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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국간호사 Sophia Nov 05. 2024

간호사를 위한 간호법

아직 제대로 된 법은 아니다

어쩌면 이제는 매스컴에서 더 이상 주목받지 못하는 주제가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한국인으로 태어나 간호사라는 직업을 선택해서 12년을 보내고 이제는 미국에 이민 온 간호사의 입장으로 우리나라 간호법에 대한 개인적인 목소리를 내어보려 한다.


학부시절 '의료법규'라는 과목의 전공을 배우며 내가 했던 것은 국가고시 시험을 위한 법규 암기였다. 여러 가지 법 중에서 의료법을 가장 먼저 배웠는데 이때에도 간호법에 존재와 필요성에 대해 생각하긴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수업시간 내내 그 누구도 우리는 왜 의료법만 배우는지, 간호법은 없는지 궁금해하지도 묻지도 않았다. 그저 진도를 따라가기 바빴고 법은 어차피 나랑은 거리가 먼 것이니까 하는 마음으로 그저 그렇게 수업은 끝이 났다.


학부2학년 2학기때 정부장학생으로 미국의 간호대에 교환학생을 갈 기회가 주어졌고, 그때서야 비로소 간호법이라는 것이 선진국에는 이미 존재하며 우리나라엔 있어야 하지만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의료 및 간호는 독일과 일본의 영향을 가장 먼저 받았는데, 일본 역시 독일의 간호를 본받아 만들어진 것이었기에 의사와 간호사의 업무범위와 수준의 차이가 컸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 특히 기성세대들에게는 고정관념처럼 박혀있는 생각인데 의사는 선생님이고 간호사는 보조원이라는 개념이 그것이다.

하지만, 실제론 간호사가 하는 업무의 범위가 단지 의사를 보조하거나 돕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간호사 자체의 전문성이 있다는 것을 다른 여러 선진국에서는 이미 알고 또 인정하고 있다. 그렇기에 실은 우리나라 의료법 안에서도 조무사나 여타 다른 보건의료직군과는 다르게 ‘자격’이 아닌 ‘면허'를 가진 직업으로 간호사를 나누어둔 것이다.


그러면 왜 우리나라에서는 간호법에 대해 이렇게도 오랜 시간 동안 논의조차 하지 않았던 걸까?

그걸 알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나라와 미국 간호대학의 전공과목과 간호사가 되는 과정을 알아야만 한다.


미국의 경우를 먼저 말해보겠다. 대학에 입학하게 되면 간호학생은 예비 간호사에 준해 교육을 받고 실습을 하며, 간호사가 되기 위한 모든 것에 초점을 맞춘 과정을 밟게 된다. 교과서를 이용한 이론수업에서는 아주 기본적인 건강에 대한 지식부터 사람의 몸과 정신에서 일어날 수 있는 거의 모든 질병의 발생과정과 치료, 간호에 대해서 배우게 된다. 그리고 교내실습인 랩(Lab)을 할 때에도 전공서적에서 이론적으로 다룬 부분을 실제로 여러 번 연습하고 시험을 치르며, 병원에서 클리니컬을(병원실습) 하면서는 학교에서 배운 이론과 실습을 실제 환자에게 하게 된다. 이렇듯 이론-실습-실제가 연결이 되어 아주 현실적으로 교육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간호사로서 한 사람의 몫을 해낸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기에 인턴쉽과 엑스턴쉽 등 신규간호사가 실제 간호사로서 독립적으로 환자를 볼 수 있게끔 오랜 기간 혹독하게 교육을 받는다.




그러면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떠할까? 우선 아쉬운 부분은 이미 졸업한 지 10년 이상이 지났지만 여전히 내가 학교를 다니던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들었다.


