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그러워지는 방법
우리들은 언제부터가 나도 모르게 누구보다 열심히, 빠르게, 계속 발전하는 방향으로 살아가야만 적어도 나와 가족, 또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로부터 성공적이며 보람된 삶을 살아왔다고 느끼는, 소위 제대로 된 인생이라는 고정관념 속에 살아왔다. 어느 부분에서든 남들보다 부족한 삶이라 느낀다면, 지금 하고 있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무조건 열심히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것만이 이 부족함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이고 그래야만 내가 동경하는 삶에 가까워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사실은 많은 사람들을 통해 증명되고 있기도 하다.
그렇기에 나 역시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어려서부터 남들과 끝없이 경쟁하는 환경에서 살아가야만 했다. 실제로 경쟁이라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도 있었지만 성과를 이룬 뒤에는 결국 그 역시도 경쟁의 결과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른이 되기까지, 그리고 어른이 된 이후에도 다른 이들과의 경쟁이 없이는 발전도 좋은 기회도 없는 우리나라에서 나는 어떤 어른으로 자라났을까?
학교를 다니기 전까지 다른 아이들과의 비교를 체감하지 못했던 이유는 부모님 덕분이었다. 다른 집 아이가 무얼 하든, 나 그 자체로 받아들여주시는 부모님의 모습에서 나는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에 몰두하기만 하면 되는 어린이였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내가 좋아하는 그 일이 결국 어른인 부모님이 원하는 것과 맞아떨어졌던 것이고 그러기에 몰두하면서 더 잘하게 되는 나를 다른 친구들과 비교할 필요가 없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면, 나는 책 읽기를 좋아하는 엄마의 영향으로 글자를 알기 전인 어린 나이에서부터 책을 펴는 흉내를 내곤 했다. 그래서 글을 읽는 기회를 남들보다 빨리 가졌고 이 때문에 우리말과 더불어 한자어, 영어에도 빠르게 이해하는 아이가 되었다. 부모님께서는 유치원에 들어갈 나이까지 단 한 번도 책상에 앉혀 글을 가르친 적이 없다고 하셨지만 자연스레 글을 읽고 이해하는 아이가 된 것은 순전히 가정환경 때문이었다. 부모님도 의도치 않게 똑똑한(?) 자녀를 둔 셈이 되었고 그랬기에 다른 집 아이들과 나를 비교할 필요가 없었던-아니 오히려 다른 집 아이들이 나에게 비교당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전에도 살짝 언급했지만 나는 청력과 시각 등 감각이 예민한 기질의 아이였기 때문에, 처음 듣는 멜로디를 그대로 기억해서 피아노 건반을 하나씩 눌러 같은 소리를 찾아낼 수 있었고 그 조합으로 배운 적도 없는 피아노를 칠 줄 아는 아이가 되었다. 또 다른 예로는, 눈으로 본 것이 어떤 것인지 다른 것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순간적으로 잘 기억해서 아주 사소한 변화를 쉽게 알아내는 재주가 있었다. 이는 눈치와는 다른 것으로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사소한 부분에서 나의 예민함이 좋은 장점이 되었던 것인데 학창 시절 예습을 할 때 어느 정도의 정보가 이미 눈에 들어왔고 수업시간에 새로운 것을 배울 때에도 선생님의 말투나 행동을 통해 중요도가 파악되었기 때문에 웬만한 사교육이 없이도 우리나라의 필수교육을 소화하는데 큰 무리가 없었다. 그 덕에 학창 시절 꽤 괜찮은 성적을 유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로 나라는 사람은 어려서부터 남들과의 경쟁구도와 경쟁하는 그 분위기 자체를 극도로 싫어했는데, 학생으로서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이 공부이기에 했던 것이고 그 자체로 즐거움을 얻은 것이지 남을 이기고 잘난 그 자체로 만족을 얻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재수 없게 들리겠지만 남들이 원하는 성과를 의도치 않게 이룬 것이 많았기에 이런 속내를 쉽게 드러낼 수는 없었다.
