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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국간호사 Sophia Nov 18. 2024

쉬는 날은 뭐 하니?

출근보다 더 바쁜 휴일

우리나라에서는 주 5일 근무가 기본이다. 실제 출퇴근시간하는 데 걸리는 시간과 업무준비와 마무리를 위한 시간 등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직장생활에 써야 하지만 그래도 어렸을 때는 학교도 직장도 토요일까지 다녔던 시절도 있기에 그에 비하면 하루 쉬는 날이 더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래서인지 미국에 오자마자 가장 기대했던 것은 12시간씩 3일만 일하는 환경이었는데, 6일만 일하다가 5일을 일하는 것도 무척 기분 좋은 일인데, 5일을 일하다 3일을 일하게 되면 도대체 어떤 기분일지, 얼마나 여유로울지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근무를 하면서도 달력에 쉬는 날로 뻥뻥 비어있는 요일을 보면 진짜 이렇게 쉬어도 되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정도로 처음엔 너무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사람이란 어떤 존재인가. 적응하는 동물이 아니던가. 미국생활을 반년도 하기 전부터 나는 이미 이 생활에 너무도 익숙해져 버렸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데엔 그만한 이유도 있다.


첫째로, 미국에서 일하는 병동간호사의 체력과 정신적 소모는 꽤 크다. 우선 일하는 사람이든 환자든 덩치가 대단(?)들 하고, 그런 환자들을 흔하게 만나기 때문에 이들을 간호하면서 사용할 수 있는 좋은 도구나 기구들이 있더라도 신체에 무리가 되는 자세나 업무를 할 수밖에 없고, 이렇다 보니 퇴근해서 다음날 출근하기 전까지, 또는 쉬는 첫날은 몸살이 난 것처럼 종일 침대에 누워서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하루를 보내게 된다. 정신적인 부분 또한 소모하는 부분이 많은데, 자신의 병에 대해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는 약하지만 관심(?)은 많은 환자들 덕에 질문과 설명이 참 많이 필요하고 약 하나 먹일 때에도 하나하나 알려주고 먹을래? 말래? 물어야 하는 상황이 한국과는 매우 다르다. 그러기에 실상 4일을 쉬는 간호사의 스케줄에서 첫날은, 오늘은 일하지 않는다는 안도감에 쉼으로 보내게 되고 남은 3일 동안 일하며 하지 못했던 집안일과 외출 등의 볼일을 소화해야 하기에 솔직히 아주 푹 쉬었다는 기분은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둘째로, 3일만 일하기는 하지만 근무시간자체가 길기 때문에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되기 일쑤다. 다음날에도 근무가 있다면 집에 와서 씻고 먹고 자는 것 이외에는 다른 것을 할 여유도 없다. 그러다 보니 출퇴근을 이틀 줄인다는 의미는 출근하는 날 일을 엄청 농축해서 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쩌면 내가 일하는 병원이 굉장히 큰 데다 중한 환자들을 모조리 받아주는 규모이기 때문에 일이 더욱 힘들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간호사의 일이라는 것은 어디를 가도 다르진 않을 것 같다.


마지막으론, 쉬는 날 장을 보러 간다고 해도 한 군데에서 모든 것을 다 마련할 수 없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미국의 마트환경 때문에 최소한 두세 군데에서 많게는 대여섯 곳까지도 가야 하는 상황이 참으로 흔해서, 쉬는 날도 일하는 날 못지않게 바쁘고 힘들게 다니는 것도 쉬는 날이 한국에서보다 많지만 그리 많다 느끼지 못하는 이유가 된다.


특히, 지금은 밤근무 전담으로 일하고 있기 때문에 낮에 일하고 밤에 자던 생활보다도 체력적인 부담과 무기력을 더욱 많이 느끼고 있고, 쉬는 날 운동과 건강을 위한 계획을 잔뜩 세웠어도 지켜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쉬는 날 아침에 퇴근을 하면 남은 그날을 잠으로 보내는 게 아까워서 오전에 쪽잠을 자고 점심때 일어나서 낮에 일하던 것처럼 하루를 보내고 그날 저녁에 다시 잠자리에 드는 습관을 만드는 것도 쉽지 않고 말이다.


