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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국간호사 Sophia Dec 16. 2024

너도 내가 부러울 거다

그래도 너만의 속도로 너의 방향을 가렴

미국간호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여러 가지 준비를 하면서 가장 신기했던 점은, 나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 있는 동안 미국에서 일하는 간호사들을 그렇게 대단하게 바라보며 부러워했다는 점이었다. 막상 와서 살아보니 이곳의 삶도 결국 힘든 부분은 있고, 사람 사는 곳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만 어째서 한국에서는 마냥 이곳 생활을 동경했는지 이야기해보려 한다. 당연히 이건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고 다른 생각이 있다면 그 또한 존중한다.


평생 동안 살아온 나라에서 한순간 다른 나라로 가는 일은 설렘도 있지만 설렌 만큼 두렵고 어려운 일들을 만날 수밖에 없다. 본인의 의지로 준비를 했든, 우연한 기회로 오게 되었든 겪는 일들은 비슷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나라보다 좋은 것이 있더라 고 말하는 나라로의 이민은 대부분 긍정적인 부분을 더 기대하게 되는 것 같다.

이민을 오기에 앞서 교환학생으로 미국의 간호대학에서 학과공부와 랩, 병원실습을 해보았고 이때 5년짜리 학생비자를 받았기 때문에 공부하던 대학으로 편입하고 졸업할 생각도 하고 왔던 터라 가능한 한 미국의 생활과 문화를 이해해고 적응하려 노력했고 그 덕에 아예 이민을 와서는 그만큼 익숙한 부분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아예 미국생활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보다 조금 더 아는 부분이 있을 뿐, 이민이라는 것은 잠깐 여행이나 유학을 오는 것과 달리 엄청나게 큰 경험이고 변화인 건 분명하다.


부모님이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거나, 어려서부터 해외를 자주 다녔거나, 조기유학 등으로 영어에 노출된 적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이런 경험이 전혀 없는 순수 토종한국인의 경우에는 특히 영어에 노출되는 환경을 만드는 것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언어의 차이를 가장 크게 떠올릴 듯하다.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에 호감이 있고 오랫동안 공부해 왔던 나조차 미국에 도착해서 2주 정도는 외출도 하기 싫고 전화나 대면해서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것 자체가 겁이 날 만큼 힘겨운 시간을 겪었는데, 물론 궁하면 통하고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는 것이긴 하지만 그만큼 다른 언어를 쓰는 나라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다음으로 낯선 것은 우리와는 다른 문화이다. 특히 미국문화라고 할만한 예를 하나 들자면, 처음 만난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스몰톡'이 있는데, 나는 한국에서도 모르는 사람들과 쉽게 이야기를 나누고 친해지는 것을 잘하는 사람이었어서 그나마 덜 어색했지만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어느 정도까지 내 이야기를 오픈해야 하는지 등 한국에서는 전혀 해보지 못한 이 문화를 가장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것 같다. 물건을 사러 가서 점원에게 계산을 하면서는 물론이요, 긴 줄을 서 있으면서 앞뒤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도 다반사다. 그러다 보니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동료나 관계자들과 이야기하는 것은 거의 수다타임 수준이다. 때로는 그런 모습은 일하기 싫어서 시간을 때우는 게으름으로 느낄 만큼 한국사람들에게는 불필요하고 비효율적이라고 여겨지는 문화이기도 하다.


하나 더 꼽자면 뭐든 내가 알아서 해야 하는 Do It Youself 환경이다. 의자나 책상을 사서 내가 조립하는 것만이 DIY가 아니다. 나와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은 내가 다 알아서 해야 하는 환경이라는 말이다. 예를 들면, 내가 입사한 병원만 해도 입사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이메일로 보내주면 그중 의문이 생기는 부분은 전화를 걸든, 답신을 보내든 해서 직접 알아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베네핏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데 의료보험의 종류도 최소 5가지가 있어서 가이드라인을 보고 내 상황을 판단한 뒤 스스로 골라서 결정해야만 하고, 이것도 매년 내 상황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계속 확인하고 갱신을 해야 한다. 심지어는 일하고 받는 급여명세서에 내가 일한 시간이 반영되었는지 아닌지조차 내가 잘 확인하고 잘못된 경우에는 인사팀(HR)에 연락해서 받아내야만(?) 한다. 이처럼 하나부터 열까지 나의 손해를 줄이고 권리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내가 다 컨트롤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럼에도 왜 그렇게 미국생활과 미국간호사에 대해 동경하는 마음을 가지는 걸까?