그러다 보니 어쩐지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원하는 것과는 다른 삶을 살고 싶은 생각이 많았다. 그래서 보통의 현실의 삶에 한 발, 내가 원하는 미지의 삶에 한 발을 걸친 채 내가 원하는 게 진짜 무엇인지를 자주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며 어른이 되어갔다. 지금도 기억나는 건, 한창 그런 생각이 가득했던 고등학교 때 친구들은 나에게 평범한듯하지만 신기한 구석이 있는, 소위 4차원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내가 그런 학생이었다는 것이지, 사실 누구든지 일정한 나이가 되어 학교에 들어가면 열심히 공부해서 소위 명문이라 불리는 좋은 학교에 진학을 하고, 거기에서도 또 열심히 공부를 해서 좋은 직장에서 사회인으로서 새로운 시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뒤에는 안정된 일을 하며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여유로운 생활을 하며 살아가는 것은 너무도 좋은 꿈이자 목표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런 상식적이고 보통의 생각을 하지 않았고 다른 미래를 꿈꾸었던 것에는 그저 사 차원적인 기질 탓만은 아니긴 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가정형편이 좋지 못해 대학진학을 하기 어려웠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주변에 나와 같은 형편의 아이들은 사실 공부에 흥미도 없고 그만큼 잘하지도 못했을뿐더러 미래를 희망적으로 바라보기에는 현실이 너무 쓰다고만 생각했다. 게다가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부모님들의 전적인 경제적 지원으로 공부에만 신경 쓰면 되는 상황이었다. 공부는 제법 하지만 내가 어쩔 수 없는 경제적인 문제가 큰 아이들이 내 주변에 없었기에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고 답답하기만 했다. 애늙은이 같은 나의 면모가 어린 시절을 순수하게 보낼 수 없던 또 다른 이유이기도 했다. 그때는 지금과 달리 느지막한 사춘기를 겪을 시절이기도 해서 친한 친구들에게도 나의 속마음을 시원하게 털어놓지 못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을 찾지 못한 원인일 수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열심히 공부해서 일단 좋은 학교에 진학하고 나서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방법을 생각도 못했고 알려주는 이도 없었다. 나름대로 찾아보기도 했지만 그때는 인터넷이 기본인 시절도 아니었고 내 주변에 보고 배울만한 사람도 없어서 결국 나는 방법도 찾지 못하고 포기를 해버렸다.
중학교 때에는 고등학교 때보다는 미래에 대한 생각이 짧았기 때문에 그저 공부를 잘하는 것이 내 미래를 만들어줄 것이라 생각했는데 3학년이 되어서 고등학교 진학상담을 하면서 현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대학을 못 갈 바에는 실업계고등학교로 진학을 해서 장학금을 받고 공부한 뒤 빠른 취업을 기대했지만, 그 시절 부모님과 주변 어른들은 공부를 잘하는 것이 곧 출세의 길, 잘 사는 길이라 여기셨기에 내 성적으로 실업계를 지원하는 것은 아깝다 못해 멍청한 선택이라는 분위기였다. 어른들의 기대를 실망시킬 수가 없어 결국 인문계 고등학교를 선택했지만 사실 내 마음속에서는 온전히 자립하며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얼른 독립을 하는 것이 스무 살이 넘어서까지 공부를 하느라 쓸데없는 시간낭비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컸다. 그래서 고등학교 진학 후 가장 긴 방황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대학을 목표로 하는 친구들이 열심히 학원을 다니며 등수에 신경을 쓸 때, 나는 적당히 공부하며 등수를 지키며 하교 이후의 시간에 뭘 할까 고민을 하다 중학교 3학년 때 잠시 경험했던 아침신문배달을 계기로 방과 후 시간에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하면서 남들보다 일찍 사회생활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학교에서 배우는 이론적인 부분과 확연히 다른 인생에서 필요한 것들을 일을 하며 배웠다. 어떻게 사람을 대해야 하는지, 인간군상이 얼마나 다양한지, 돈을 버는 행위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나는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지 등등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것들을 이때 정말 많이 체험하고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물론 아르바이트였기 때문에 일하는 것 자체에서 배울 것이 많았지 실제로 번 돈의 액수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이때의 경험이 내가 어른이 되는 것과 지금까지의 모든 인생여정에 정말 많은 영향을 주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나는 또다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에 대해 많은 고민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해본 게 도둑질이라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비도 벌고 앞으로 뭘 하며 살지 생각하는 시간이 이후에도 꽤나 있었는데 반전은, 우리나라에서는 그래도 인문계 고등학교를 나와야만 대학진학뿐 아니라 사회생활에서도 어느 정도는 배운 사람, 무난하게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으로 인정받는다는 사실이었다. 실제로 나는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한 친구들에 비해 회계, 경리실무, 전기전자실습 등의 좋은 재주가 하나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인이 되어 직장을 구할 때 기성세대들의 고정관념에 따라 뭔가 똑똑할 것 같은 직원으로 분류되는 경험을 한 기억이 있었다. 참 우스운 일이었다. 대학을 가려고 수능을 준비하는 공부만 했던 게 전부였고, 실제론 실리적인 기술은 내 손으로 할 줄 아는 게 없었는데도 사회에서는 먹물 좀 찍어 바른 사람들이 인정받는다는 사실이 말이다. 웃프지만 이런 나의 경험들이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가에 대한 질문에 또 다른 답을 주었다.
