을 하면서 모델로 활동을 하기도 했는데 오전에 방영하는 어린이프로그램에 나를 내보내면 어떻겠느냐고 제의가 들어왔던 것. 엄마는 좋은 경험이라고 보내고 싶어 하셨지만 아빠가 매우 고지식하고 보수적인 분이셔서 딴따라가 되는 것은 안된다고 하셔서 가볼 수조차 없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도 지금도 들어가기 엄청 어렵다던데... 좋은 기회를 이렇게 놓치고 말았다.

그다음 사건은 유치원에서인데, 집에서는 얌전하고 조용하며 항상 모범생 같던(?) 딸을 우연히 만나러 온 엄마가 보고 깜짝 놀랐던 이야기이다. 그날은 치마를 입고 등원을 했는데 친구들과 놀면서 치마를 들추며 춤을 추고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하는 나를 보며 엄마는 그 아이가 내 딸이 아닌 줄 아셨다고 했다. 그러다 엄마가 나를 부르자 몇 번을 불러도 못 듣고 열심히 놀다가 엄마를 발견하고는 갑자기 스위치를 끈 것처럼 얌전한 모드로 돌아왔다는 사건이다. 나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래도 그건 사실이었을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 사건은 고등학교 1학년때인데, 우연히 연극부 모집을 보고 구경을 갔다가 그 자리에서 오디션을 보고 가장 먼저 선발이 되었던 사건이다. 사실 아무 생각 없이 친구가 오디션 본다고 해서 따라갔던 건데 내 눈에는 다들 너무 쑥스러워하고 연기하는 것도 보는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재미 삼아 즉석으로 참가를 했는데 단번에 합격하고 말았다. 돌이켜보면 나는 나름 끼를 가진 캐릭터였던 것 같다. 연극부 활동을 시작하면서 주연배우도 하고 재밌는 경험을 많이 했는데 선배들은 다른 애들은 몰라도 나는 연영과에 진학할 것이라 예상했다고 했다. (물론 그 정도의 열정은 없었고 연영과에 가지도 못했다.)


이랬던 내가 어른이 되어서는 이런 관종의 모습이 사라져 갔다. 오히려 나를 드러내기 싫어하고 나서기도 싫고 주목받는 게 부담스러워 항상 중간만 하고 적당히 했던 나였는데, 가장 큰 이유는 우리나라에서는 남들보다 돋보이거나 튀면 개성으로 인정하고 존중해 주기보다는 부정적인 시선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악의 섞인 비판에 약했던 나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도 있었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고 싶어 했다. 그러다 보니 겸손하고 얌전한 모습을 요구하는 우리나라에서는 더 이상 나의 본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모험에 가까웠다.


이런 나에게 호주와 미국에서의 시간은 숨겨왔던 나의 본모습을 꺼낼 수 있게 만들어줬다. 호주를 가고 미국을 가니 그곳 사람들은 관종도 이런 관종이 없었다. 도대체 얌전하고 조용하면 안 되는 병이라도 걸린 건지 모두가 자신을 먼저 소개하고 관심을 보이고 인사하고 묻고 이야기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절대 그래선 안 되는 아이들이 여기는 수백만, 아니 수천만 명이 살고 있었다.


유교적인 환경에서 살던 아시아의 작은 나라 코리아의 한 여자아이는 그 모습이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또 부러웠다. 이들은 별것도 아닌 것에 어쩜 이리도 자신감이 넘치고 끝도없이 나대는 것인가!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주변의 시선이었다. 외모만 우리와 반대인 것이 아니라 사회도 생각도 개념도 정반대인듯했다. 이들은 그런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바라봐주었고, 자신의 소박한 잘난 점을 크게 부풀린 덕분에 언제부턴가 나도 그 사람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적어도 그런 곳이었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자신을 인정받고 성장하는 사람으로 만들고 싶으면 나부터 나 자신을 인정하고 돋보이게 해야 하는, 작은 나라에서 피 터지게 경쟁만 하는 것만 보며 살아온 나에게 실로 엄청난 가치관의 변화를 보이게 한 사건이었다.


그 찰나의 경험으로 나는 나 자신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대단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몰랐던 거라면 이제는 찾아보고 싶어졌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어디까지 해 볼 수 있는지 확인하고 알고 싶었다. 그리고 그 마음을 먹은 지 14년 뒤, 나는 이제 작은 우리나라를 떠나 더 큰 세계로 나가는 것을 실행하고 있었다.

이전 09화 이걸 다 해야 된다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