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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국간호사 Sophia May 27. 2024

한국 병원 근무 경험기 -4-2

내 건강이 우선이다

나는 솔직히 열정적으로 이 한 몸 다 받쳐 부서지도록 열심을 내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코로나19 시기, 특히 전담병원에서 근무를 해 본 분이거나 뉴스를 통해 의료진들의 근무상황을 보신 분들은 공감할 텐데 나의 의지와 능력을 벗어난 범주의 업무량에 노출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내 한계치를 넘는 경험을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간호사로 일한 지 햇수로 10년 만에 나는 ‘번아웃’을 겪게 되었다.


처음에는 나의 건강에 문제가 생긴 건지 아닌지조차도 몰랐다. 그저 매일 레벨 D 라 불리던 보호복을 입고 격리구역에 들어가서 해야 할 일을 하다 보니 어느 날 갑작스레 숨이 차고 심박동이 빨라졌다. 달리기를 한 것도 아니고 힘을 쓰는 일을 하지도 않았는데 내 몸이 보내는 신호는 좀 이상했다. 당시에 나는 심박동을 체크할 수 있는 애플워치를 가지고 있었는데 가만히 서서 일하면서도 전력질주 달리기를 한 것처럼 숨이 가빠지고 어지러우면서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을 느끼곤 했다. 이때 내 심박동 수는 130-150 사이에 있었다는 걸 나와서 워치를 확인하며 알게 되었는데 처음 몇 번의 이상 경험을 할 때는 격리구역에서 처음 느꼈던 공포심 또는 좀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며 쉽게 넘겼다. 그러다 점점 증상이 심해지면서 수면장애까지 경험했다. 이미 3교대 근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증상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쉬는 날에는 멀쩡하다가 출근만 하면 심장이 고동치고 숨이 차는 증상이 있으니 이런 건 꾀병인가 싶었다. 그러다 근무 6개월을 맞이하여 특수검진을 하면서 내 몸과 마음에 뭔가 이상이 있다는 것을 더 크게 느꼈다.


잠시라도 일을 쉬고 싶었지만 이제 겨우 6개월 차였고, 없는 인력을 쥐어짜며 다들 힘들게 일하는 걸 알았기에 눈치 주는 사람이 없었지만 눈치가 보였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계속 일할 자신이 없었다. 지금 쉬어야 더 이상 아프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당시에 가족들은 나를 걱정하긴 했지만 일을 그만두는 것은 끈기 없는 일이라 여겼기에 내가 앓는 소리를 하면 힘들어서 어쩌냐.. 가 다였다. 그래서 더욱더 그만두는 것이 고민되었지만 내 마음은 나부터 살리고 보자는 것으로 결정하게 되었고 지금 돌이켜보면 가장 잘한 결정 중 하나라고 느낀다.


결국 7개월의 짧은 경험을 끝으로 코로나병동의 경력은 종지부를 찍었다. 더 오래 그 병동에 남아서 일한 선생님들도 계시지만 그분들이 대단한 것이지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몸과 마음을 쉬게 하면서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미국 가는 날까지 경력을 채울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4개월간의 공백기동안 나는 체력을 많이 회복했고 다음 경력을 위해서 이직준비를 했었다. 그 사이 코로나도 조금은 기세가 꺾이며 이제는 확진이 되어도 충분히 치료를 받고 회복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었다.


다시금 그런 상황이 생긴다면 내가 꼭 하고 싶은 것이 있다. 환경과 상황에 압도되지 말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인지 객관적으로 주관적으로 잘 판단해서 내 자신을 먼저 지키자는 것이다. 내가 건강해야 나의 삶이 유지되는 것이며, 그래야만 남을 돕는 나의 일도 잘 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때의 시간은 꽤 오랫동안 나의 삶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때로는 지금도 나의 일상에 타격을 주기도 한다. 일했던 것을 절대 후회하지는 않지만 더 이상 같은 경험은 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그때 함께 울고 웃으며 아픈 이들을 위해 힘썼던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와 건강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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