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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국간호사 Sophia Jun 17. 2024

잠시 쉬어가는 경력 만들기

건설현장의 보건관리자

시간은 흘러 다시 추운 계절이 돌아왔다. 급격히 심해진 내 증상을 냉정하게 분석하면 짚히는 병이 하나 있긴 했다. 아니기를 바랐지만 모를 수는 없었다. 빠른 치료가 답이라 생각했고 집 근처에 정신건강의학과에 진료를 예약했다.


옛날에는 ‘정신과’로 불렸고,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만 끌려(?) 가는 곳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요즘은 그렇지도 않다. 게다가 현대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정신줄 붙들고 살기에 힘든 세상이 아닌가.


처음으로 방문한 것이라 내 증상을 파악할 수 있는 검사와 상담이 긴 시간 이어졌다. 이미 내 증상은 스스로 파악한 상태였고 내가 의사는 아니지만 짐작하는 병명이 있었기에 상담 때 만난 의사 선생님께 내 직업과 내가 생각하는 나의 병명에 대해서도 언급을 했다. 그리고 결과는 일치했다.


공황장애.

내가 감당하기 힘든 스트레스에 오랫동안 노출되며 나도 모르게 나 자신을 혹사시키며 번아웃이 온 결과였다.


나는 내 속에 있는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거의 하지 않는 편이었다. 불평과 속상함을 가까운 사람들에게 말로 꺼낸 적도 있지만 그건 내가 생각하는 사소한 일들만 해당했고 일의 중요도가 큰 문제들은 그저 속으로 삭이고 좋은 면만 보려고 하고, 내가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면 언젠가 보상을 받을 거라는 막연함으로만 살아왔다.

다행히 지금껏 살아오며 좋은 분들을 너무 많이 만났고 꿈같은 기회들도 얻었으며 그래서 나는 항상 인복도 많고 여러 가지 행운도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렇다 해도 항상 기쁘고 즐겁지만은 않은 것이 인생이듯 나에게도 아픔은 참 많았다. 그러나 심지어 가족에게조차 나의 힘듦과 어려움을 털어놓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맏이였고, 내가 집안의 모든 일을 잘 돌아가게 해야만 한다는 책임감도 컸다. 그런 모든 상황들이 겹치고 쌓여서 결국 터지게 되었던 것 같다.


나는 얼른 이 상황을 바로잡고 싶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병을 인정하는 것도 거부하고 약물치료는 더욱이 생각하지도 않지만 나는 먼저 하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만큼 나는 도움이 필요한 상태였다. 그리고 내 인생이 힘들지언정 포기하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나의 상태를 제대로 알게 된 이제라도 다시금 행복이라는 것을 하루하루 느끼며 나를 사랑하고 애정하며 살고 싶었다. 다행히 나를 담당하신 선생님도 그 부분을 매우 좋은 시그널이라 말씀해 주셨다. 그렇게 나를 위한 시간을 찾아가는 치료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약물치료는 꽤 빠른 시간 내로 효과가 있었다. 우선 내 의지대로 조절되지 않던 신체증상들이 안정되었고,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해 괴롭던 시간들이 약의 도움을 받아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물론 오랜 기간 약을 복용하거나 의사의 지시가 아닌 내 짐작대로 약용량을 조절하거나 함부로 끊는 것은 위험하기에 최대한 처방받은 대로 약을 먹도록 노력했다.


하지만, 치료만 받으며 쉬고 싶은 마음이 있다 해도 집에만 있는다고 낫는 병도 아니었고, 당시에는 남편도 미국이민을 앞두고 회사를 언제쯤 그만둬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희망퇴직소식을 듣고 신청을 해서 백수가 되었던 때라서 맘 편히 둘 다 백수로 지내는 것은 어려웠다. 그래서 병원은 너무 일하기 부치고 조금은 일의 강도가 낮은 것이 있을까 찾던 중에 옆동네에서 간호사 구인공고를 보았다. 중견기업 건설회사의 아파트 시공현장 보건관리자를 찾는다는 공고였다.


이미 연구간호사로 일한 경력 덕분에 서류와 공문 등의 업무에는 어려움이 없었고 병원이 아니기에 환자가 아닌 건강한 사람의 질병과 사고를 예방하는 데 초점을 맞춘 업무를 하는 것이어서 병원의 교대근무나 업무에 비해서는 피로가 심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돈이 필요한 나에겐 좋은 조건이었다. 면접을 보러 가서 업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도 못할 것 같은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남편도 회사에서 안전관리자의 업무를 병행해 본 적이 있어서 도움을 주겠다고 했고 조언을 들을 사람이 있으니 해보겠다 마음먹었다.


