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국간호사 Sophia Oct 28. 2024

누가 편하게 일한다고 했니?

세상에 쉬운 일은 없더라

우리나라에선 적어도 12명, 보통은 20명 이상의 환자를 간호해야 했던 것에 비해 미국에서는 그에 반도 안 되는 4-5명의 환자를 보는 건 훨씬 쉬운 일이라는, 먼저 미국에 이민 간 간호사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역시 미국은 선진국이다, 일하는 환경이 너무 괜찮네 싶었지만 막상 일해보니 알겠다.

내 마음처럼 쉽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수십 명의 환자를 한꺼번에 간호해야 하기 때문에 내가 지금 미국의 병원에서 하는 많은 일들 중 일부는 간호사의 업무라고 하기엔 어쩌면 너무 사소한 일로 여겨질 수 있다. 예를 들면, 여러 가지 이유로 스스로 몸을 움직이거나 침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의 환자들에게 주기적인 자세변경은 몸무게로 인해 오랜 시간 살이 눌려 생기는 상처인 욕창이 추가로 생기거나 이미 생긴 상처가 더 이상 악화되지 않고 회복되게 하는 방법이기에 정말 중요한 업무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병원환경에서는 내 몸은 하나인데 이름조차 기억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의 환자들을 한꺼번에 챙기면서 2시간마다 시간을 맞춰 잊지 않고 자세변경 해주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병동에서는 환자의 보호자나 개인적으로 고용한 간병사가 그 환자의 기본적인 간호를 담당한다. 간호사의 손을 대신해 줄 사람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나마 중환자실에 가면 병동보다는 적은 수의 환자를 간호하는데, 전반적인 건강상태가 병동과는 달리 여러 가지 심각한 문제를 동반한 환자들만 있기 때문에 체위변경이나 몸무게 측정, 배변양 확인 및 기저귀 교체 등의 일을 간호사가 직접 해야만 하고 이 때문에 일반병동과는 달리 적은 수의 환자를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병동보다 인원이 적다고는 하지만, 환자가 어느 순간 빠르게 상태가 나빠지거나 달라질 수 있는 환경에서 인공호흡기와 인공심폐기를 달고 위태로운 상황의 환자를 4명 이상을 한 번에 간호하는 경우도 많아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정말 힘들고 고된 일을 하는 것이 병원에서 일하는 한국간호사의 일상이다.


나는 코로나가 창궐하던 시절인 2020년에 간호간병통합 격리병동에서 일하면서 처음으로 치매어르신들의 체위변경과 기저귀를 갈아본 경험이 있는데 이는 요양병원에 계시던 환자분들의 코로나 집단감염 때문이었고, 그 병원의 모든 어르신이 대거입원한 때문이었다. 기존에도 해왔던 간호업무와 더불어 식사를 떠먹여 드리고, 2시간마다 체위변경을 하고 기저귀를 갈고 간단하게 씻기는 일을 했었는데 안 그래도 바람이 통하지 않는 보호장비를 입고 격리구역에 들어가는 순간 온몸에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데다가, 고글을 쓴 눈앞이 뿌옇게 된 상태로 감각에 의존하여 모든 일을 해야 하는데 거기다가 적어도 나만하거나 더 크고 무거운 성인의 기저귀를 갈고 힘으로 체위변경을 해주는 일은 너무나 힘들었다. 아마 남자로 치면 건설현장에서 막일을 하는 정도가 아니었을까? 매일매일 몸이 고되고 지치는 일이었다. 코로나 병동이 아닌 일반병동이었다면 보호자나 간병사에게 일임하여 환자의 체위변경과 식사보조, 청결 및 위생관리를 위임할 수도 있었겠지만 격리병동에서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보호장비를 제대로 갖추어 입고 벗는 훈련이 따로 필요했기 때문에 아무나 쉽게 드나들 수도 없었고, 최소한의 인원으로 갇힌 공간에서 서로가 서로를 도우며 정해진 시간 동안 최대한 많은 일을 하고 나올 수 있어야 했기 때문에 조무사선생님들의 도움이 정말 절실했고 고마웠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이 때문에 이후에는 내과병동 및 재활병원에서 일하며 보호자나 간병사가 있다는 것이 환자의 일상생활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고 나의 업무를 도와주는지를 체감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일하기도 했다.


