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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국간호사 Sophia Jun 01. 2024

한국 병원 근무 경험기 - 5-1

항암주사실에서 보고 듣고 느끼며 생각하기

코로나 전담병원에서의 피로감을 내려놓고 약 4개월 동안 나는 건강 챙기기에 열심을 냈다. 잠도 푹 자고 좋은 재료로 맛있는 집밥도 챙겨 먹고 운동도 했다. 그러고 나니 찬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이 되자 몸도, 마음도 많이 회복되었음을 느끼게 되었다. 완전히 나아서 전혀 내 건강에 문제가 없는 것 같다고 느끼는 건 아니었지만 계속 백수로 지낼 수도 없으니 다시 일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차에 예전에 연구간호사로 일했던 병원에서 임시직 간호사 모집공고가 떴고, 이제는 연구가 아닌 간호업무의 경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지원을 했다. 혹시나 떨어질 수 있다고 생각은 했는데 그건 나이 때문이었다. 이미 40대에 들어섰기에 경력이 있더라도 재취업이 쉽지 않다는 의견이 간호사 커뮤니티에 많았고 나 역시 지원하는 병원에서 결과를 볼 때마다 점점 더 그 현실을 느끼던 바였다.


다행히 최종합격을 했고 채용된 이후의 상황을 보며 합격한 이유를 꼽아보자면 지원했던 병원이 블라인드채용을 했는데(나이, 경력 있는 곳의 기관명, 학교이름 등을 서로 알려서는 안 되는 채용방식) 내 나이만큼 액면가(?)는 따라오지 않았던 나름 동안의 외모가 한몫을 했고, 채용형태 역시 임시직 간호사를 뽑은 것이라 정규직으로는 전환되지 않아서 병원입장에서는 추후의 직위보장을 할 필요가 없었기에 당장 업무에 투입될 수 있는 사람인지 여부만 고려하여 어느 정도 경력이 있는 사람, 특히 밥벌이가 절실한 사람들 중에 선발을 했던 것 같다. 점점 경력자들은 경력의 기간만큼 나이를 먹어가니 이런 기회가 아니라면 아예 면접조차 보기 어려운 우리나라의 안타까운 고용현실을 느끼게 된 경험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가게 된 부서는 이전처럼 교대근무를 하지 않는 곳이었고 주말과 공휴일은 휴무가 보장되어 체력적인 부담감은 덜한 곳이었다. 하지만 전국의 환자들이 물밀듯 오는 곳이라 업무량과 난이도는 일하는 사람에게는 혀를 내두르게 하는 곳이기도 했다.


입사 첫날부터 내가 일할 부서에 가서 업무를 배우기 시작했다. 솔직히 첫날에는 돌아가는 것 알려주며 조금은 느슨하게 시간을 보낼 줄 알았는데 그건 내 착각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일하던 항암주사실(외래주사치료실)은 시작부터 마감까지 수많은 환자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곳이었다. 여유를 주고 싶어도 줄 수가 없는 하드코어 부서였던 것이다.


그래도 예전에 전담간호사를 하면서 이론으로만 알고 있던 항암약제의 종류와 부작용 등을 실제로 환자에게 투여하면서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었고, 연구간호사로 환자에게 적용하는 치료를 눈으로만 보다가 내가 실행하는 입장이 되니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중 나에게 인상 깊었던 것은 환자들이었다. 자신의 일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이지만 희망을 가득 안고 병원에 오는, 그리고 힘든 치료에 지치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있는 여러 인간사를 눈으로 보며 실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된 시간이었다.


그러다 보니 비록 경력이라고 말하기엔 짧은 기간이었지만 환자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면 어떻게 해주는 것이 최선인지, 환자를 위한다는 게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고 또 개인적으론 나 자신의 인생살이를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암이라는 병과 싸우며 하루를 온전히 병원에서 치료를 위해 보내는 것을 보면서 나의 하루를, 나의 인생을 절대 허투루 살아선 안된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고 한편으론 치료를 받으러 와서 나를 만나는 환자들이 가능하면 편안하고 부작용 없이, 좋은 컨디션으로 치료를 끝내고 즐거운 마음으로 집을 향하기를 바라고 또 암이라는 병을 이겨내서 건강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하게 되었다.


항암주사라는 것은 보통은 3-4주에 한 번씩 예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암을 죽이기 위한 독성을 포함하고 있어서 약을 투여한 이후에 회복기를 거치는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가장 컨디션이 좋은 시기에 주사를 맞게 되고, 집에 가서는 부작용과 여러 가지 증상에 시달리기 때문에 처음 항암을 하는 환자와 보호자에게는 주의사항과 궁금한 점을 묻고 답하기도 하며 때로는 옆자리에 있는 항암선배(?)들의 조언이 있기도 하다. 수술을 한 뒤에 항암을 하기도 하고 수술을 위해 미리 항암을 하는 경우도 있으며, 수술을 할 수 없는 종류의 암이나 병기를 따져 여러 가지 약물로 다양한 스케줄로 주사를 맞기도 하는데 공통적인 건 항암이라는 치료자체가 환자에게는 이겨내기 힘든, 그래서 정서적인 지지와 섬세한 배려가 그나마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다.


