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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잼 매니저 Nov 24. 2021

다시, 다시, 또다시

 아빠가 떠난 지 2년이 흘렀다. 슬픔이 조금이라도 덜어질까 이러저러한 것들을 하고 있음에도, 나는 아직 슬픔과 무기력 그리고 회한과 치고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두들겨 맞고 맥없이 쓰러질 때가 있는가 하면, 다 때려눕히고는 이런 감정들의 존재를 잊은 것처럼 씩씩하게 살아가기도 한다. 허나, 그것과는 별개로 아빠를 생각하면 여전히 가슴이 먹먹해지는 슬픔이 찾아오고, 종종 무기력증에 시달리며, 잠이 안 오는 밤이면 지난 후회스러운 말과 행동에 더욱 잠을 이루지 못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살아가고 있고,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면서, 살아내고 있다. 왜, 그리고 어떻게라는 의문을 항상 품은 채로, 아빠가 그렇게 조금이라도 더 살아내고 싶어 했던 그 생을.






   

 어둡고 축축한 동굴 속에 틀어박혀선 버거운 감정들을 게워냈다. 사람의 온기가 그리워 무릎을 꼭 그러안은 채로. 무력하고 무기력한 시간이었다. 동시에, 아슬아슬하고 조마조마한 시간이었다.








아슬아슬


 어렵게 쌓아 올린 내가 다시 무너지려 하고 있다. 고마운 한 친구가 슬픔 이외의 감정을 다시 느끼게 해 주고, 삶에 대한 열정과 의지를 갖게 해 주었는데, 그것들이 스러지려 한다. 상실. 나는 이 단어가 너무 두렵다. 무섭다. 나를 찾아오지 않기를 바란다. 다시 허무에 빠져 발버둥 치다 가라앉아 시간이 가기를, 누군가 손을 내밀어 주기를, 글에 끝없이 감정을 토해내기를 반복하는 것이 무섭다. 이번엔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 얼마나 더 토해내야 할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지치고 맥이 풀린다. 

 할아버지가 아프다. 많이 아프다. 그 누구보다 건강했던 할아버지가, 100세는 거뜬히 살 것이라고 모든 사람이 장담했던 그 할아버지가, 갑자기 밥을 먹지 못 하고 가래를 계속해서 뱉어내고 곧 죽을 사람처럼 소리를 쥐어짜 내 말한다. 할아버지가 없으면, 친가에 남자는 나 혼자 남는다. 무겁다. 짓눌려 터져 버릴 것만 같다. 아니, 그냥 시원하게 터져버렸으면 좋겠다. 터질 듯 말 듯 터질 듯 말 듯 아슬아슬한 이 느낌이 너무나 싫다. 할아버지는 못난 자식들의 못난 행동들을 보며 풀이 죽은 목소리로 벌을 받는 거야, 베트남에서 사람을 너무 많이 죽여서, 벌을 받는 거야, 하고 이야기했다. 아니, 벌은 내가 받고 있어요, 할아버지. 떠나는 사람은 떠나면 그만이지만, 남은 사람은요. 남은 사람의 삶은요. 남은 사람의 괴로움은요. 아빠도 그렇고 왜 그렇게들 무책임해요. 남자잖아요. 가장이잖아요. 저도 더 어리광 피우고 이쁨 받고 싶어요. 찾아갈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 있으면 해요. 내가 얼마나 나이를 먹었건 손주는 손주지, 자식은 자식이지 하면서 아이처럼 바라봐줄 수 있는 어른이 필요해요. 

 신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묻고 싶다. 할아버지가 벌을 받아야만 한다면, 왜 내가 고통받아야 하는지. 왜 나를 데려가지 않고 아빠를 데려가고, 할아버지를 데려가려 하는지. 손자가 고통받는 모습을 할아버지가 보는 게 더 괴로운 일이어서 나를 고통 속에 빠트리는 것이라면 당신은 정말 지긋지긋하게 지독한 심보를 갖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내가 많은 사람들을 상처 줬기 때문에 받는 벌이라면, 묻고 싶다. 원래 세상은 불공평하고, 비대칭이지 않느냐고. 나보다 더한 놈들도 있지 않느냐고. 내가 알고 있는 그 사람들은 왜 대체 이런 괴로움을 알지 않고 살아가느냐고 묻고 싶다. 간신히 동아줄을 붙잡아 살아가는 내게, 대체 왜 동아줄까지 뺏어가려 하느냐고, 이건 해도 정말 너무 하지 않느냐고, 나를 좀 그만 괴롭혀 달라고 애원하고 싶다.     



어둠 속에서, 무력하게, 응어리진 무언가를, 토해낸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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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가 되면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가을 겨울이 누가 보채지 않아도 찾아오는 것처럼, 캄캄한 동굴 속에 잔뜩 웅크린 채 널브러져 있던 나는 어느 순간 일어나, 빛이 흘러 들어오는 곳을 향해 걸어 나갔다. 동굴 밖을 향해 한 걸음, 따스한 햇살 아래로 한 걸음, 밝고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려 또 한 걸음. 삶과 삶이 모여있는 세계 속으로 내 삶을 밀어 넣기 위해, 다시 다시 또다시. 

    

 주위를 둘러보니 또래 친구들은 일을 구하기 위한 준비를 하거나, 일을 구하고 있거나, 일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그들을 따라 일을 구하기 위한 준비를 했고, 일을 구하는 과정을 거쳐, 일을 시작했다. 쳇바퀴 도는 지난한 반복적인 삶에 대한 보상으로 꽂히는 적지만 정기적인 돈은, 내게 규칙적이고 안정감 있는 삶을 주었고, 그 얕게 박힌 울타리 안의 작은 평화 속에서 오래된 친구들을 차례로 만날 수 있었다. 먼지 쌓인 기억들로 웃고 떠들 수 있는, 서로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여 만났을 때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이들. 나의 시계가 멈춰있는 동안에도, 친구들의 시간은 젊음의 에너지로 분명하고 착실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움직임은 쌓이고 쌓여 무언가를 만들어냈고, 그 무언가는 내게 무척 근사하게만 보였다. 그래서 나도 그들처럼, 착실하게 무언가를 쌓아 올려 근사한 어떤 것을 만들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운동을 시작으로, 오래된 사람들과는 새로운 기억들을, 낯선 이들과는 새로운 관계를 쌓아가고 있다. 또, 한동안 쓸 수 없었던 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고, 멈춰있는 동안 채우지 못한 것들을 채우려 부단히 살아가고 있다. 여러 다른 삶들 속으로 비집고 들어가 아등바등. 쉽지 않지만, 정말 쉽지 않지만, 조금씩이나마 쌓여 가고 있는 것들을 보면 계속해서 이어나갈 수 있다. 잠시 쉬었다가도 다시, 멈췄다가도 다시, 딴 길로 샜다가도 되돌아 와선 또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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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아빠 나 잘하고 있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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