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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준 Jun 09. 2022

섬에는 섬의 시간이 흐른다 2

과정에서 얻어지는 즐거움

섬 여행의 시작은 대부분 이렇다. 배에서 내려 부랴부랴 버스정류장으로 달려가 시간표를 확인하며 초조해한다. 시간을 확인하고도 이쪽에서 타는 게 맞는지 저쪽에서 타는 게 맞는지 끊임없이 불안해한다. 섬마을 버스는 하루에 몇 대 밖에 없는 경우가 많은데 이걸 한번 놓치면 일정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루는 어떤 섬에서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종종거리고 있는데 마침 정류장에 오신 어르신께 버스가 언제오는지 물었고 돌아오는 대답이 가히 충격적이었다.


기다리다 보면 오겠지.


뭔가 한대 얻어 맞은 기분이었다. 집에서 지하철역까지 걸리는 시간, 8호선에서 5호선으로, 5호선에서 분당선으로 갈아타는데 걸리는 시간. 분단위로 끊어서 계산을 하고 딱딱 맞아 떨어지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듯 수많은 사람들과 우르르 달려가는 일상을 살던 내게는 충격이었다.


거기는 꼭 가봐야 해. 일몰을 보려면 이 시간까지는 거기 도착해야 해. 늦게 가면 자리가 없을지도 몰라. 시간이 간당간당해. 꾸물거리면 문 닫을지도 몰라. 섬에서도 도시에서와 다를 바 없이 보내던 나에게 기다리다 보면 온다 는 당연한 말이 왜이리 낯설게 느껴졌는지.


이제는 섬을 여행할 때 버스 시간표를 슥 훑어보고 글렀다 생각되면 그냥 걷는다. 버스로 십분이면 충분하지만 걸어서도 한 시간 정도면 도착하는 거리를 걸으며 길에서 시간을 마냥 허비하는 일이 즐겁다. 계획한 장소에 시간 안에 도착하지 못해서 이 곳을 찾은 목적을 이루지 못할지라도 분명 가치가 있는 일이고 결과치가 아닌 과정에서 얻어지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일이다. 사실 대부분의 여행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은 유명한 장소의 멋진 풍경이라기 보다는 걷다가 만난 개 한마리, 아스팔트 틈 사이로 비집고 나온 이름 모를 풀, 어부들의 까맣게 그을린 피부, 이름 모를 식당에서 적나라하게 쏟아지는 욕설 같은 것들. 계획대로 착착 진행됐다면 보지 못했을 수많은 풍경들이 소중하다.


새벽 두시 반. 이제 자면 출근까지 얼마나 잘 수 있을까 계산을 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섬에는 섬의 시간이 흐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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