그렇게 적극적인 치료를 받아 신체적, 정신적인 증상도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가는 상황에 새로운 일에 도전하게 되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편견의 여지를 주고 싶지 않았고 자랑할 일도 아니어서 나의 병명은 나만 알고 있기로 했다. 그리고 실제로 이곳에서 일하면서 나는 성장함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고 그 만족감으로 다시 병원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결론적으론, 막상 일을 해보니 건설현장은 춥거나 더워도 야외에 나가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고 근무시간도 긴 편이라 쉽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내가 선택한 모든 경험은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건설현장의 아침은 일찌감치 시작된다. 4계절이 있어도 현장의 계절은 없다. 매일 아침 7시부터 공식적인 업무가 시작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보다 더 이른 시간부터 분주히 움직인다. 체력을 소모하는 일이고 도처에 위험요소가 많은 건설현장에서는 업무의 진척도도 중요하지만 특히 안전하고 건강한 상태에서 근로자들이 일할 수 있도록 매일 확인하고 챙겨야 하는 일들이 많다. 보통 나는 7시까지 출근을 해서 현장 반장님들(일꾼들을 나는 모두 반장님이라고 불렀다)이 애정하는 믹스커피를 한잔하고 오늘 새로 일하러 온 근로자들에게 받아야 하는 서류와 교육을 위해 교육장에 간다. 특히 겨울에는 뇌혈관질환이, 여름에는 고온의 기온으로 일사병과 열사병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근로자의 건강상태를 그 시간 동안 파악하고 업무에 투입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혈압이나 당뇨, 암과 같은 과거력이 있는지도 꼼꼼히 확인하고 근로 시 주의해야 하는 사항에 대해 교육을 철저하게 했다. 대부분의 근로자들은 하루이틀 일하고 일당벌이로 생활하는 경우가 많아서 자신의 지병을 숨기고 건강한척하는 때가 많다. 그래서 나는 그것조차 알고 있으니 솔직하게 이야기하도록 설득하고 최대한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그리곤 어느 정도 근로자들의 건강데이터가 모이게 된 이후에는 주기적으로 관리가 필요한 근로자들에게 근무 중 건강상담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기업에서는 보건관리자와 안전관리자가 안전보건팀에 함께 소속되어 업무를 하다 보니 업무의 경계가 모호할 때가 많다. 그래서 간호사출신의 보건관리자들은 자신의 영역을 지키지 못하는 것에 불편함을 가지게 되고 때론 ‘내가 이 일까지 해야 되는가?’로 논쟁을 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근로자가 작업 중 사용하는 화학물질의 MSDS를 점검하고 적절한 표시가 있는지 현장에서 확인하며 없다면 만들어 붙이고, 물질을 제대로 사용하고 있는지 감독하고 이와 관련된 서류와 제조유통업체에 확인하는 것을 해야 하거나 특수검진과 작업환경측정의 업체 섭외 및 예산설정, 진행전담을 하거나 외부인사 내방등의 회의가 있을 때 회의실 다과 및 진행을 준비하는 등 엄격히 말하면 간호사 등 의료인의 해야 하는 업무에는 직접적으로 해당하지 않거나 아예 새로운 분야여서 독학을 하거나 산업안전기사나 산업위생기사 자격증을 따고 업무를 파악할 수 있게 하는 상황이 많았다. 그리고 내가 일하던 곳의 팀장님 또한 보건관리자가 안전관리자의 업무를 당연히 병행해 주기를 원하셨다.


이런 상황은 내가 알기론 건설업에 많다고 알고 있는데, 간호사는 근로자의 건강관리에 초점을 맞추고 업무를 하는 사람이어서 새로운 업무를 배울 수는 있겠지만 전혀 해보지 못한 사람에게 무조건 해야 하는 업무라고 넘겨준다면 부담감이 커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 될 거라고 본다. 하지만 이건 법적으로 확실히 구분된 업무가 아니기도 하고, 우리나라의 문화가 니일 내일 딱 잘라 가려서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라는 것은 나 역시 인정한다.


그러나 내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안전관리자는 현장의 안전을 지키고 유지하는 업무가 주된 것이고, 보건관리자는 현장에 일하는 근로자와 관리자 등 모든 사람의 건강을 지키고 유지하는 업무를 하는 것이 주 목표이기에 그걸 서로 인정하는 상태에서 각자의 업무를 보장하면서 서로를 보완해 주는 것이 그나마 갈등을 줄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내가 일한 현장은 1000세대 이상의 아파트가 들어서는 800억 이상의 예산이 필요한 제법 큰 규모였고, 착공 이후 건물이 올라가면서 더욱 많은 근로자가 투입되어야 하는 곳이었다. 나는 준공 때까지는 일하지 않아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보통 아파트 공사가 2-3년 정도의 기간을 소요하는 데 나는 중간 1년을 담당했고 하루에 투입되는 근로자는 최소 300명 이상이었다. 경력의 기간은 길다 말할 수 없지만 소규모 현장에서는 알 수 없는 많은 업무를 담당했고 특히, 근로자의 건강을 위해 기존에는 없었던 시스템을 여러 가지 만들었다. 건설현장 근로자들은 일당직이 많아서 건강검진에서 소외되기가 쉬운데, 고용노동부에서는 산업안전보건공단을 통해 건강디딤돌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는 특수검진과 신규근로자의 일반검진의 비용을 신청하는 기업에게 나라에서 지원해 주는 프로그램이다. 내가 일한 중견기업이 꽤 오랫동안 운영되었음에도 한 번도 이를 신청한 담당자가 없었다고 한다. 이 좋은 지원을 왜 받지 않은 건지.. 그래서 그동안은 검진비용을 협력업체에 일부 부담하게 하는 등 근로자가 금액적인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모든 협력사에 취지와 지원에 대해 설명하고 가능한 많은 근로자에게 검진을 독려했다. 처음 특수검진을

