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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국간호사 Sophia Dec 02. 2024

내가 고생하는 진짜 이유

경력이 깡패인 직업

오늘은 미국에 간호사로 이민생각을 하시는 한국간호사분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인 경력유지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나 역시 미국으로 오기까지 경력과 관련해서 많은 고생의 시간이 있었고, 이제는 그 질문에 대해 답을 할 수 있는 입장은 되었다고 느껴서 글을 써보려 한다.


미국간호사면허를 취득하고 이민수속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려면 에이전시나 미국의 병원을 통해 영주권을 신청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미국은 간호사가 일하게 될 회사에서 이민에 대한 보증을 서는 방식인 취업이민으로 이루어지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호주나 뉴질랜드의 경우에는 미국과는 달리, 독립기술이민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간호사가 있고, 나이, 학력, 경력 등 여러 기준에 해당하는 점수를 충족하면 현재 경력을 유지하지 않은 상태라고 해도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기 때문에 미국과는 이민과정이 무척 다르다. 그리고 가장 다른 점은 영주권이 호주나 뉴질랜드간호사의 필수조건이 아니기에 취업비자만으로도 머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 보니 간호사로 미국에 오려는 분들이 제일 힘들어하는 것은 이민수속을 위해 현재 다니는 병원에서 계속 경력을 쌓는 것이기도 하다.


2024년도 현재, 미국 전체를 기준으로 보면 간호사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베이비붐이라 일컫는 세대의 은퇴가 이미 시작되었고 모든 직업군에서 은퇴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특히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대체할 수 없는 직종 중 하나인 간호사는 은퇴자의 자리를 메꿀 인력의 수가 상대적으로 적고 업무능력의 갭이 크다는 것을 이미 현장에서 확연히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몇 년간은 이 사태가 계속될 거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물론, 많은 한국인들이 살고 싶어 하는 뉴욕시티나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아직은 느끼지 못하는 일이긴 하다. 그곳은 언제나, 그리고 누구나 거주하고 싶은 지역이기에 일하고 싶어 하는 간호사도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지금의 현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한국간호사들은 오히려 이런 의문을 갖는다. 그렇게 간호사가 부족하면 가겠다는 사람들로 자리를 빨리 채워야지 이민수속이 이렇게 늦어지는 게 말이 되느냐고. 그리고 이미 일할 수 있는 충분히 경력이 있는데 왜 최근경력이 더 필요하냐고. 여기엔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내가 느끼는 큰 이유는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로는 간호인력의 경력 및 손바뀜 현상과 관계가 있고 두 번째로는 이민과정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해도 부족과 관련된 문제이다.


현재 은퇴를 하는 간호사들은 최소한 2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60세 이상의 인력들이다. 달리말하면 이들은 신규간호사로는 1:1로 대체할 수 없는 경력과 능력, 노하우를 가진 사람들이라는 말이다. 그렇기에 아무리 우리나라보다도 인구가 많고 간호대학이 많은 미국이라 해도 은퇴하는 간호사들만큼의 경쟁력을 가진 간호사로 그 자리를 채우기가 어렵고 그 덕에 우리 같은 해외간호사들이 미국으로 가는 길이 열린 것이다.

안타까운 이야기이지만, 우리나라에선 연차가 높고 일을 잘하는 베테랑 간호사의 자리에 신규를 두 명으로 채우더라도 비용절감의 효과가 있기에 시니어 간호사들을 홀대하는 경향이 매우 짙은데 반해 미국은 절대적으로 경력이 많을수록 모셔가는 분위기이다. 그래서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의 분위기가 좋은 내가 몸담은 병동만 해도 30년 이상 이 병동을 떠나지 않는 간호사들이 적지 않다. 한국간호사로선 매우 부러운 일이다.


베이비붐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인구증가가 가장 많던 시절의 사람들이 은퇴를 하는 것이라, 지금 신규간호사들이 모두 취업을 한다고 해도 물리적인 수를 채우기에는 매우 부족하다 보니 미국의 어떤 병원들은 법적으로 문제가 될 사고만 크게 치지 않으면 간호사를 해고시키는 일은 할 수 없다 생각하는 곳도 있다는 말도 들었다. 그러나 이는 인력이 부족한 시골이나 중증도가 높지 않은 병원에서나 생각할 수 있는 일이고 일반적인 의견과는 거리가 있다. 그만큼 경력이 많고 일을 잘하는 간호사는 어디서든 존중받는다는 반증이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표면적으론 매우 자유롭고 개인의 의사를 존중하는 듯 보이지만 반대로, 보이지 않는 규율과 질서가 엄하게 자리 잡은 나라이다. 그러기에 병원의 규모와 수준이 높을수록 그 위치를 유지하려 하고 또 그 명성을 지켜야 하기에 일정 능력 이하의 인력은 아무리 사람이 부족해도 채용하려 하지 않는다. 돈을 더 들여 에이전시 간호사나 트레블 널스를 채용하더라도 병원의 이념과 가치에 부합하는 직원들을 뽑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이미 한국에서 꽤나 여러 해 근무한 경력을 가진 간호사라 하더라도 최근 경력의 공백기간이 있으면 미국에서 다시 교육을 받아야 하고 그만큼 적응하기 힘들다고 생각하기에 미국의 신규간호사와 다를 바 없다고도 여기고, 이민 수속에 적지 않은 돈을 쓰면서 데려올 만한 장점도 없어 애초에 입사할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이다. 자본주의 나라다운 생각이다.


