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로 도망치던 날들

다시, 보통날

by 조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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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일로 도망치던 날들


돌이켜보면 언제나 도망치듯 쫓기는 삶이었다.

과제에, 시험에, 학점에, 스펙에, 취업에.


‘오늘을 살고 있으면서도 정말로 오늘을 살았던 적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끊임없이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했다. 내일은 늘 불확실했기에 오늘을 희생해 내일을 조금 더 선명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다들 그렇게 살고 있었고, 주변의 누구 하나 그런 삶에 대해 의문을 품은 사람은 없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 혼자만 제자리에 머물고 있을 수는 없었다. 늘 다음 기점을 향해 달렸다. 아니 도망쳤다. 남들 눈에는 성실하게 살아가는 모습으로 보였을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불안감에 쫓겨 오늘에서 내일로 도망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남들 따라 우르르 도망치다가 돌부리를 발견하지 못했다. 운이 없었다. 그뿐이었다. 땅바닥에 엎어져 저만치 앞서가는 사람들을 보며,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억울한 심정으로 통곡해봤자 들어주는 이 하나 없고, 일으켜주는 이 하나 없었다. 남들 눈엔 코미디였을 것이다. 본인 잘못으로 넘어져놓고 누굴 탓한다는 말인가. 나에게는 가혹한 운명의 장난이고 비극이지만,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자면 그저 수많은 낙오자 중 한 명일 뿐이었다.


그러니까 너무 의미를 부여하진 말자.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TV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건 사고에 지나지 않는 일이다. 그것이 나에게 일어난 것뿐이고, 나도 남들만큼 충분히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삶을 긍정하며 웃을지 어떨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인상 쓰고 투덜대다 침을 뱉으며 일어나는 쪽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어쨌든 비극의 주인공은 나만이 아니다. 정신 차리자, 그렇게 생각했다.


# 미친 소리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도 열정을 강요하는 사회였다. 목숨 걸고 무언가를 해본 적이 있는지, 무언가에 미친듯이 몰입해본 경험이 있는지, 뭔가 하나를 해도 끝장을 봐야 한다는 생각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었다.

미친듯이 뭔가를 해보지 않은 사람은 도전정신이 부족한 사람이고, 무엇이 됐든 열심히 하지 않으면 마치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과 같다는 그 생각에 언제부터인가 나도 조금씩 물들어갔다. 목숨 한번 제대로 걸어보지 못한 인생을 청춘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하며, 목숨을 걸 무언가를 계속 찾아 다녔던 것 같다. 그래서 암벽 등반에 더 매달렸는지도 모르겠다. 아무것도 아닌 자신의 존재를, 평범함을 비범함으로 포장하기 위해서 말이다.


떳떳하다고 생각했다. 관용적 의미의 ‘목숨을 걸다’가 아닌, 진짜 목숨을 걸고 절벽을 기어올랐으니 말이다. 결과는 어찌 됐든 ‘나는 그래도 한번 목숨을 걸어본 젊음이다’라고 자위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치기 어렸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그리 대단한 열정이 있던 것도 아니다. 그냥 강박에 의해 시작했다가 어쩌다 보니 멈출 수 없게 되었고, 그러던 중 원치 않는 사고를 당하게 됐을 뿐이다.


직장인이 된 요즘, 누군가 과로사했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과연 목숨을 걸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는가?’라는 의문이 든다. 아무리 일에 대한 열정을 운운한다고 하더라도 세상에 목숨 걸고 할 만한 그런 일은 없다. 아무리 위대한 밥벌이일지라도 그 정도로 위대하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달려든다. 회사는 전쟁터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죽을 각오로 덤빈다.

물론 그 사람도 죽을 정도까지 일에 열을 올리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누구나 그렇듯이 내일을 위해 오늘을 조금 희생한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 거라고 막연하게 기대했을 것이다.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기에는 이미 가속이 붙어 있었고, 어쩐지 뒤처진다는 생각에 브레이크를 잡기가 머뭇거려졌을 것이다.


요즘 다시 스스로를 점점 몰아붙이고 있다. 별것도 아닌 사소한 일에 온 힘을 다해 달려든다. 그렇게 호되게 당하고도 아직도 남들보다 나은 특별한 삶을 위해 오늘의 나를 희생한다. 다만 항상 정신을 차리고, 너무 속도가 붙지 않도록 애써야겠다는 생각. 잠깐씩 쉬어가면서 멈춰 서는 법을 잊지 말자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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