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국간호사 Sophia Jul 02. 2024

한국 병원 근무 경험기 -7

더 이상 한국에서는 일하지 않는다

내과병원을 지원할 때부터 다음 후보군으로 생각해 두었던 병원에 재빨리 지원을 했고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출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입사한 당시에는 일반병원으로 승급하여 규모를 키우는 상태였던 구구) 요양병원, 구) 재활병원이었다.

역세권에 있던 빌딩을 임차한 곳이어서 그간 일해왔던 병원에 비해서는 규모가 작았지만 내부를 보면서 내실이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병동에서 간호사 경력이 많지 않던 나는 뇌졸중을 겪은 환자들의 급성기 이후의 치료를 직접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경력적으로도 새로운 능력치를 가질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


교대근무를 하는 곳이었지만 3교대가 아닌 아침/오후 교대이고, 밤근무 전담이 따로 있어서 아이를 키우는 내 또래의 선생님들이 많았다는 것도 좋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일해본 병원들 중에서 가장 분위기가 좋은 곳이었다. 왕년에는 다들 급성기에서 빵빵한 경력을 가지고 계셨으나 결혼과 출산으로 더 이상 큰 병원에서 일할 수 없었던, 그러나 대단한 임상경험으로 무장한 멋진 선생님들이 계셨고, 모르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배울 기회를 주셨다. 이런 분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정말 좋다고 느껴졌다.


처음에는 아침이나 낮근무를 할 계획으로 면접을 보고 출근을 계획했다. 그런데 면접을 진행한 팀장님께서 밤근무를 추천하셨다. 소위 ‘나이트킵’이라 부르는 근무인데 한 달에 절반인 15일을 일하는 것이고, 밤을 새워 일하는 것만 괜찮다면 아침이나 낮근무에 비해 쉬는 날이 훨씬 많고 야간수당 덕분에 급여도 많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고민해 보겠다고 했는데 출근일 수 자체가 적다는 것이 나에겐 장점으로 느껴졌다. 이제 출국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하루라도 더 쉰다면 그동안 준비하는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침과 낮근무를 며칠 하면서 전체적인 업무를 익히고 밤근무 고정멤버가 되기로 했다.


기존에 재활병원으로 운영되었던 병원이고 재활병원의 특성상 급성기에 비해 재원기간(병원에 입원하는 날수)이 긴 환자가 무척 많았다. 사고나 질병으로 인해 신체의 기능을 갑작스럽게 잃은 환자들은 원래자신의 신체능력을 되찾기까지 무척 오랜 시간과 힘든 재활을 거쳐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추락이나 교통사고로 인해 하루아침에 걷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평소지병인 고혈압이 서서히 악화되어 뇌졸중으로 인해 쓰러지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는 재활을 전문으로 하는 병원이 인구에 비해 적은 편이라서 거의 전국의 모든 환자들이 몇 안 되는 재활전문병원을 찾아다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나의 경험은 짧았지만, 이곳에서 일하지 않았다면 알 수 없던 분야를 강렬하게 배웠다. 큰 규모의 병원에서는 볼 수 없었지만, 다쳐서 회복을 하고 일상을 되찾기 위한 과정을 거치는 것을 짐작도 못했던 나에게 굉장한 깨달음과 배움을 준 곳이었다. 그리고 미국에 있는 지금도 그 경력이 나에게 무척 큰 힘이 되고 있다.


첫 출근 이후 근무형태를 다시 조정하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엎치락뒤치락하는 과정에서 나는 혼자서만 3교대를 하는 상황이 벌어졌지만 그래도 이주만에 모든 일이 정리되어 결국 나이트킵 멤버가 되었다. 처음에는 환자군 자체가 너무 낯설어서 밤에 어떤 것을 중점적으로 봐야 하는지,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긴장감이 컸다. 밤을 새우는 일 자체가 피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처음 아침과 낮에 일하며 본 환자분들과 조금씩 이야기를 나누고 친분도 생겨서 무엇이 고민이고 어려움인지 알게 되고 나니 밤동안 내가 해줘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조금씩 배우고 알아가기 시작했다.


