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잼 매니저 Oct 20. 2022

미움의 윤리학


 평생 용서하지 않을 사람들이 있다. (그럴 일도 없을테지만)사과 받고 싶지도 않고, 죽을 때까지 저주하고 미워할 사람들. 그들을 떠올릴 때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증오의 마음이 들끓으면서 어떠한 방식으로든 그네들의 삶을 망가뜨리고 싶다고, 그들이 행복과는 먼 삶을 보냈으면 한다고, 간절하게 바라게 된다. 모든 일엔 나름의 이유와 사정이 있을 거라 짐작하고 사는 나이지만, 그 어떤 사정과 나름의 이유가 있더라도 그들을 용서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나의 삶을 망가뜨리지 않는 선에서, 죽을 때까지 그들의 불행을 바라며 언젠가 있을지도 모를 달콤한 복수의 순간을 기다리며 살 것이다.


-


요즘 분야를 막론하고 하루 걸러 쏟아져 나오는 과거 사건들에 대한 기사를 보면 여러 생각이 든다.


인정하거나, 부정하다가 인정하거나, 끝까지 부정하는 가해자.


짧게는 몇 년, 길게는 수십 년을 잊히지 않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피해자.


그리고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이고,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인 얽히고설킨 당사자들.


가해자가 몸 담은 분야에서 성공하지 않았다면 논란이 되었을까란 생각과 어떻게 저런 일을 저지르고도 그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었을까란 의문, 그리고 수면 위로 떠오르지조차 않았을 더 한 사건들에 대한 막연한 예측. 믿기 힘든 진실, 무책임한 거짓, 엇갈리거나 왜곡된 기억, 언어의 전달 과정에서 나오는 오해, 속셈을 알 수 없는 의도, 그리고 쌓아 올린 것을 잃지 않기 위한 발버둥….


-


 내게 있어 평생 용서 안 할 사람들도 분명 누군가에겐 소중한 사람일 것이고, 누군가를 위해주는 다정하고 좋은 사람일 것이다. 관계는 언제나 상대적이니까.


 말기 암을 투병 중인 아버지 병원 예약으로 휴가를 변경해야 될 것 같다고 말하는 내게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라고 했던 인사과장이나,


 이 씨발 새끼야, 너 같은 새끼가 어쩌고 저쩌고 본인의 분노에 못 이겨 내게 쌍욕을 내뱉던 전 직장 상사나,


 자신의 자식들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그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포기했으며, 얼마만큼 치열하게 살아가는지 내게 이야기했었다. 나의 아버지가 그러했듯, 그들도 그들의 자식들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한 채 고군분투 살아갔다. 나를 위해 그렇게 고군분투했던 아버지에 대한 회한이 있는 나는, 그래서 그들을 존중했다. 그리고 경외심을 가졌다. 가족을 위해 발버둥 치는 인간에 대한 존중을 담은 경외심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치열함 속에서 다른 누군가의 자식에겐 잊히지 않을 상처와 분노, 그리고 무력함을 주었다.


갈기갈기 찢긴 상처에서 터져 나온 분노가 눈에서 무력하게 흘러내리도록 만들었다.


-


온갖 논란과 사건사고에도 불구하고, 잘 지내는 사람들이 있다. 내 주변은 물론이고, 주위 사람의 곁에도, TV 속에도, 그들은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다.


그에 반해, 잘못한 것도 없이 사라지는 이들도 있다.


궁금하다. 사라져야 할 사람들이 남아있고, 남아야 할 사람들이 사라지는 이유가. 사회적인 영향력 혹은 그 사람의 필요나 관계 때문일까? 단지 뻔뻔함의 정도? 이게 아니라면, 죄책감을 느끼느냐 못 느끼느냐의 차이인가? 그저 삶에 대한 집념이 만들어내는 결과? 이 모든 것도 아니라면 단순히 여러 가지 상황이 만들어내는 흐름?


알 수 없다.


어째서인지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아지고, 판단 내리기가 더욱 힘들어진다.



종종 어떤 태도로 다른 이를 향한 분노를 마주해야 되는지 고민스러울 때가 있다. 공감되고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 한 부분도 있다. 머리로는 같이 분노해야 된다 느끼지만 분노가 일지 않을 때가 있고, 분노가 일지만 왜 분노하는지 명확히 알 수 없을 때도 있다.


반대로 내 분노를 듣는 이가 이해하지 못 하고 공감하지 못 한다고 느낄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내가 왜 그렇게까지 분노하는지, 왜 그렇게 그들을 미워하고 용서하지 않는지 알 수 없어 난처하다는 표정이 그들의 얼굴 위를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때때론, 나 역시 다른 누군가의 미움의 대상이며 용서받을 수 없는 존재라고 자각하곤 한다. 나에 대한 분노 역시 받아들일 수 있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받아들일 수 없이 부당하다고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



알 수 없는 인간들이 모여 사는 사회와 그 안에서 벌어지는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들, 그리고 그 속에서 미워하고 미움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들.


작가의 이전글 그런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