우리나라 간호대학에서는 이론은 미국과 같은 내용을 배우지만, 막상 병원으로 클리니컬 실습을 나가게 되면 교내실습으로 배운 것들은 그저 연습일 뿐 실제로는 체험해 볼 수가 없다. 아직 면허를 가지지 못한 학생이기에 충분히 연습할 기회를 주기보다는 실수를 하게 되면 환자에게 위해를 끼칠 염려 때문에 교내실습에서 하는 방법을 이미 배웠어도 그저 간호사 선생님들을 졸졸 따라다니며 눈치껏 보고 배우는 것이 내가 했던 전부였다.

문제는 이렇게 눈으로만, 귀로만 실습을 하고 졸업을 해서 면허를 따게 되면 그때부터는 정 반대의 상황이 시작된다. 실제로 그 일을 항상 해왔던 것처럼 잘 해내야 하는 간호사를 기대하는 것이다. 졸업 전까지 실습해 본 건 마네킹뿐인데, 어느 날 갑자기 실제 사람에게 능숙하게 같은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도대체 얼마나 있을까?


이런 실제 의료환경의 차이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간호사가 전문직임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로 불리지 못한 것이 아닐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이 든다. 책임을 다해야 하는 직업이기에 배우는 단계에서부터 충분히 그 자리를 감당하기 위한 교육과 연습을 하고, 졸업 후 실제 임상현장에 들어왔을 때 조금 더 전문적이고 자신감 있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 있었다면 어쩌면 간호법은 이렇게 만들어달라 투쟁하지 않았어도 자연스럽게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한다.




미국에서 공부를 하며 좀 의외였던 건, 한국간호대학에서 배웠던 전공책들이 미국의 교과서를 번역했다는 사실이었다. 이 전까지는 전혀 몰랐던 일인데 미국에 와서 전공수업에 필요한 교과서를 구입하고 예습을 하면서 이렇게 똑같을 수 있을까 놀라웠는데 번역본이기 때문이었던 거다.


잠시동안 교환학생을 하면서 나는 한국에서는 절대 배울 수 없는 좋은 환경과 기술을 경험할 기회를 얻었다. 교내실습에서도 매우 날카로운 지적과 기준으로 평가를 받았고, 클리니컬 실습에서도 버디간호사와 함께 진짜 간호사라면 했을 법한 인계받기, 담당환자의 간호를 직접 하기 등등 한국에서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을 직접 해 볼 수 있었다. 매번 눈으로만 보던 것들을 실제로 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부담감에 처음엔 사시나무 떨듯 벌벌 떨며 실습을 했지만, 연습하면 누구든 언젠가 잘하는 때가 오듯 나 역시 많은 것이 익숙해지고 덜 무서워지는 경험으로 한 학기를 마쳤다.


그리곤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 남은 병원실습을 하게 되었는데 정말 고역이었다. 나는 한국인인데 어째서 한국의 병원실습을 하는 동안 컬처쇼크를 겪어야 했던 것일까.


이론으로 배운 지식은 실제 실습에서도 같은 내용과 중요도로 다룬다는 것을 나는 이미 배웠기 때문에 간호사는 전문직이며 졸업 후 간호사로 독립적으로 일을 해내기까지 수많은 연습과 과정을 거쳤다는 것을 배웠다. 그만큼 간호사가 되는 것이 쉽지 않지만 열정적으로 배우고 노력하여 어느 정도의 수준에 이르게 되고, 그렇기에 그 직군을 지키고 보호하며, 그만큼의 책임감도 부여하는 간호법이 당연히 필요한 것이었다.


또 하나 다른 점은, 한국에서 국가고시를 볼 때는, 전공과목인 기본/성인/여성건강/정신/지역사회간호학과 의료법규에 대한 시험을 치르는데, 미국에서는 국가고시에 해당하는 엔클렉스라는 면허시험에서 의료법이나 간호법을 과목으로 다루지 않는다. 이미 법이라는 것은 의료인을 보호하고 책임을 다하는 것으로 정착되어 있어 굳이 시험을 통해 알거나 기억할 필요가 없는 이유였다.