미국의 경우는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면, 미국의 간호사는 내가 담당한 환자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내가 모두 해줘야 하기 때문에 맡은 환자수가 많으면 큰일이 난다.




내가 일하는 병동이야기를 해보자.

입원한 환자가 샤워를 한다거나 변기 대용품을 사용한다거나 몸을 움직일 수 없어서 기저귀에 용변을 본 뒤 치워주는 것, 스스로 밥을 먹는데 도움이 필요환 환자를 챙겨주거나 큰 덩어리를 쉽게 먹을 수 있도록 잘라주는 것,  움직일 수 없거나 질병으로 인해 스스로 움직일 힘이 부족한 환자의 욕창을 방지하기 위한 주기적인 자세변경 등등... 환자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책임지고 환자와 관련된 모든 것을 담당간호사가 챙겨주어야 하는 환경이다. 보호자나 간병인이 없는 것이 상식이기에 담당하는 간호인력이 환자의 모든 것을 대신해주어야 한다. 환자의 수를 늘려서 간호할 수 없는 현실적인 이유이다.


4-5명의 환자를 담당하지만, 오롯이 내가 12시간 동안 책임져야 하는 환자들로 이를 전인간호, 또는 토탈케어(Total care)를 한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혼자 움직일 수 있고 걷는 환자를 맡으면 황송하기까지 하다. 여기서 '내가 담당한다'는 의미는 약 먹을 때 마실 물이나 음료조차 직접 떠다 줘야 하고 배가 고프다고 하면 식사시간이 아닌 때에는 병동 팬트리에서 샌드위치나 크래커 등을 챙겨주거나 다음 식사시간에 원하는 메뉴를 환자전용주방에다가 주문을 넣어주어야 한다는 말이고, 화장실을 혼자 가기 어려운 경우에는 부축하거나 살펴가며 화장실에 들어가고 나옴을 지켜봐 주어야 하며, 보호자가 환자를 만나러 병실에 방문을 했을 때에도 자신의 가족에게 어떤 것도 직접 해주지 않고 간호사가 모든 것을 해줘야 한다는 말이다. 만일 보호자가 담당간호사에게 자신의 가족인 환자의 현재상태와 앞으로의 플랜에 대해서 업데이트를 해달라고 전화를 하기도 하는데 이를 응대하는 것 또한 간호사의 당연한 업무이다. 또, 환자를 간호하는 시간 동안 신체 및 정신건강의 문제가 발생하였는지 또는 기존의 문제들의 변동사항이 있는지를 확인해야 하는 것은 또 너무나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고.


신체사정이라는 것을 하고 간호계획인 케어플랜을 짜고 환자에게도 교육을 한 뒤에 기록을 남기는 것이 한국과는 가장 큰 차이인데, 지금 일하는 병동은 그나마 중증도가 심하지는 않아 아주 세세하고 꼼꼼하게 신체사정을 하지는 않지만, 환자가 입원했을 때 머리부터 발끝까지 의심될만한 모든 부분을 확인하고 간호적인 또는 의학적인 문제점이 발생했을 때에는 퇴원을 하기 전까지 최상의 상태로 되돌려 놓는 것을 목표로 간호 진단을 내리고 계획을 짜고 환자나 보호자에게 교육을 한다.


이를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보려고 한다. 환자가 입원을 하면 기본적으로 소화기관, 호흡기관, 배뇨기관, 피부, 상처, 정신질환의 이력 및 현재 상황과 의식정도의 평가 등등 그 사람의 몸과 정신의 상태를 입원한 당시를 기준으로 평가해야만 한다. 여기서 좋아지고 나빠지는 것을 관찰하며 환자의 간호 및 치료계획을 세우고 케어플랜을 작성하는 순서이다. 예를 들면, 전체적인 몸의 상태, 특히 상처나 배액관, 콧줄이라고 말하는 위관장이나 소변줄로 불리는 폴리카테터 등의 여부를 확인하고 정상적으로 작용하는 지를 보는데 이를 시진(보는 것)이라고 한다. 특히, 전신 또는 일부 신체에 부종이 있다면 어느 부위에 어느 정도 수준의 부종이 있는지 촉진(만져봄으로)하여 확인하고 치료가 필요한 정도의 부종이라면 적절하게 약물치료는 하고 있는 중인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하며, 항암환자의 경우에는 항암제를 주입하는 포트를 가지고 있는지, 페이스메이커나 인슐린측정기가 몸에 삽입되어 있는지, 임플란트제품이 있는지, 치료해야 할 상처가 있는지 피부를 확인하고 필요시 상처전담간호사에게 협진을 보내는 등의 업무를 한다.