첫째로, 미국이라는 나라가 자유롭기는 하지만 그 자유분방함 속에서도 지켜지는 어떤 질서의 수준이 역시 선진국이라는 생각을 하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역시 자유민주주의국가이지만, 오랫동안 뿌리내린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나이와 성별, 인종과 민족에 대한 편견이 매우 깊어서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하는 것조차 존중받지 못하고 도태되거나 잘못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일이 많다. 또한, 이미 국제결혼과 국내거주 외국인이 이전에 비해 비약적으로 늘어났음에도 특정 인종을 비하하거나 우대하는 인식 때문에 다양성을 존중하지 못한다. 여성들의 사회진출과 맞벌이가 당연해졌음에도 여전히 여성들에게는 출산과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과 승진배제의 기조가 남아있다. 이런 몇 가지를 이유로만 봐도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에 갇혀 사는 것보다는 조금 더 다양성과 자유로움을 인정받을 수 있는 미국에서 새로운 도전과 시작을 해보고 싶은 사람들이 꽤 많아졌다. 사설을 덧붙이자면, 간호사는 미국으로 이민 가기 수월한 몇 안 되는 직업군이라 나이와 상관없이 언제든 경력을 인정받고 일할 수도 있으며, 미국에 와서 다시 학교로 돌아가 공부를 하고 전문간호사나 간호사라는 직업을 이용한 다양한 직군으로의 전직이 가능하기에 우리나라에서 아쉬움이 많은 직업군에 있다면 이런 기회가 새로운 희망을 불어넣어 준다고 느낀다.


둘째로, 한국에서의 삶과 미국에서의 삶은 현재도 미래도 가치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특히 요즘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태이다. 부모님을 모시며 자식도 키운 세대들은 이른바 끼인세대로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지도 못하고 자녀에게 기댈 수도 없는 매우 힘든 삶을 살고 있으며, 그 자녀세대들 역시 인구가 줄어들어서 귀하게 대접받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더욱더 큰 경쟁을 통해 들어간 좁은 문에서도 자신의 자율성을 보장받지 못하고 시키는 일만 하며 살아가고 있으며 거기에 더해 결혼과 출산, 육아는 아무나 할 수 없는 나라가 되어버려서, 원하는 것을 하고 살기에는 배부른 소리가 되는 맥 빠지는 현실을 살고 있다. 그럼에도 뭔가 해보겠다는 의지로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면 그걸 이용해서 사기를 치거나 따라갈 수 조차 없는 넘사벽의 인생들을 소셜미디어로 지켜보면서 한숨 쉬고 눈물 나는 인간사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이렇게 힘들고 나은 수도 없을 바에는 좀 더 나은 인생을 살 수 있다면 다른 나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미 그런 생활을 겪기 전부터 미국으로 이민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처음에는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어려움을 다 겪지만 결국 본인이 성실하고 꾸준히 노력하면 그만한 대가를 결국 받더라는 한결같은 이야기를 하기에 가보자!라는 결정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셋째로, 한국의 현재상황에 비추어 볼 때 자녀를 가진 부모라면 자식에게 더 나은 미래를 보장하고 싶은데 그것을 이룰 수 있는 곳 중 하나로 미국을 생각한다는 것이다. 다른 직군은 모르겠지만 간호사 중 가족과 함께 이민오는 대다수는 자녀에게 좀 더 좋은 현재와 미래를 물려주고 싶어서 선택하는 경우이다. 영어유치원이나 국제학교에 보내는 것은 어려울뿐더러 비용도 어마어마하게 많이 드는데, 미국으로 이민을 오는 경우에는 영어를 큰돈 들이지 않고 배우게 할 수 있으며 대부분의 한국인은 다른 인종에 비해 소위 공부머리가 있어서 한국에서 선호하는 직업을 가질 확률도 높기 때문에 일석이조인 것이다. 혹여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일이 생기더라도 그 사이 국제학교에 들어갈 최소기준을 충족할 수 있고, 그러면 한국에서도 계속 영어권 교육을 받을 기회를 가지기 때문에 안 갈 이유가 없는 것이다.


(어차피 돈이 많은 사람들은 어느 나라에서든 사는 데 문제가 없다. 오히려 보통 사람들은 인건비가 저렴하고 서비스가 좋으며, 손재주가 뛰어나 좋은 물건이 많은 한국에서 사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 것이다. 그래서 많은 재벌가 자제들이 공부는 해외에서 하고 사업과 생활은 한국에서 하지 않던가.)