그리고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간호사가 된다는 것이 의사가 시키는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간호사라는 전문직군이 해야 하는 업무가 달리 있고, 의사의 감독하에 할 수 있는 부분적인 업무가 공존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의사들은 간호사가 자신의 하수인이며, 의사가 될 만한 지적능력이나 학력차이로 인해 지시를 받아야만 일을 하는 직업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 매우 유감이기도 하다.


의사는 한 가지 분야를 깊게 배운다. 처음 의대공부를 시작할 때에는 모든 분야를 얕고 넓게 배우지만 의사면허시험을 통과한 이후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을 통해 자신이 평생 동안 파고들어 공부하고 전공할 분야를 정하고 수련을 하며, 전문의 시험을 치른 이후에는 자신의 분야가 아닌 다른 전공에 대해서는 의대시절 배운 지식의 잔재로 참고를 한다.


그에 반해 간호사는 부서에 따라 다른 점이 있기는 하지만 어느 부서를 가더라도 환자를 직접 간호하는 분야에서 일을 한다면 공통적으로 하는 일이 많다. 내과이든 외과이든 여러 경로로 환자에게 약을 줘야 하기 때문에 IV라고 부르는 혈관확보를 하고, 환자의 현재 상태와 과거병력에 따라서 집중적으로 간호해야 할 우선순위를 정한다. 물론, 한 전공부서에서 오랫동안 일하게 되면 다른 부서의 업무에는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긴 하지만, 내가 만일 처음 일한 부서에서 만족하지 못하거나 나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느끼면 얼마든지 다른 질병을 가진 환자를 간호할 수 있는 것이 간호사의 특징이다.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출근한 병원에서 내가 시작한 업무는 최근 뉴스에서 떠들썩했던 PA였다. 당시에는 PA라는 것이 있긴 했지만 이름 자체도 많이 생소했고, 무슨 일을 하는지, 출근 전에 내 업무를 위해서 뭘 준비해야 하는지도 전혀 모르던 때였다. 나는 입사를 대기하던 기간 동안 학사학위를 따는 중이었고, 독학사 시험을 위해 공부하며 알게 된 한 친구로부터 PA에 대해 듣게 되었다. 사실 그 친구도 그 일을 해본 것은 아니었고, 주변의 다른 친구가 그 제안을 받은 적이 있어서 정보를 가지고 있었던 거였는데 인턴이나 레지던트인 의사가 해야 하는 일이지만 인력의 부족을 이유로 그 업무를 대신할 사람을 간호사 중에서 뽑고 의사의 감독하에 일하게 되는 것이라 했다.

보통 규모가 큰 병원의 간호사들은 입사를 하면 대부분 병동이나 수술실, 중환자실, 응급실과 같은 부서에 가게 되는데 어디를 가든 3교대 근무를 하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PA의 가장 좋은 점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 5일을 일하며, 주말이나 공휴일은 무조건 쉬었다. 이 때문에 소위 워라밸이 좋은 직군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게다가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간호대학에 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나이 많은 것이 죄스러운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알만한 사람들은 다들 간호사의 사회를 '여자군대'라고 부른다. 간호사가 된 시점이 나이보다 우선시 되며, 나보다 하루라도 먼저 입사한 사람은 나의 선배가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즘은 많이 알려진 '태움'이라는 살벌한 문화는 이미 군대를 다녀와 졸업한 남자동기들에게도 이해하지 못하는 이상한 문화라는 이야기를 할 만큼 이해되기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나이가 많고 간호사의 연차가 적은 내가 병동에 들어가게 되면 기존에 있던 멤버들이나 내가 불편해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공공연하게 학부 선배들도 했기 때문에 내가 입사한 병원에서는 차라리 그런 위계가 조금은 덜한 PA를 하도록 나름의 배려(?)를 했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출근 전 입사에 대한 교육을 받는 날이 있었는데, 나뿐 아니라 4명의 동기가 더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아직 이름도 모르고 나이차이도 많이 나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안심이 되었던 기억이 난다. 입사를 해서는 의국에 출근해서 첫인사를 하고 내가 속한 부서에 대한 설명과 앞으로의 계획을 이미 먼저 담당하고 있던 선배 PA에게 들었고, 정신없는 신규시절이 시작되었다.