시행하며 건강디딤돌사업으로 지원받은 금액은 전체 검진비용의 70% 정도였다(이는

사업장의 건설비용 규모에 따라 차별지급된다) 내가 지원한 것이 최초였기 때문에 본사에서는 공문을 내려 전국의 다른 현장에도 신청을 하도록 했다. 회사차원에서는

참 많은 비용을 아낀 것인데 나에겐 한 푼도 돌아온 것은 없었다. 그게 직장인의 비애이다.


내 자랑 같지만 나는 일하는 곳에서 정말 최선을 다한다. 그뿐 아니라, 없던 것을 만들고 있는 것을 개선하며 내가 그 자리에 있는 것이 부끄럽지 않게끔 일하며 지내왔다. 그러다 보니 경력의 기간보다 훨씬 많은 업무를 파악하고 담당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곳에서도 역시나 오지랖 넓게 일하며 나의 존재감을 느끼려 했던 것 같다.


체력적으론 많이 힘들었다. 현장에 나가는 일이 싫은 건 아니었지만 건물이 올라가기 전부터 허허벌판의 중장비가 가득한 위험천만한 장소에 나가는 것이 겁나기도 했고, 서류업무가 많아서 붙들려있어야만 했는데 업무시간에는 좀 느슨하게 일하면서 퇴근시간이 지난 이후에 야근을 하는 것이 이 기업의 문화라서 항상 칼퇴하는 나는 눈총의 대상이었을 거라 생각한다.(다행히 대놓고 말한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못마땅해하는 꼰대들이 있었다는 건 그만둘 때 알았다) 그럼에도 하루 11시간이 넘는 근무시간과 주말에도 두 번은 당직을 서야 하는 점 때문에 높은 급여에도 오래 일하기 힘든 일이라는 생각은 하게 되었다. 만일 내가 나이가 많아서 이직이 어려운 환경이었거나 미국이 아닌 한국에서 직장을 계속 다녀야 했다면 그래도 병원보다는 더 나은 곳이었다고 생각한다. 회사는 병원보다는 덜 폐쇄적이고 여러 직군이 함께 일하기에 자유로운 면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간호사의 정체성을 지키고자 보건관리자가 되려면 건설업보다는 제조업 회사가 더 적합한 것 같고 또는 기업의 본사에서 정규직이면서 독립적으로 건강관리실을 운영하는 정도면 좋을 듯하다.


사실 좀 더 일할 수 있긴 했는데 일 년만 일하고 그만두게 된 이유가 또 있기는 하다. 건설업종은 우리나라에서 아직 유일하게 흡연이 허용된다. 금연을 장려하는 문화가 없다. 그래서 일하는 동안 내가 제일 견디기 힘들었던 것이 담배냄새를 맡아야 했던 일이다. 근로자뿐 아니라 관리자들도 거의 모두 흡연자이다. 그러다 보니 여성 근로자들도 흡연이 자유로워 일하러 오는 사람도 있었다. 아무리 양보해도 건강에 예민해야 하는 입장으로는 수긍이 안되어서 귀여운 나의 퇴직금이 발생되자마자 안녕을 고했다.


그럼에도 누군가에게는 아주 적합할 수 있는 업무가 될 것이다. 특히, 매일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급박한 병원에서의 생활은 심신을 지치게 하는데 그보다는 여유로움이 있고, 누군가를 교육하고 서포트하는 업무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서류 작업이 매우 중요하고 양이 많긴 하지만 이건 큰 규모의 현장에서 일했기 때문에 내가 좀 특이한 경우였을 수도 있을 거라 그것 때문에 못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일 내가 간호사이면서 좀 더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거나, 촌각을 다투는 심적부담감에서 벗어나고 싶은 상황이라면 한 번쯤 고려해 봐도 좋을만한 직종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아직 전문성을 가진 직업이라고 하기에는 한계가 많아서 여전히 발전가능성이 많은-달리말하면 아직은 헤쳐나가야 하는 현실의 벽은 있는 자리이기에 능력 있는 간호사들이 그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로 쓰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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