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으로 가는 게 쉬운 게 아닌 이유
미국간호사면허 따는 것은 절차도 쉽지 않다. 하나하나가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하고 온라인으로 척척 해결되는 우리나라가 IT강국이며 선진국이 아닐까 느끼는 의외의 지점이기도 하다.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거의 모든 행정절차가 온라인으로 쉽게 접근이 가능하고, 이런 흐름에 따라오기 힘든 세대를 위한 오프라인으로 접근하는 방법까지 투트랙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렇기에 사람이 꼭 승인해줘야 하는 부분이 아니라면 모든 것이 신청과 동시에 즉시 결과가 제공되는 전 세계에 몇 안 되는 나라이다. 미국도 지금은 많은 부분이 전산화되었지만 적어도 내가 미국간호사를 준비하던 시절-겨우 10년도 안된-에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때 마냥 모든 서류를 프린트해서 펜으로 적고 우편으로 보내는 시스템만 오로지 존재하였다. 게다가 한국어로 된 서류들은 그들이 읽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으니 내 돈을 들여 공증을 받아야 하고 서류처리에 소요되는 수수료도 은행에서 발급된 종이돈-머니오더-를 첨부해야 하니 사람의 사람을 거쳐야만 하는 이 과정에서 아무 문제 없이 진행되는 것은 오히려 기적에 가까웠다. 게다가 미국간호사 면허를 받으면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다. 이민을 위한 프로세스가 아직 남아있고, 직장을 구하고 잡인터뷰를 보고 미국으로 건너가기까지 끊임없는 서류와 교육으로 지쳐있을 때쯤 아마도 미대사관 비자인터뷰를 보러 가는 게 아닌가 싶다. 그만큼 미국으로 가는 길은 멀고 험하다. 그렇지만 다른 나라에 간다고 해서 우리나라처럼 모든 것이 수월하고 쉽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럼에도 내가 이 과정을 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나는 '하고 후회하는 게 낫다'라고 본다.
미국에 간호사로 이민을 생각하는 분이라면 필수로 알아야 하고, 간호사가 아니더라도 궁금해하는 분들이 계실 테니 간단히 순서와 흐름을 적어보겠다.
미국간호사 면허 취득(NCLEX-RN) -> *의료인의 미국이민을 위한 비자스크린 취득(Visascreen) -> 미국에서 나를 스폰서해줄(영주권을 줄 수 있는) 고용주 찾기(에이전시, 병원 등) -> 미국이민성과 국무성에서 요구하는 서류 작업(이민프로세스) -> 미국으로 출국(이민)
(* 비자스크린과 고용주 찾기는 순서가 다를 수 있고 문제 되지 않는다. 다만 영어점수받는데 시간적인 소요가 크므로 우선하는 것이 마음은 편하다.)
매우 간단한 흐름이다. 하지만 각 단계에서 해내야 하는 퀘스트는 지나온 자만이 평가할 수 있는 권리가 될 만큼 쉽다 어렵다를 말하기 힘들다.
어떤 사람은 이 모든 단계를 굵고 짧게 끝내기도 하며, 다른 사람은 단기간에 해내기엔 인간답게 살기를 포기해야 하므로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번아웃이 오지 않도록 쉬엄쉬엄 가기를 선택하기도 한다. 또 이도저도 아닌 웃지 못할 문제가 생겨 원치 않는 과정에서 정체하는 사람도 있다. 정말 인생사 희로애락이다..
그간 지겹게 말했던 영어점수가 필요한 이유는 비자스크린이라는 것을 취득하기 위함인데,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 않는 나라에서 교육을 받은 의료인에게 미국에서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언어능력에 대한 검증이다. 2022년 7월 이후로는 토익(TOEIC), OET, PTE 등 그나마 인정되는 수월한 영어시험들이 대거 등장했지만, 이전까지는 아이엘츠(IELTS) 아니면 토플(TOEFL)이었다. 게다가 이들이 요구하는 영어실력가운데 가장 기준이 높고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말하는 능력이다. 건강하고 삶에 큰 문제가 없는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도 오해와 넘겨짚음, 맘 상한 일들이 생기기 마련인데 하물며 아프고 불안정한 환자에게 편안한 간호를 제공하기 위해서 필요한 영어라면 짐작이 될 것이다. 또한, 영어가 아닌 언어로 간호사가 되는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나의 학위와 면허에 대한 검증을 다시 한번 거치게 된다. 이 때문에 학교와 보건복지부 담당자에게 '을'의 입장으로 서류를 보내주십사 읍소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특히, 대학서류는 할 말이 많은데, 때로는 참 거지 같은 경우를 겪기도 한다. 내가 필요한 것을 요청하는 것인데 을의 자세로 나의 서류를 누락 없이 한 번에 잘 보내주십사 부탁해야 한다는 것이 다시금 출세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사실 출세는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닌 것 같지만)
그러면 이제, 가장 높은 산이 남아있다. (이미 한라산 백두산은 넘은 것 같은데 더 높은 산이 있다니 허허) 나에게 영주권을 주면서까지 모셔갈 그 누군가를 찾는 과정이다. 내 기억으로는 대략 2020년 이전에는 한국에서 미국에이전시를 찾아다 주는 업체가 대부분이었고 이 또한 몇 개 없었기에 거의 독점 수준이었다. 나도 한 번은 찾아간 적이 있는데, 이 때는 미국간호사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나 실행결과는 없었고 그저 가능성에 대해 알아볼 요량이었지만 거의 문전박대당했다. 나 말고도 다른 몇 사람이 있었는데 당장 계약금을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사람부터 순서대로 상담을 해주기 시작했고 나에게는 미국간호사면허증이 있는지 묻더니 그 뒤로는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다. 아직 준비가 안되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뒤돌아섰지만 계약금 내용을 듣고는 마음도 선뜻 나서지 않았다.