간호사가 되기 위해 간호대학에서 교육을 받고, 간호사로 취업을 하여 병원에 출근을 했는데 실제로 내가 한 일은 간호사가 하는 업무가 아니었다. 물론, 다행히도 내가 있던 병원에서는 인력부족을 이유로 무조건 의사의 모든 업무를 담당하게 하지는 않았다. 어느 정도의 선이 있었다. 의사의 손발이 되어 그들의 일을 대신했지만, 우리는 법적으로는 인정되지 않는 업무를 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림자'로 불렸다. 그리고 병원마다 돌아오는 인증기간이 되면 나도 모르게 나의 업무부서의 명칭이 갑자기 바뀌기도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병원들은 인증을 받기 위해서 최소한의 적정 수준의 인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평소에는 의사의 그림자로 일하며 간호사이지만 간호사가 아닌 것 같은 일을 하는 홍길동 같은 녀석이 인증기간에는 정상적인(?) 간호사로 간호업무를 하는 부서에 소속되어 업무를 하는 것으로 보였다. 지금은 그렇게 할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마지막으로 이직하여 PA 업무를 했던 병원에서는 간호행정부서 소속으로 입사했던 것을 보면, 그래도 그 사이 불법의 공간에서 어떻게든 무언가를 해보려고 노력했던 것 같기는 하다.


보통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의국회의에 참석해서 오늘, 그리고 이번주에 있을 여러 가지 업무와 행사에 대해서 듣게 되고 때로는 연구와 실제 업무에 필요한 논문들을 리뷰하고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이후에는 외래진료가 있거나 수술일정에 따라 수술실에서 일을 하기도 하고, 외래진료에서 나와 짝꿍인 의사의 진료를 보조하게 된다. 내가 함께 일했던 분은 당시 우리나라에서 엄청나게 유명한, 그렇지만 언론이나 매스컴에 출현하는 것은 매우 꺼려하시던 외과의사였는데 물론 의사가 된 지 오래되어 내공이 대단하셨던 것도 있지만 자신의 일과 환자에 대한 사랑이 또 엄청난 분이셔서 업무적으로나 환자를 대하는 마음과 같이 의료인으로 가져야 할 자세를 많이 배우는 기회이기도 했다. 물론, 유명한 분이셔서 전국각지에서 물밀듯 환자들이 왔기 때문에 겨우 3시간 남짓한 진료시간에 100명의 환자를 만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나는 아는 것이 없었지만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일하겠다는 마음가짐이 있었기에, 힘들어도 참고, 괴로워도 견디면서 그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 내 일이 좋아졌고 특히 암환자를 만나는 일이 대부분이었기에 앞으로 나의 진로는 Oncology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간호대학을 졸업해서 가장 이론적인 내용이 머리에 가득한 그 시절에 간호사가 아닌 의사의 업무를 하면서 나와 같은 시기를 병동에서 보낸 친구들보다는 간호사로 부르기에 너무나 부족하고 부끄러운 실력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 병동에서는 기본간호학에서 배운 기술들을 정말 많이 사용하게 되는데 정맥주사를 놓는다던지, 환자가 복용하는 약에 대해서 접하게 된다던지, 어떤 증상과 징후들이 환자의 변화가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든지 하는 정말 실제 임상에서 일해야만 알 수 있는 많은 부분들을 어쩔 수 없이 놓치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수술실에서 일하는 시간이 정말 많았기 때문에 어깨너머라도 수술실 간호사들의 업무를 볼 수 있었고, 만일 내가 업무를 변경하게 된다면 수술실에서 일하는 게 제일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긴 했다. 어쨌든 남들과는 약간 다른 노선을 걸으면서 간호사이지만 간호사라고 하기에는 뭔가 좀 부족하다 싶은 그런 시절이 있었다.