다음은 청진기로 폐음과 기관지음을 듣고 혹시 숨 쉬는 데 어려움이 있는 병이나 증상을 가졌다면 산소요법이 필요한 경우인지 여부를 활력징후(바이탈사인)와 여러 증상을 판단해서 적용해 주고, 이전에 심장질환을 진단받은 경우라면 현재 심장에 문제가 있는지 심음을 듣는다. 소화기관에 문제지도 청진해서 장음을 들으며 폐색이 있거나 과도한 소화문제가 있는지 확인하는 데 이를 청진(들어봄)이라고 한다.  

영양상태가 적절한지 판단하여 Nutrition이라 부르는 영양사에게 협진을 보내기도 하고, 음식을 삼키거나 액체를 삼키는 데 장애가 있다고 판단되면 그 정도를 확인하는 검사를 오더 할 수도 있다. IV라고 말하는 정맥주사가 없다면 의사의 오더에 따라 새로운 정맥주사를 시도하고, 이미 IV가 있는 경우 위치와 상태를 확인하여 8시간마다 한 번씩 필요시 수액을 연결할 수 있는지 식염수를 통과시켜 기능을 한다.

일명 소변줄은 두 가지로 나뉘는데,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방광에 카테터의 끝이 위치하는 것과 우리나라에는 없는 몸 밖으로 나오는 소변에 음압을 걸어 빨아들여 통에 모이도록 유도하는 퓨어윅(Purewick)이라는 도구가 있다. 워낙 덩치가 크고 자신의 몸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겁거나 허약한 환자들이기 때문에 오히려 억지로 일어나서 화장실에 가다가는 낙상이 일어날 수 있어 이런 제품들을 사용하는데 이를 상황에 적절하게 잘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소변과 대변의 양은 먹은 양에 비해 적절한지, 소변정체나 변비가 있지는 않은지 확인을 한다. 이외에도 통증사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환자가 통증조절이 잘 되지 않는 경우에는 마약성진통제를 쓰는 경우도 매우 허다하기에 너무 많은 양을 쓰지는 않는지 너무 오래 쓰는 것은 아닌지 판단하는 것은 간호사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다.




데이 근무의 루틴을 적어보려 한다. 우선 7시 출근이기에 6:55까지는 출근해서 출근카드를 태그 한다. 그리고 병동의 비서가 관리하는 종이나 벽에 붙은 화이트보드에서 오늘 내가 맡을 환자가 누구인지 확인한다. 7시 정각이 되면 허들이라고 하는 전체인계에 참석한다. 전체적인 병동상황을 밤근무 차지널스가 전달하는데 이때 내가 담당하는 환자가 무슨 일이 있는지에 집중해서 듣는다. 허들이 끝나면 내가 담당할 환자를 밤동안 돌봤던 간호사를 찾아 인계를 받는다. 나는 가능하면 조금 일찍 출근해서 환자가 어떤 문제로 입원을 했는지, 전날 혈액검사가 있었으면 결과가 어떤지,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인계를 받는다. 그래야 물어보고 싶은 부분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기도 하고, 간호사마다 인계를 주는 방법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나는 간단하게 인계를 주는 편인데, 어차피 일을 시작하면 알 수 있는 사소한 내용을 말하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우리 병원에서는 인계를 할 때 환자방앞이나 안에 들어가서 환자를 참여시킨 상태에서 인계를 하도록 지침하고 있다. 하지만, 민감한 부분을 이야기해야 하거나 우리에겐 중요한 정보이지만 환자에게는 불편한 내용들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 문밖에서 인계를 하고 함께 들어가서 인계 중임을 알리고 내가 담당간호사가 되었음을 소개하며 환자방에 있는 화이트보드에 내 이름을 업데이트해 준다.