항상 인력난이 있는 병원이라면 경력이 적은, 또는 경력이 단절된 간호사라도 데리고 와서 업무적으로는 조금 부족함이 있더라도 일할 사람이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고 채용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이런 곳은 대부분 한국보다도 환자 간호사의 비율이 심각히 나쁜 수준의 널싱홈이나 재활병원 등 급성기가 아닌 병원들이다. 그래서 업무자체의 강도도 클 뿐 아니라 자신의 면허를 잃을 만한 상황에 처할 확률도 높고, 이후 급성기 병원으로의 이직 시에도 좋은 점수를 받기가 어렵다.

다시 말해, 경력의 공백이 있는 (적어도 3개월 이상의) 한국 간호사들은 규모가 크고 직원의 복지가 좋은 급성기 병원에서 근무할 수 있는 확률이 매우 낮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다. 만일 좋은 병원임에도 나를 뽑아준다면 그 병원이 크긴 하지만 아주 깡시골에 있거나, 인력유출이 너무 커서 큰일 난 상태이거나 나의 경력이 예상보단 좋은 경력일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비교적 복지가 좋고 근무환경이 좋은 병원이나 제휴된 에이전시에서는 수속하는 기간 동안 절대 일을 그만두지 말고 미국으로 출국할 때까지 경력을 유지하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기가 참 쉽지 않은데, 이는 우리나라 특유의 병원 문화 때문이기도 하다. 태움이라는 나쁜 문화를 견뎌내면서 연차가 낮을수록 많은 환자를 직접 담당하고 교대근무로 몸이 상할 대로 상한 상태로 10년 이상 병원경력을 쌓기 쉽지 않은 것이 첫 번째 이유이고, 만일 10년 이상 일했다면 그만두는 것보다는 연차 등을 고려했을 때 그냥 그곳에 남아있는 것이 편한 부분이 많아서 굳이 해외취업이나 이민을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두 번째 이유라서 대부분 경력을 버틴다고 말하는 간호사들의 연차는 5년 내외의 젊은 인력일 수밖에 없고 그들은 너무나 지치고 괴롭다.


내 입사동기인 필리피노 친구들을 보면 너무나 대단하게 느껴지는 것이, 한국보다도 훨씬 열악한 환경에서 10년 이상씩 경력을 유지하고 출국직전까지 출근을 하다가 미국에 오는 것 때문이었다. 심지어 수간호사를 하다 미국에 평간호사로 온 친구도 있었다. 그럼에도 미국에 오면 초반에는 일이 너무 벅차고 힘들다고들 한다. 그 정도 일하다 왔으면 힘들지 않아야 하는 거 아닌가 싶지만 그만큼 미국에서 첫 병원생활이 참 쉽지가 않다.


그러니 가능한 한 병원은 출국하는 날이 정해질 때까지 절대 그만두지 말고, 너무 힘들면 이직을 하더라도 버티다 미국에 오시길 바란다.


그리고 두 번째로 이렇게 일할 사람이 부족하다 하면서도 이민수속이 지지부진한 것은 미국의 병원들과는 관련이 없는 미국이민성의 업무처리능력 때문이다. 아무리 병원이 해외간호사를 원하고 인력이 급하게 필요하다 하더라도 이민성의 수속이 끝나야만 합법적으로 이민을 이행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저 기다릴 뿐이다. 그리고 이민성의 입장은 미국의 정치상황과도 관련이 있다. 적어도 간접적으로나마 정치인의 성향과 정책에 눈치를 봐야 하기에 미국 경제가 어떠한지, 대통령의 의견은 무엇인지를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데다가 다음 미국을 이끌어갈 대통령은 절대적으로 미국이 우선이며 나라에 이득이 되는 인력만을 이민자로 받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에, 앞으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두려워하는 사람도 많다.


나의 개인적인 의견은, 간호사는 신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환경에서 일하기는 하지만 3D업종과는 달리 최소한의 교육 수준이 매우 높고(요즘 미국도 취업 시 간호사에게 학사학위를 요구한다. 미국의 간호대학에 대한 이야기는 조만간 할 예정임) 또한 국민들에게 신뢰가 두터운 직업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임상경력을 충분히 가지고 오신다면 먹고사는 데는 문제가 없고 이민수속 역시 미국이 필요로 하는 주요 인력이기에 점점 해결될 것이라 본다. 사람이 몰리는 지역과 부족한 곳의 차이가 있을 뿐, 미국은 자국민으로 충당하기 힘든 해외 간호사의 수요가 분명히 있고 우리를 환영하고 존중해야만 자신들의 건강을 지키며 살아남을 수 있다.