마지막으로, 간호사라는 직업자체가 주는 만족감과 대가가 한국과 비교하면 매우 좋은 편이다. 사실 우리나라는 간호사의 직업적인 능력을 우습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20여 년 전만 해도 의대입학에 필요한 점수와 간호대에 필요한 점수의 차이가 크기는 했지만 지금은 그 간극이 많이 좁혀지기도 했고, 오래전부터 의사와 간호사의 수준차이가 크고 당연하다는 인식 때문에 공부를 잘하면, 돈을 잘 벌고 싶으면, 사회에서 인정받으려면 의사가 되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면, 한국간호사는 간호대학을 졸업하며 국가고시를 합격하고 면허를 받으면 그 자격자체가 미국간호사면허시험을 응시할 조건이 된다. 그 말은, 한국에서 면허증을 받은 간호사는 미국에서 간호사가 될 만큼의 학업을 이행했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졸업 후 한국에서 간호사로 일했던 경력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대로 인정해서 미국에서 간호사로 일하는데 반영을 해준다. 그리고 널스프랙티셔너(NP)나 마취전문간호사(CRNA) 등의 석사 및 박사학위를 딴 경우에는 전문가로서 새로운 경력과 미래를 만들어갈 수도 있기에 여전히 미국에서 더 좋은 대우와 보람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여러 이유로 한국에서 소위 빅 5 병원에서 수년간 간호사를 했음에도 그 환경에만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 멋진 간호사들이 많다. 차별을 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아는 사람들은 아는 이야기가 있다. 빅 5에서는 간호사들을 아주 고르고 골라서 특출 난 사람들만 뽑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 조건에 맞추기 위해 고시 준비하듯 노력한 간호사들이 뭐가 부족해서 해외로 나가려 하는지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가 될 듯하다. 그래서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업그레이드하고 더욱 멋진 인생을 살고자 노력하는 20대와 30대 초반인, 내 눈에는 아직 아기 같은 선생님들이 당찬 계획을 하고 도전하는 것을 보면 무척 멋져 보이기도 한다. 나는 그 나이에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한국에서도 괜찮은 수준의 급여와 여가생활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또는 가족들이 모두 한국에 살고 있음에도 왜 미국을 꿈꾸는 것일까? 생각해 볼 일이다.


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는 분명 미국에 살고 있는 나의 환경을 부러워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나 또한 나보다 먼저 이 길을 온 사람들을 보며 용기를 내기도 했지만 여기 오기까지 먼저 이민을 간 간호사들을 많이 부러워했다. 내가 그 자리에 있게 되면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 길을 선택하고 오는 동안 어느 누구도 쉬운 방법이 따로 있거나 남들은 다 해도 나는 안 해도 되는 일 따위가 없기에 모두들 체력도 지치고 심력도 소비하는 시간을 다 경험하게 되며 이곳에 와서도 한동안은 꽃길보다는 눈물바람을 훔치는 기간이 있다는 것을 미리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니 부러운 마음은 내려놓고 부러워하는 대상자체를 그저 나의 미래의 목표라 여기고 나만의 결과를 충족하기 위해서 이용하시기를 방법으로 사용하시길 바란다.


방향이 올바르면 속도는 각자의 몫이다. 남보다 빨랐다고 우쭐될 일이 되지도 않고, 느리다고 해서 내가 부족한 사람인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가장 맞는 속도로 목표를 바라보며 방황하지 않고 꾸준히 걷다 보면, 어느새 내가 생각지도 못한 곳에 도착해서 뒤를 돌아보며 보람과 뿌듯함을 느낄 시간이 온다. 그리고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나 자신만의 길을 가는 것은 이후 미국에서의 삶에서도 매우 좋은 연습이 된다.


결국 하고 싶은 말은 이렇다. 무엇을 다짐하든 계획하든 도전하든 그 끝은 결국 나를 위한 길이어야 한다는 것.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인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이어서 시작하는 것인지, 그 목표가 나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것인지 진지하고 시간을 들여 찬찬히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처음엔 별 뜻이 없다가도 대의가 생기는 일이 있기도 하지만, 미국에 간호사로 이민을 오는 일은 결코 쉽지도 짧지도 않은 과정이기에 분명 이런 시간은 도움이 된다. 나만해도 처음 마음을 먹었을 때로부터 실제 미국도착까지 거의 10년이 걸렸다. 다행히 꿈을 이뤘고 앞으로도 나를 위해 더 많은 꿈을 계획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도 그리고 미래도 만족할 거라 믿는다. 나와 같은 꿈을 가진 분들이 계시다면 꼭 이 글을 읽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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