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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준 Oct 22. 2021

누군가의 행운은 누군가의 배려다

울릉도 백패킹

일년이 지나 다시 나리분지를 찾았다. 지난번에는 바람을 피해 별 기대없이 들어온 곳이었지만 이번에는 울릉도 여행의 첫번째 목적지로 생각했을 만큼 인상 깊었던 곳이었다. 나리상회에 배낭을 풀고 캔맥주 하나를 마셨다. 사장님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 듯했지만 어쩐지 한번 본 것 같은 얼굴이라며 반가워해 주셨다.


나리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나리상회에 들렀다. 버스 시간을 기다리며 사장님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야영하기 좋은 바닷가쪽 마을은 어디인지 여쭤봤다. 그 별것 아닌 질문 하나가 파문을 일으키게 될 줄은 몰랐다. 나라상회 사장님과 사장님의 남편, 그리고 버스를 기다리던 소방관 아저씨의 설왕설래가 시작됐다. 내려 가서 조금만 걸으면 박지로 삼을 만한 곳이 한군데 있다, 지금 거기 가면 공사중이라 볼품없다, 독도에 들어갈 건지 안 들어갈 건지에 따라서 장소를 정해야 한다, 괜한 질문을 했나 싶었다.

 

가고 싶은 곳 한 군데만 말해봐요.”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사장님이 말했다. 데려다 주시려나 보다. 저 때문에 그런거면 안 그러셔도 된다고 말씀드렸지만, 사장님은 오랜만에 바람도 좀 쐐고 사진도 찍을 겸 내려갔다 오고 싶다고 하셨다. 학포야영장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작년에 찾아갔을 때는 코로나로 문을 닫은 상태였지만 올해는 선착순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인터넷 후기를 봤다. 물론 대중교통을 이용한 도보 여행자(그것도 늦잠을 잔)가 자리를 노려보기에는 어림도 없는 시간이긴 했지만.

 

도착했을 때 야영장은 이미 만석이었다. 새벽부터 와서 대기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다. 눈앞에 절경이 펼쳐져 있었지만 아쉬움을 뒤로한채 다른 곳으로 가야만 했다. 난처해하는 내게 사장님은 자신이 아는 좋은 장소가 있는데 그곳으로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아는 사람들만 찾는 작은 해변이었다. 울릉도가 아닌 듯 잔잔한 바다가 인상적인 곳. 사장님은 바닷가 사진을 몇 장 찍었다. 그리고 내 사진도 몇 장 찍어주시고는 말했다. 저번에 분지 사진 찍어줘서 고마웠어요. 그때 그 카톡으로 보내면 되죠?


기억하고 계셨구나. 

어쩌면 행운이란 건 하늘에서 뚝 하고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작고 따뜻한 배려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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