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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국간호사 Sophia Jun 10. 2024

한국 병원 근무 경험기 - 5-2

재발한 나의 마음의 병

그렇게 일하다 보니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더 이상 버티는 것은 나에게도, 남아있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지금 일하는 이곳의 경력이 좋기도 했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의 분위기도 맘에 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껏 겪어보고 들어본 바 바쁘고 큰 병원일수록 일하는 분위기가 좋은 곳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이곳이라면 계속 일하다 수속이 끝나면 미국에 넘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컸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에는 미국에서 내가 일하던 부서에서 일하고 계신 선생님 몇 분의 이야기도 한몫을 했다. 워낙 한국의 업무량과 환자수가 지나치게 많은 것이고 미국의 항암주사실 간호사는 많은 간호사들이 근무를 원하는 부서라고 했다. 보통 하루동안 3명에서 최대 6명의 환자를 만나게 되고,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처럼 한 공간에 여러 사람을 두고 치료나 간호를 하는 경우가 없이 한 번에 한 명의 환자만을 케어하게 된다. 그렇기에 아무래도 부담감이나 책임감이 분산되지 않아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좀 더 집중하고 필요한 많은 것을 해줄 수가 있으니 간호사로서 살기에 한국보다는 미국이 월등히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미국에서는 은퇴할 때까지 계속 일할 수 있는 꿀부서 중 하나라고도했다. 만일 이 경력을 가지고 미국에 가게 된다면 몸도 덜 힘들고 전문성도 있는 부서겠구나 생각했고 그런 생각을 하니 더욱 이 자리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어디 세상일이 사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던가... 날이 갈수록 몸은 따라주지 않고 내가 더 버티다간 큰일이 나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 용기를 내어 수간호사 선생님께 면담을 요청했다.

 대부분 이런 면담요청은 사직에 관한 것으로 이미 짐작하고 자리를 가지게 되는데, 수선생님께서는 자신의 개인사를 스스럼없이 내보이시면서까지 나를 붙잡으셨다. 더욱 고마웠던 것은 그저 일할 사람이 없어서 회유하는 것이 아니라 나보다 세월을 더 살며 간호사로 살아남은 선배로서 나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조언을 해주셨다. 나 역시 머리로는 이해가 되었다. 나에게도 결코 나쁜 조건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결국 사직일자를 조율하고 퇴사면담을 종료했는데, 추후에 미국에 가기 직전 뜬금없이 연락드려서 찾아뵙고 나의 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만두게 된 사실을 털어놓았던 것은 안 비밀이다.


나의 힘든 몸과 마음에도 불구하고 항암주사실에서 일했던 그 짧았던 한 달도 안 되었던 경력은 내가 간호사로 일하는 것을 분명히 좋아하고, 힘은 들지만 보람을 느꼈으며,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다시금 일하고 싶은 부서가 되게 하였다. 생사를 넘나드는 그곳에서 무엇인가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은 내가 가치 있는 일을 하며 시간을 쓴다는 것을 알게 하였고, 살아있다는 것이 때로는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살아있는 삶은 행복이라는 것을 느끼게 하였다. 그리고 누구나 그 자리에 환자로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으며 나의 인생을 소중하게 여기며 하루하루를 감사하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나의 경력 중 대부분의 시간이 암을 진단받고 치료하며 생존을 위해 싸우는 환자와 보호자를 만나는 일이었다 보니 때로는 인생의 허무함과 슬픔이 나에게 전도되기도 했다. 특히, 환자와 의료진의 관계를 떠나 마음이 더욱 가는 분들이 있기도 한데 좋은 경과를 보여 희망을 가졌다가도 갑자기 나빠지며 생을 마감하는 것을 보기도 했다. 그럴 때면 그들의 가족이 된 것처럼 가슴 아프기도 했고 나는 이런 일을 하는 것에 내성이 생기지 않아서 오래 할 수는 없겠다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사람은 왜 사는 걸까?라는 염세적인 생각도 하며 우울할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누구나 세상에 태어나서 자신만의 세상을 이루고 삶을 누리며 무언가 해야만 하는 사명 같은 것이 있다고 믿는다. 때로는 깨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속상하고 상심하는 일이 생기기도 하지만 여전히 나의 세상을 성실하게 꾸려나가다 보면 의미 있는 결과가 생긴다고도 믿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사람들끼리 인연을 맺고 서로를 도우며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겨울에 나는 또다시 백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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