모든 환자의 인계를 다 받았으면, 일단 오늘 해야 하는 일들의 우선순위와 중요한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잠시 내 컴퓨터에 앉아서 여러 가지 정보를 수집한다. 퇴원하는 환자가 있는지, 그 사이 새로 들어온 의사의 오더가 있는지, 인계 때 들었는 내용 중에서 내가 다시 확인해야 할 만한 일들이 있는지, 여러 직군의 차팅들을 읽으면서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등 전체적인 흐름을 다시 확인하고 오늘 나의 업무를 어떻게 짤까 고민하는 시간이다. 그리고 이때는 꼭 커피를 마신다. 간호사에게 커피는 너무 중요한 루틴이기 때문이다.


데이근무는 아침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하기 때문에 아침, 점심, 저녁 세끼를 다 먹는 시간에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최소한 3번 이상의 정규스케줄의 약을 지급해야 하고, 중간중간 새로 바뀌는 플랜에 따라서 약이 추가되거나 수정, 중단될 수 있어서 정말 바쁘고 눈코 뜰 새가 없다. 아침약을 주고 나면 순서를 정해서 환자의 신체사정 및 그날의 필요한 업무를 환자에게 실행하고 내가 했던 업무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나면 벌써 10시가 넘어있다. 평일 오전에는 11시쯤부터 의사, 간호사, 영양사, 케이스매니저, 병동수간호사, 약사, 물리치료사 등등의 직군들이 다 모여 회의를 한다. 담당하는 환자에게 어떤 계획이 필요한지와 변동사항에 대해 공유하며 환자가 잘 퇴원할 수 있도록 모의하는 시간이다. 이때, 내가 모르던 정보를 알 수 있게 되기도 하고 다른 직군들에게 내가 담당하는 환자의 변화나 궁금증에 대해 서로 나누기도 한다. 그리고 다시 내 자리로 돌아오면 환자들의 점심시간이다. 그 말은 또 약을 줄 시간이라는 말이다. 다행히 오후 1시부터 3시까지는 큰일이 없으면 잠시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그 시간 중에 가능하면 점심시간을 챙긴다. 우리 병원에는 쉬는 시간을 커버해 주는 간호사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라서 같은 라인을 담당하는 간호사들끼리 간단하게 인계를 주고 자리를 비운다. 대부분 서로를 위해서 환자에게 제일 손이 안 가는 안정된 상태일 때 점심을 먹으러 간다. 우리 병동은 8시간 이상 근무 시 1시간의 점심시간이 주어지고, 대부분 그 시간을 최대한 다 지키고 돌아오도록 한다. 그 시간만큼은 휴식을 취해야 남은 시간 동안 환자를 위해 일하는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숨 돌리고 맛있는 점심을 먹고 나면 아무리 힘들었던 오전이라도 확실히 여유가 생긴다. 그러면 오후시간 동안 다시 힘을 내서 일할 수 있고, 그렇게 바쁜 일들을 쳐내다 보면 어느새 퇴근시간이 다가온다. 오후 7시가 되면 밤근무 간호사들이 허들을 마치고 인계를 받으러 온다. 그러면 환자에 대한 내용을 잘 정리해서 인계를 주고 환자에게 내가 퇴근함을 알리고 잘 자라고 인사를 하고 퇴근카드를 태그 한다.