올빼미 체질로 20-30대를 보낸 터라 밤을 새우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 같았는데 가만히 앉아서 밤을 새우는 것도 피로감이 들 텐데 움직이는 시간이 더 많고 신경을 온통 환자들에게 두며 일하는 환경이 건강에 좋을 리 만무하다. 그래서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면 아침근무에 자리가 나면 지원을 해서 시간대를 옮기거나 다른 부서나 병원으로 이직을 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아직은 견딜 만 하지만 나도 언젠가는 건강을 위해서 옮겨야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그럼 쉬는 날은 뭘 하며 보내는지 말해보자. 좋은 재료로 잘 먹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부로 이루어진 건강한(?) 가정이기 때문에 우선 냉장고를 보며 떨어진 식재료를 채우러 장보기를 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다. 보통 장보기는 한 군데서 끝낼 수가 없는데, 이는 미국에 사는 한인들이 입을 모아 하는 이야기이다. 그로서리라고 불리는 마트들은 각자의 주종목과 가격이 달라서 최소 두 군데에서 세 군데 정도는 들러야 필요한 재료를 만족스럽게 구할 수가 있다. 나는 대부분 식재료는 홀푸즈와 코스트코, 트레이더조를 이용하고 가끔 사는 아이템은 월마트나 타겟, 크로거에 가서 사기도 하는데 더 나은 옵션을 찾지 못해서 처음 샀던 곳에 가는 거라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자주 가는 곳에서 대체품을 찾게 될 듯하다.


이렇게 두세 군데 장을 보고 집에 돌아오면 아무리 빨리 와도 서너 시간이 훌쩍 흐른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마음먹고 장을 보기 때문에 집에 와서 정리를 하는 것도 시간이 꽤 걸린다. 다행인 것은 미니멀라이프를 7년째 하면서 냉장고에 있는 재료들을 최대한 파먹은 다음에 장을 보는 습관 덕분에 장을 보더라도 냉장고가 넘쳐 보관할 곳이 없거나 식재료가 썩어 버려지는 일은 없어서 알뜰하게 살림을 하고 있어 참 다행이다.


아 그리고 또 한 가지, 반찬이나 국거리를 사고 나면 열흘정도는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먹고 도시락도 쌀 수 있지만, 과일은 우리 둘 다 너무 좋아하는 편이고 한국보다 훨씬 싸고 신선도가 좋아서 여러 가지를 자주 먹어보고 싶어 하기 때문에 종종 반찬거리보다는 과일이 떨어져서 장을 보러 일부러 나가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결국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장보기가 필수인 형편이다.


그렇게 장을 보면 당연히 그날은 반찬 몇 종류와 먹고 싶었던 요리를 해 먹는다. 주부님들은 잘 아시겠지만 요리하는 것을 좋아해도 부엌에서 재료를 준비하고 반찬을 만드는 것은 시간이 꽤나 걸리는 일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미루지 않고 장을 본 날 신선한 재료를 이용해서 최대한 많은 반찬을 만들어두는데 그러다 보면 반찬은 많은데 밥을 못 먹어서 배는 고픈 상황이 생긴다. 그래서 생각한 방법은 장보고 집에 오자마자 한 가지 요리를 먼저 간단히 해서 식사를 하고 식후 커피나 차를 한잔 마시며 잠시 숨을 돌리고 본격적인 반찬 만들기에 돌입하는 방법인데 꽤나 효과가 있다.


미국 정착 초반에는 일부러 외식하며 우리 입맛을 찾아보려 장 보러 나가면 밖에서 사 먹고 장을 보는 코스가 일상이었는데, 몇 번 사 먹어보니 내 입맛에 맞는 것은 햄버거와 치킨 뿐이라 이제는 집에서 맛있는 메뉴로 밥을 충분히 먹고 커피도 집에서 준비해서 바로 장을 보러 간다. 이렇게 하면 불필요한 과소비도 줄이고 비싼 돈 주고 맛없는

음식을 먹었다는 억울함도 방지할 수 있다.


드디어 장보기와 반찬 만들기가 끝났다. 그럼에도 시간이 좀 남았다면, 미뤄두었던 청소를 한다. 대부분 매일 조금씩 청소를 하는 습관 덕분에 대청소라 할 것은 없지만 그래도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은 있기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결국 대청소가 되어 버린다. 청소를 다한 집을 바라보면 뿌듯 하지만 그만큼 내가 한 일이 많은 것이기 때문에 또 그만큼 피로감은 몰려온다.


이렇게 쉬는 날 하루가 순삭이다. 그래도 아직 이번주 나에게는 이틀의 쉬는 날이 남아있는 것이다. 그래도 이틀이면 꽤 괜찮지 않은가! 그런데 또 이게 그렇지가 않다.