이렇듯 지지부진하게나마 수속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한국간호사들의 미국이민은 여전히 줄지 않고 있다. 비록 수속이 천년만년인듯하여 애가타지만 그럼에도 이민을 기다리는 이유는 결국 우리나라 사회의 문제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간호사들 중 개인적인 입장에서 미국으로 가려는 가장 큰 이유는 한국에서는 인정받지 못하는 전문성과 대가 때문임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간호사가 매년 가장 신뢰받는 직업으로 선정이 되고, 간호사가 되는 것이 그저 희생만을 하기 위함이 아닌 보람과 그만한 최소한의 대우를 받는 직업이라는 것도 모두가 안다. 그러기에 그만큼의 책임과 도리를 하고 있다.

분명 한국의 간호사들의 술기와 업무능력은 정말 대단하다. 하지만, 미국에서의 간호사는 그저 일만 잘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환자와 가족 등의 보호자들을 교육할 수 있어야 하며, 다른 전문가들 사이에 의견이 다르거나 결론이 필요할 때 환자를 충분히 변호를 할 수 있어야 하고, 내 환자를 내가 케어하지만 함께 일하는 동료와의 팀워크를 중요하게 여겨야 하기 때문에 때로는 동료의 환자도 내환자가 되기도 하는, 정말 해야 할 일들이 많은 직업이다.


우선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기 때문에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길 확률이 높다. 그래서 규모가 크고 대외활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유명한 병원들은 그 어느 능력보다 커뮤니케이션을 꼽는다. 비자스크린을 위해 아이엘츠나 토플과 같은 수준의 영어점수를 이미 가지고 있음에도 미국에 오면 내 영어는 너무나 부족한 수준이라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기에-여기 그 증인이 한 사람 있습니다-미국에서 간호사 하는 게 힘들다고 느낀다면 단지 업무루틴보다는 의사소통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미국에서 간호사는, 환자와 보호자의 상황과 환경을 대변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언어가 어느 정도 통한다 하더라도 이곳의 문화나 보험 등 의료환경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한국에서 간호사를 오래 했다고 해서 이곳에서 일하는 것이 식은 죽 먹듯 쉬운 것은 절대 아님을 알아야 한다.


경력단절을 제외하고도 최소 8년가량의 경력을 가진 나도 이곳에 와서 업무에 적응을 하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오히려 IV와 채혈 등의 술기들은 손끝 야무진 한국간호사가 뒤쳐질 이유가 없다고 느낀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간호사는 그런 일만 하는 것이 아니기에 한국에서 경력을 쌓으면 쌓을수록 이곳에 와서 배우는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이는데 좀 더 여유가 생기고 업무에 적응하기 수월할 것이라는 건 장담할 수 있다.




사실 한국이 얼마나 발전하고 대단한 나라인지는 우리만 안다. 미국에서는 미국 이외의 나라는 캐나다를 포함해서 수준차이가 있다는 암묵적인 편견이 있기 때문에, 자국에서 5년 미만의 경력을 가지고 온 간호사들은 신규와 차이가 없다고 느끼는 것 같다. 막상 일해보면 개인의 역량에 따라 편견이었다는 것을 보여줄 수도 있지만 세계 대국이라 자부하는 나라에 와서 자랑할 것은 내 능력뿐인 것 같다. 다행히 나는 좋은 프리셉터를 만났고 적극적으로 배우려고 노력했던 덕분에 잘 적응해서 이제는 다른 동료들을 도울 수 있는 정도의 수준까지 발전했지만, 아마 막상 처음 와서 1년 동안은 내 일만 잘 처리하고 집에 가는 것조차 너무나 어려운 일이라는 걸 오신다면 느낄 것이라 생각한다.


한국에서 간호사 생활하기 힘들다고 '버틴다'는 표현을 쓰고 계신 많은 분들께, 간호사는 실로 경력이 깡패인 직업이니 이왕 일하는 거 그냥 버티지 마시고 더욱 그 일을 잘하려고 노력하고 발전한 상태로 미국에 오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제가 여기 와서 고생한 이유가 바로 그거였거든요. 어쭙잖은 경력으로도 여기서 살아남을 거라 착각했던 것. 경력이 10년은 되어야 영어가 좀 부족해도 일할 수 있고, 영어도 비자스크린 통과할 정도는 여기서 베이비 잉글리시 정도이니 오셔서 한참 고생하실 거예요. 내 나이 40도 넘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낯선 땅에 와서 고생하는 거냐는 이야기 하실까 봐 미리 한국에서 많이 준비하고 노력하셔서 여기서는 최소한으로 고생하고 재밌고 멋지게 사는 인생이야기를 들려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추신) '미국간호사, 이민가기' 코너가 완결되어 버리는 바람에 당분간은 별책부록을 통해 만나 뵙겠습니다. 추후에 미국간호사 진행형 스토리도 연재될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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