그럼 한국업체를 포기하고 미국에서 에이전시를 찾아봐야 했다. 그런데 미국 에이전시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전화영어가 시작된다. 에이전시 인터뷰도 봐야 하고 병원면접도 준비해야 하고 이메일이 오면 답장도 하고 설명도 해야 한다. 비교적 괜찮은 일자리를 첫 직장으로 가기 위해서는 한국의 경력이 중요하고, 그만큼 영어실력도 중요하다. 뭐 하나 포기할 수 없는 외줄 타기를 하는 것 같다. 계약을 하고 나서도 병원에 입사가 확정이 되면, 병원이나 에이전시에서 보내주는 교육도 틈틈이 들어야 하고 몸도 마음도 지치고 버거운 시간들을 이때 가장 많이 느끼게 된다.
이제는 많은 한국간호사들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한국의 업체는 실제로 한국간호사에게 미국 이민 시 제공해 주는 것이 거의 전무하다고 본다. 많은 돈을 내니까 내가 신경 쓸 것이 없게 알아서 해주겠지라는 한국적인 마인드-마음의 평온을 위해- 그 큰돈을 내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다들 하니까 그런 줄 알았는데, 막상 미국에 도착해 보니 미국법에 의하면 에이전시가 돈을 받고 간호사를 고용하는 것이 불법이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절대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고 오히려 경력 있는 간호사를 수급하므로 에이전시에서 편도비행기며 숙소며 사인온보너스 등등 이야기를 나 역시 많이 들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예 관련된 법이 없기 때문에 여전히 이렇게 돈을 버는 업체가 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최근엔 더 많은 업체들이 생겨서 이제는 그들끼리도 경쟁을 해야 하는 입장이 되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계약금을 받는 업체도 있더라. 선택은 각자의 마음에 달렸다고 해야겠다. 나의 경우에는 한국업체를 통하지 않고 미국의 대형병원에 취업을 한 경우라서 좋다 나쁘다 말하는 것도 개인의 감정이 들어가므로 자세히 설명하기엔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본다. 잘 찾아보는 만큼 나에게 맞는 곳이 있더라.
이제 나를 고용해 줄 병원이나 에이전시가 결정되었다면, 남은 것은 미국에서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의 든든한 백이 되어줄 경력을 유지하는 것과 이민절차를 기다리며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는 것이다. 그동안은 내가 무언가를 열심히 해야 이루어지는 단계였다면, 이제는 정말 인내의 시간이 온 것이다. 그리고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인내의 시간 동안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우선순위에 둘 것은 바로 영어이다. 영어공부의 끈을 놓으면 절대 안 된다. 기다리는 시간이 가장 영어실력을 쌓고 자신감을 높여 미국에서의 생활을 편안하게 시작하게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다. 하지만 그렇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시기가 지나가야지만 이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후회하고 가서 고생한다. 분명 미국으로 가는 길이 쉽지 않은데 뭔가 쉽게 흘러간다고 느끼면 그건 내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거다. 다시 한번 강조한다. 영어공부, 특히 영어회화를 열심히 해야 한다. 안 그러면 땅 치고 후회해도 난 모른다.
분명 누군가는 이걸 다 해야 된다고? 기겁을 할 것이다. 그렇다. 정말 쉽지 않은 선택이고 과정이다. 그럼에도 정말 많은 우리나라의 경력간호사들이 이 길을 거침없이 가고 있고, 더 많은 신규간호사들이 졸업도 하기 전부터 준비를 하고 있다. 아마 40대 이상의 유휴간호사(간호사를 현재 쉬고 있거나 경력이 단절된)들 중에서도 지금보다 쉬운 방법이 생기는데 이민 갈 생각 있는지 물어보면, 정말 많은 인력이 썰물처럼 빠져나갈 것이라 장담할 수 있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간호환경이 녹록지 않다. 쉽고 편한 일하며 돈 벌겠다는 심보가 아니다. 누구보다 힘들고 희생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선택한 직업이다. 그러면 그 노력에 대한 대우나 대가는 당연히 필연적인 것 아닐까? 우리나라는 지금의 동남아국가들과 같은 인건비와 업무방식으로 선진국대열에 올라섰다. 그러면 이제는 선진국다운 면모를 보여주면서 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너무나 크다. 내가 이민이나 취업을 고려했던 여러 영어권국가에서는 간호사를 essential worker/healthcare professional이라고 부른다. 필수인력이며 전문의료인력이다. 그렇기에 나라가 무너지더라도 이들은 있어야 하고 존재하게 하려면 대우해야 한다고 한다. 간호사나 소방관, 경찰과 군인처럼 사람을 위해 희생하고 위험을 무릅쓰며 타인을 위해 노력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 "너의 노고에 감사한다(Thank you for your service)"라고 길을 가다가도, 장을 보러 마트에 가서도,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어도 이야기를 해주는 평범한 시민들이 있는 곳에서 간호사로 살고 싶다.
짧게 글로 설명해도 이만큼인 시간과 절차를 겪어오면서 나도 중간에 포기해야 하나? 고민을 해본 적이 있다. 굳이 사서 하는 고생이었기 때문이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이 짓을 하고 있나?라는 말을 입 밖으로 몇 번은 뱉었다. 그리고 다시 나를 다독였다. 응.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하는 거야. 그러니까 그냥 해. 그리고 이제 나에게는 끝이 오고 있다. 아니, 새로운 시작이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