그래도 이 정도 해 놓았으니 남은 쉬는 날 동안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있긴 해서 대부분 공원에 산책을 가거나 가까운 쇼핑몰 구경을 가기도 한다. 아직 멀리 Roadtrip을 가본 적은 없지만 언젠가는 쉬는 날 가까운 곳으로 다녀오고 싶다는 계획은 있다. 계획이 있다고 했지 간다고 한 적은 없다. 아직은 피곤함이 크다.


그렇게 또 하루를 보내고 나면 마지막 하루가 남는데, 내 성격 탓인지 출근 전날은 아무리 시간이 있어도 편하게 쉴 수가 없다. 다음날 출근 준비를 하면서 최대한 체력을 아끼고, 피로감이 들면 낮잠도 자면서 체력을 보충하는 데 집중하는 하루를 보낸다. 그러면 휴일이 끝나버린다.




미국에서 간호사는 본인의 근무를 직접 짤 수가 있고 대부분 반영이 되는 편인데, 몇 달 일해본 결과 나는 연속 이틀 근무를 하는 것이 제일 좋았다. 오리엔테이션 초반에 5일 연속근무를 했었는데 너무나 힘들어서 주말이 되어서 이틀 내내 끙끙 앓았던 기억이 난다. 그 뒤로는 쉬는 날이 좀 적어지더라도 이틀을 근무하고 이틀이나 삼일을 쉬고 다시 이틀을 일하는 식으로 근무를 신청하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일주일에 4일 휴일이지만 실제로는 하루는 장 보거나 급히

필요한 것을 사러 외출하며 보내고 그다음 날 하루는 집에서 만들어 놓은 음식을 먹으며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면 아주 순삭이 된다. 그리고 나면 또다시 출근인 것이다. 이런 근무 때문에 주 3일을 일하는 환경이지만 체감 상 그리 오래 쉰다는 느낌이 덜하기도 하고 쉬는 날은 집에서 일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앞으로는 근무형태를 좀 바꿔볼까 고민해 볼 예정이지만 이틀도 힘든 일을 사흘이나 해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고, 4일을 쉰다고 해도 엄청 대단하고 생산적인 일을 하는데

시간을 쓸 것 같지도 않아서 어느 정도 업무가 적응될 때까지는 이 패턴을 유지해보려고 한다.


다만, 이렇게 근무하며 좋은 점은 몰아서 근무를 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일하는 시간을 견뎌내면 그 시간에 비례하는 휴식이 온다는 것을 알기에 버티는 힘이 생긴다는 것이다. 나는 체격이 좋지도, 체력이 좋은 편도 아니라서 솔직히 깡으로 버티고 있는데 그럼에도 버텨진다는 것이 다행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3교대근무를 하면서 매번 바뀌는 수면시간을 적응하기에 정말 힘들었고, 근무시간이 미국보다는 상대적으로 적지만 출근 퇴근 시간이 실제 근무하는 법적시간보다 길었으며 퇴근을 한 이후에도 업무에 관련된 연락이 올 수도 있는 환경에

항상 긴장하고, 퇴근하고 집에 오면 왜 안 하거나 실수한 것이 생각이 나는지 괴로웠던 적이 많았다. 그래서 언어적인 스트레스가 전혀 없고 문제해결능력에도 훨씬 유리한 환경이었음에도 쉬는 날도 쉬지 않는 기분으로 지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다시 한국에 돌아가서 병원에서 일하겠니?라고 묻는다면 난 정중히 거절할 마음이다. 비록 여전히 부담스럽고 부족한 부분이 많은 미국에서의 간호사생활이라도 장점이 훨씬 많다고 느끼기 때문이고, 지금이 가장 어렵고 힘들지 이 상황도 시간이 흐르면 덜 힘든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만일 우리나라의 간호환경이 미국과 조금이라도 비슷해진다면 괜히 고생하지 말고 내 나라에서 속 편하게 하고 싶은 말 하고 보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사는 게 더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생활을 한다고 해도 확실히 혼자 무언갈 한다는 건 참 외롭고 심심한 일이다.


지금은 한국의 상황이 미국처럼 되기엔 어려워 보이니 나의 지인들이 미국에 어서 와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우리 병원에서 유일한 한국인 간호사로 일하는 외로움에 말도 안 되는 소망을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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