보통 밤근무 때는 모든 환자분들이 통증이나 불편감 없이 편안하고 충분히 잠을 주무시게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이다. 아침부터 낮시간에는 내내 재활운동과 기존에 추적관찰 중인 타 병원 진료 등의 일정이 바쁘기 때문에 휴식을 취할 시간이 보장되어야 다음날 하루를 잘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통증이 있으면 약이나 통증을 덜어줄 수 있는 보조적인 도움을 주어야 한다. 또, 몸이 불편한 분들이기에 보통사람들처럼 쉽게 움직 일수가 없고 그 이유로 추위와 더위를 쉽게 느끼기 때문에  병실 내 온도를 신경 쓰고 그래도 무언가 불편하다면 해줄 수 있는 것을 동원해서 최대한 편안한 밤을 보내게 해주는 것이 필요했다. 대부분의 아침과 낮근무에는 회진, 치료계획, 외출일정 등 여러 가지 복잡한 업무들이 많고 그러다 보니 꼼꼼히 챙기더라도 더러 빠지는 일들이 생기기 마련이어서 밤근무동안 그런 부분이 있었는지 살피고 정리정돈을 한다. 다음날 투약할 약도 챙기고, 치료나 검사가 있으면 준비해 두고, 아침근무자가 오기 전에 채혈과 혈당검사 및 활력징후(바이탈사인 vital sign 혈압-맥박-체온-호흡의 변화 및 악화를 확인)를 확인하고 밤동안 무사히 수면을 잘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길지는 않았지만 2개월 정도의 경력을 끝으로 나는 더 이상 한국에서 병원간호사로 일하는 일을 하지 않게 되었고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마무리가 좋아야 한다고 하지 않던가? 나는 너무 좋은 분들을 만났고 좋은 경험으로 경력을 쌓으면서 미국에서 간호사로 다시금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아름다운 마무리를 했다. 알게 모르게 도와주신 분들이 많았고 일일이 인사를 다 드리지는 못했지만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늦게라도 감사를 전하려고 한다.


 생각해 보니 내가 간호사가 되기로 한 여러 가지 요소 중 큰 부분은 아픈 사람을 위해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내가 좀 힘들더라도 기꺼이 해줄 수 있는 측은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을 동정심이나 불쌍하게 남을 보는 시선과는 좀 다르게 받아들인다. 영어로는 Empathy라고 표현하는데 타인을 공감하는 감정이라고하면 이해가 좀 더 쉬울 듯하다. 누구나 환자가 될 가능성이 있고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내가 알던 세상은 다른 세상이 된다. 내가 가진 지식과 능력으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음에 기쁘고 보람을 느끼는 감정에서 나는 삶의 의미를 느낀다. 나는 어려서부터 남을 돕고 살피는 것을 좋아했고 어른이 되어서는 직업이 되어 이렇게 일하면서도 돈을 버니 오히려 좋다는 생각도 했는데, 타고난 마음씨의 결이 비슷하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의식적으로 장착해야 하는 마음이다 보니 쉽게 감정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피로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직업을 선택하고 앞으로도 이 일을 내 직업으로 남기는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 내가 가진 어떠한 능력으로 남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은 인간에게서 볼 수 있는 가장 크고 멋진 능력이기 때문이다. 비록 여러 가지 이유와 환경의 영향으로 한국에서의 간호사 생활은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했지만 내가 간호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곳이 또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앞으로도 이 직업 안에서 또 다른 나의 인생을 찾아보려 한다.


별책부록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미국간호사의 이민이야기로 다시 찾아뵈려 합니다. 그렇지만 이 공간은 부록이기 때문에 언제든 불쑥 찾아올 수 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끝까지 읽어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전 14화 한국 병원 근무 경험기 -6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