결론적으로는 대학도 못 갈 바에는 얼른 취직이나 해서 독립해서 살겠다는 내 고집을 굽힌 덕분에 우리나라 사회에서 직장인으로는 어느 정도 편견 없이 무난하고 일을 시켜볼 만한 사람으로 분류되어 어찌어찌 돈을 벌며 살게 되었지만 그나마도 대학중퇴한 학력이 끝이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에는 언제나 한계가 있었고 그러다 보니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건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다. 내가 살고 싶은 삶은 따로 있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당장 달라질 것 없는 일상에 어느 정도 타협을 하고 한해 한해 보내며 그렇게 평범하고 별 볼 일 없는 일상을 살아가다가,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소리치던 삶을 위해 기존의 모든 틀을 깨버렸던 건 간호사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그렇게 내 인생의 루트는 정말 상상하지도 못한 방향으로 순식간에 흘러갔다.
그리고 그 결정을 한 뒤 15년가량동안 항상 나는 새로운 도전을 하고, 한 자리에 머물러 있기를 너무나 불안하게 생각했다. 그만큼 나의 컴포트존(Comfort Zone)을 벗어나려 무진장 애를 쓰며 살아왔는데 그 이유는 단 두 가지였다.
첫째는, 지금까지는 남들에게 인정받고 손가락질받지 않는 인생을 사느라 시간을 쓰기만 했으니 이제부터라도 남들에게 나의 인생을 보여주지 말고 나 자신에게 인생을 보여주자는 마음이었고,
둘째는, 나의 새로운 인생을 결정은 했지만 내가 처음 생각했던 그때에 비하면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났으니 최대한 내 모든 에너지를 동원해서 그 흘러간 시간을 따라잡고 보상받자는 심리였다.
내 기대와 욕심이 생각보다 멀고 높은 곳에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끊임없이 노력하면 할수록 해낼 수 있다고 느끼게 되었고, 그 모든 과정이 진정 괴로움이 무엇인지 체감할 수 있는 기간이었지만 그만큼의 성취와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 되었다.
앞을 보며 달리기만 할 때에는 달리는 것에만 집중해서 내가 잘 달리고 있는지만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잠시 쉬어야만 하는 순간이 오면 그때는 나도 모르게 지금까지 살아온 것들을 돌아보게 되는 것 같다.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올리면서도 참 많은 순간을 달리는 데 써왔던 것도 사실이다. 최근 우연한 순간에 강제적으로 나의 지나온 시간을 돌아볼 기회가 생겼는데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내가 참 열심히도 살아왔구나... 설사 결과가 형편없었더라도 열심히 살아온 게 대단한 일이었는데 거기에다 결과까지 잘되기를 목표로 하고 살아왔으니 그냥 열심히만 했다고 하기에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나를 채찍질하고 다그치며 살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솔직히 이제는 누군가에게 나는 어느 정도 성공한 삶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만한 위치에 있다고 설명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누구나 꿈꿀 수는 있지만, 도전하고 성취할 수 없는 여러 일들을 실제로 해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와 같은 방식으로 살아온 사람들은 성공한 것 같고 안정된 것 같은 순간에도 나는 아직 부족하다, 뭘 더해야 할까 하는 생각으로 또 나를 곤란하고 힘들게 하고 있음에 이제는 무슨 수를 내야겠다고 다짐했다.