나이트근무는 반대로 저녁 7시부터 아침 7시까지 근무를 하고 환자들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잠을 잘 자고 다음날 하루를 잘 보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주된 업무이다. 취침 전 약은 9시에서 늦게까지는 11시나 자정까지 분포해 있는데, 대부분 삼키는 약들은 9시에 주게 되고 주사약제들은 취침하는데 방해가 덜 되기 때문에 일부는 새벽에도 주기도 한다. 채혈이 필요한 환자의 경우에도 9시 약을 주는 시간에 시행하게 된다. 밤동안 잘 자는 것이 모두에게 좋은 상황이기 때문에 취침 전에 필요한 신체사정 및 IV 확인, 상처 확인 및 필요시 드레싱 등 자기 전에 최대한 완료하고, 잠들기 편안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가장 큰 목표이다. 나는 오리엔테이션기간 동안에는 데이근무를 했고, 독립을 하면서 나이트근무 멤버로 바뀌었는데 첫날 근무부터 내 담당환자가 쇼크를 일으켜서 소생팀을 불렀을 만큼 아주 화끈한 밤을 보냈다. 그것만 제외하면 데이근무동안 느꼈던 정신없는 바쁨과 소란스러움이 없다는 것은 나와 잘 맞았다. 밤을 잘 보내고 환자들이 잘 자는 것을 주기적으로 확인하면서 케어플랜과 교육에 대한 차팅을 마치고 나면 아침이 다가오고 드디어 인계를 받을 데이널스들을 반갑게 맞을 수 있다. 그렇게 인계 후 병원을 나서면 오늘의 근무는 끝이 나고, 나는 큰 한숨을 쉬며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마쳤음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온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집에 가까워질수록 피로감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집에 도착하면 배는 고프지만 밥을 먹을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일단 잠을 자고 지친 몸을 쉬게 하는 것이 가장 우선적이기 때문에 나는 다음날 근무를 해야 하는 경우에는 특히 오자마자 바로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린 뒤 바로 잠자리에 든다. 만일 다음날 쉬는 날이라면 조금 늦게 잠들더라도 식사를 간단히 하고 너무 지친 상태에서 잠에 들지 않도록 가벼운 활동을 해서 몸의 긴장을 풀어주고 평소 자는 시간보다 한두 시간을 넘겨서 잠을 청한다. 12시간 30분을 근무해야 하고 다음날도 일을 해야 하면 정말 잠자는 것 이외에는 다른 것을 할 시간자체가 없으므로 집에서 하려고 하는 모든 일은 쉬는 날 하는 것으로 미뤄둘 수밖에 없다.


아직은 밤에 근무를 몇 번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단점이라 할만한 것은 해가 떠 있을 때 잠을 자야 한다는 것뿐이긴 하지만, 자야 하는 시간에 깨어있는 것 자체가 신체와 정신에 좋을 리가 절대 없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일에 적응하고 기회가 된다면 다시 데이근무로 옮기거나 부서를 옮겨서 업무자체에 여유가 있는 일을 해야 하나 고민은 해보고 있다.




나에게도 꿈이었고, 여전히 누군가에게도 꿈과 같은 미국 간호사의 일상은 이렇듯 평범하기도 하고 우리나라에서보다 더 힘들기도 하다. 하지만 12시간씩 3일을 근무하면 내가 해야 하는 근무시간이 채워지기 때문에 단순히 계산하면 일주일 동안 4일은 나를 위해 오롯이 쓸 수 있는 여유가 있는 것이 한국에서 일하던 때와 가장 큰 차이가 있다. 이 부분은 정말 만족하는 부분이다. 일이 힘들어도 쉬는 날동안 충분히 몸과 마음을 쉬게 하여 다시 일하러 갈 수 있는 준비를 할 수 있는 큰 장점이 된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무조건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라면 주 5일 기준으로 풀타임으로만 일해야 하는데, 미국에서는 일주일 기준으로 12시간씩 2일만 근무하는 파트타임과 12시간씩 1일 또는 한 달에 4일을 근무하는 퍼디엠의 형태가 있다. 굳이 풀타임으로 일할 필요가 없거나 다른 일을 병행해야 하는 경우, 자녀들이 있어서 일에 너무 시간을 빼앗기기 어려운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부분들이 우리나라에서는 경험한 적도 없고 경험할 수도 없을 듯하기에 미국에서의 간호사라는 직업은 정말 매력이 있다.


이처럼 내가 열심히 무언가를 하면 할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적 여유와 환경이 있다는 점이 미국에 온 이후 가장 만족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물론 꼭 어떤 것을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기에 여유로움을 즐기고 여행도 다니고 쉼을 가지는 것도 너무 좋다. 하지만 역시 한국인의 부지런함과 성실함이 어디 가겠는가? 나는 그 평균에 해당할 만큼 부지런하지는 않지만 이제는 좀 더 분발하려고 한다. 결과가 좋든 나쁘든 관계없이 무엇인가를 시작하면 꼭 배우게 되는 것이 있었다. 그런 경험이 있었기에 혹 실패를 하더라도 나는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 그리고 그런 경험들이 쌓이고 모이면 분명 나도 제대로 무언가를 해내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그래서 언제나 나 자신에게 부끄럽거나 아쉬운 마음보다는 작은 것이어도 성취감과 뿌듯함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나는 성장형 인간이니 말이다.

이전 27화 그래서 영어는 좀 편해졌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