PA간호사로 일했던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간호사로만 일할 생각을 했던 내가, 실제 병원현장에서 다른 직군들의 업무와 시각을 배운 좋은 기회였다고 느낀다. 그래서 오히려 그 이후에 간호사로 일하는 부서에 갔을 때, 그 업무를 오더 한 의사의 의도와 의미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었고 업무를 좀 더 빨리 그리고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간호법이 생기는 과정에서 PA간호사의 업무가 수면 위에 오르고 여러 가지 비난과 연민의 의견들이 오갔을 때에도 정작 나는 이 간호법의 존재이유가 도대체 무엇 때문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당연히 없던 것이 생기는 것이 가장 어렵지, 무언가 있다면 고치고 발전해 나가는 것은 할 수 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이왕 새로 만들 법이었다면 좀 더 객관적인 시선으로 많은 의견을 들어보고 신중히 접근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간호법이 이미 오래전에 생긴 이곳, 미국에서 간호사가 되었다. 그리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사회적인 분위기와 많은 사람들의 일상적인 존경과 존중을 받으며 돈을 벌고 있다. 사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것이었다. 나의 직업이 그저 돈을 바라보고 시간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 희생하고 봉사하는 그만큼 기꺼이 하지 못하는 환자들의 가족과 다른 사람들에게 정당한 대우와 대가를 받았으면 하는 너무나 당연한 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의사만 전문직이고, 간호사는 여전히 병원에 소속된 직원 중 하나이며 의사와는 레벨 자체가 다른 직종으로 취급받는다. 하지만, 이곳은 다르다. 간호사는 전문직으로 의사와 동등하게 환자를 다른 시각에서 보고 의견을 나누며 서로를 존중하고 돕는 직업이다. 그래서 어느 의사도 내가 묻는 질문을 멍청하다고 하지 않으며, 내가 관찰하다 알게 된 잘못된 문제를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고맙다는 인사를 받는다. 환자와 보호자들도 나의 배려와 업무에 항상 고마움을 표현하고, 스크럽을 입고 마트에 가서 줄 서는 것만으로도 줄을 양보받거나 "Thank you for your service."라는 인사를 모르는 사람에게 받는다. 나는 미국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내 직업을 사랑하고 의미 있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넘치는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다.


우리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어른이 되면 직장을 다니거나 사업을 하면서 자신의 몫을 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선택한 직업이 무엇이든 그것을 해나가야 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직업을 스스로 선택하고 좋아하며 만족하며 살아가기도 하지만, 또 어떤 사람은 잘하는 일이긴 하지만 좋아하진 않아서 가끔은 현타를 느끼지만 그럭저럭 살아가기도 한다. 그리도 또 다른 사람은 좋아하지도, 잘하지도 않는 일이지만 살아가야 하기에 일을 한다. 그 어떤 일이라도 그것이 돈을 위한 것이라고 해도 우리 모두는 그 직업과 일에 대해 의미를 가져야지만 오래도록, 최대한 힘들지 않은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각자의 마음속에 만일 일을 평생 해야 한다면 이런 것을 하고 싶다는 것이 하나씩은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매우 행복한 사람이다. 별 볼 일 없지만 열심히만 살아온 29년을 뒤로하고, 과감히 돌아서서 나의 미래를 만들어왔다. 그리고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 내가 원하는 직업을 가지고 때때로 힘들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대부분 만족하며 매일을 살아오고 있다. 그리고 당연히도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이지만, 이기적인 마음보다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환자에게 나의 전문성으로 간호와 치유를 하는 직업을 가졌다는 것에 매우 보람을 느낀다. 그리고 앞으로 나는 지금보다 더 나은 간호사가 되기 위해 또 무언가를 배우고 노력하는 중간에 있다. 이렇게 살아가면서 나 역시 끊임없이 성장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고, 그와 동시에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며 애쓰고 있다.


우리나라의 많은 간호사들이 더 이상 존재 감 없이 대우가 아닌 취급을 받지 않고, 그간의 노력과 희생과 봉사의 결실을 맺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이미 생겨난 간호법이 그런 간호사들을 대변하고 돕는 방향으로 발전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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