계기라고 할 만한 일이 있기도 했지만, 사실 가장 큰 이유는 지금까지 열심히 달려온 내 목표가 막상 마주해 보니 내가 그렇게 간절할만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나는 살아오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연민과 배려와 희생을 해왔지만, 정작 나 자신에게는 어느 것 하나 양보하고 귀 기울 여준 적이 없었다.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지금 해야 하는 일이라는 말만 반복해 왔고, 정말 지금 하는 이 일이 나를 위한 일인지에 대해서 반문해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미국에 와서 출근 전까지는 잠깐동안 백수의 시간을 보냈고, 일을 시작하면서는 일을 잘하고 싶어서 나 스스로를 괴로울 만큼 달달 볶으며 지내다 보니 한동안 정신없는 시간만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쉬는 날 종일 밀린 집안일을 하며 바쁜 하루를 보내고 저녁시간 전에 커피를 한 잔 마시러 남편과 나가서 카페에 잠시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이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일상이 사실은 그토록 내가 원하던 이상적이 삶이었다는 것을 문득 깨닫게 되었다. 두 잔에 10불도 안 되는 카푸치노를 마시면서, 시시콜콜 내가 일하는 동안 남편이 하루를 보낸 이야기, 내가 일하며 겪었던 에피소드, 한국에서의 기억과 여기서 느낀 점들을 만담처럼 오고 가는 대화 속에서 우리가 이런 생활도 쉽게 하지 못하고 이제껏 살아왔구나 하는 슬픈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진정 나를 위해 살아가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원하는 삶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만일 그것을 이룰 수 있다면 나는 또 무언가를 해야 하는 걸까?
정답은 어디에도 없지만, 지금까지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결론 내린 것은 이것이다.
최우선적으로 나 자신에게 너그러운 삶을 배울 기회를 주어야만 한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거나 선택을 할 때, 나는 항상 효율과 결과를 중요시했다. 나는 이미 다른 사람에 비해 늦었기 때문에 따라잡을 정도로 열심히 하고 실제로 결과를 내야지만 의미가 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 표현하지 않았지만 이미 내 마음속에는 그런 관점이 뿌리 깊게 박혀있었고, 그랬기에 그 기준에 조금이라도 부족한 상황이 발생하면 조바심이 나고 죄책감이 들었으며 나 자신을 한없이 미워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실제로 어떤 성과가 일어난 결과로만 보았을 때에도, 내 기대를 채우기에 너무 고달프고 힘들어서 이제는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왔을 때 오히려 좋은 성과가 쉽게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큰 기대만큼 긴장하고 불안했던 것이 요인이었을 수 있지만 힘을 빼고 안되면 어때, 할 수 없는 일도 세상에는 있으니까 와 같이 약간은 대책 없는 마인드가 편안함과 자신감을 주었다고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그렇기에 너무 나를 다그치고 결과에 의존해서 나 자신을 못난이 취급하지 말도록 하자. 속담에도 있지 않은가. 버린 자식이 효자노릇한다. 만일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 내가 하고 있는 것이 만족스럽지 못하거나 못나 보이는 상황이라면 그건 내가 나를 사랑하고 아껴주지 못해 상한 것이지, 내 인생이 어디 잘못되어 그런 것이 아니니 남들을 챙겨주는 반만이라도 나를 위해 상냥하고 너그럽게 봐주자. 꼭 지름길로 가는 것만이 빠른 것이 아니다. 때로는 바보처럼 둘러가고 돌아가는 길이 나의 인생에 큰 전환점과 휴식이 되어준다. 힘들 땐 힘들어하고 쉬다가 다시 힘이 나면 툴툴 털고 일어나 다시 걷던 길을 천천히 걸어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