나의 프리셉터 선생님은 8년 차 항암주사실 간호사였는데 그 바쁜 주사실에서도 여유로움이 보였고 그럼에도 정확한 업무처리를 하는 분이셨다. 물론 8년의 경험을 갓 입사한 내가 따라 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나는 가르쳐주는 것을 최대한 빨리 내 것으로 만들어 여유롭지는 못하겠지만 제대로 알고 일을 하는 간호사가 되고 싶었다. 다만, 워낙 사람에 치이고 일에 치이는 곳이다 보니 마음으로는 환자를 더 챙기고 신경 쓰고 싶지만 그럴 여유자체가 없는 상황이라서 오랜 경력자임에도 환자 한분 한 분을 챙겨주기가 어려워 보였다. 그래도 환자들에게 중요한 부분은 빠짐없이 챙겨주고 특히 이전에 부작용이 있던 분이거나 처음으로 항암치료를 하는 분께는 좀 더 확인하고 설명하는 것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해드려야지..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3주간의 트레이닝 기간이 주어졌고, 매일 새로운 항암레지멘(항암주사제의 레시피라고 하면 좀 쉬우려나.. 여러 가지 약제를 쓰는 경우 순서와 주의점, 특징 등을 제대로 이해하고 투여를 하기 위해 숙지해야 할 것이 많다)을 배우고 암기하고 또 시험을 치고.. 다시 신규간호사가 된 것처럼 매일 집에 와서 공부하고 배운 것을 정리하다 보니 벌써 일한 지 열흘이 지났다.


공부하는 것은 자체로 재미가 있었다.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은 항상 나에게 만족감을 주는 일이었고, 특히 이론으로만 알던 항암에 대한 직접적인 부분을 배우고 체험하면서 부족한 부분이 채워지는 기분도 들었다. 다행히 나의 노력이 다른 이에게도 보였는지 나의 프리셉터선생님은 위로와 칭찬을 많이 해주시던 분이라서 더욱 고마운 마음에 열심히 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일하는 사람은 항상 부족했다. 바빠서 그렇지 부서의 분위기도 좋았고 같이 일하는 분들 모두 서로를 챙겨가며 힘들지만 함께 으쌰으쌰 하는 상황이라서 이런 곳이라면 오랫동안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수간호사선생님의 호출이 왔다.


사람이 너무 부족하고 내가 일에 잘 적응하고 있으니 트레이닝기간을 줄이고 2주 만에 독립을 하자는 말씀을 하셨다. 머리로는 이해가 된다. 일할 사람은 적고, 할 일은 넘쳐나고.. 나라도 내 몫을 해야 다른 사람들도 숨통이 트이고 일이 제대로 굴러간다는 것을. 그렇지만 아직 나는 혼자서 그 많은 환자들을 제대로 감당하기엔 너무나 부족했다. 자신이 없었다. 만약 내가 신규간호사였다면 그러라면 그런 줄만 알고 알겠다고 하고 혼자 끙끙댔을 것이다. 하지만 앞선 경험으로 나를 지키는 것이 나에겐 가장 중요한 상황이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트레이닝은 원래 받기로 한 기간만큼은 해달라고 말씀드렸다. 결국 결론이 나지 않은 채 다시 자리로 돌아와 일을 했고 다시 나의 머리는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사실 일을 열심히 배우고 잘해보려 노력하고 있긴 했지만, 일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나에게는 또 없던 신체증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너무 소화가 안되었고 그러다 보니 먹을 수 있는 게 커피나 음료수와 같은 액체류와 간단한 간식거리인 요거트, 과일정도였다. 밥이나 제대로 된 음식을 먹으면 조금만 먹어도 소화가 되지 않고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긴장을 잘하고, 긴장하면 체하는 게 원래 나에게 있던 지병(?)이라 그런가 보다 했다. 그래서 점심시간에는 식당에 가지 않고 편의점에서 간단히 요기할 간식을 사서 먹고 탈의실에서 쉬는 것을 택했다. 워낙 일은 힘들었기에 피로감에 퇴근 후 밤잠은 까무룩 기절해서 자곤 했지만, 소화불량에 조금만 먹어도 더부룩한 불편감에 점점 먹는 것을 기피하게 되었다.


그러다 수선생님의 면담 이후, 다시 코로나병동에서 경험했던 증상이 시작되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나의 병은 완전히 나은 것이 아니며 잠시 좋아졌으나 재발했고 지금 이 압박감과 부담감을 내려놓아야만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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