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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러쉬 Jul 18. 2024

직장인의 3대 욕구 끊기

나의 우울증(feat. 공황, 불면증, 불안장애...) 치료기 - 4

당시 심한 알콜의존증에서 극복했으며, 매일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잠이 깨지 않을 정도였다.

항우울제, 수면제, 공황장애약은 모두 알코올/카페인과 상극이다.

직장인의 3대 욕구는(우스갯소리로) 카페인, 니코틴, 알코올이라던데 나는 이미 끊은 니코틴을 제외하고도 두 가지나 더 끊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물론 끊지 않아도 치료는 지속될 수 있으나... 나는 당시 굉장히 간절했다.

그래서 커피와 술을 끊었다. 


술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치료시작 시기에서 2년 반 전 주변인의 좋지 못한 소식을 들었고, 그에 큰 영향을 받아 그냥 애주가 정도로 퉁 칠 수 있던 음주 횟수는 누가 봐도 알콜의존증 수준으로 늘어갔다. 술을 마시는 방식도 전형적인 알콜의존증이었다. 


1) 레트로트 국 / 라면 / 국밥 중 1개를 반주 메뉴로 선택하고 배달주문을 한 후 기다리거나 끓기를 기다리며 빈 속에 마신다.

2) 안주는 술의 쓴 맛과 비린 냄새를 가릴 정도로 먹는다. (소주 2~3병, 또는 그 이상에 1인분 미만의 음식-안주가 늘 남았다)

3) 아이스크림에 양주를 부어먹거나 포트와인 한 잔 정도로 마무리한다

4) 3에서 만족스럽지 않을 경우 양주 온더락을 먹는다. (앉은자리에서 1병까지 마셔본 적 있음)


위 같은 루틴을 금/토+평일(비정기적)에 반복해 주말 내내 술에 절어 있다 평일에 출근하는 생활을 몇 달 반복했다. 적어 보니 더 처참한 듯...

아무튼, 치료 시기는 저 때부터 2년 반이 지나있었고 혼자 마시는 술을 여전히 좋아하지만 크게 과음하지는 않는, 상대적으로 애주가 정도로 보이는 음주생활을 하고 있었다. 


술을 끊기 시작하던 7월, 여름이라 당시 독한 술은 잘 마시지 않고 맥주나 하이볼 같은 탄산&저도수 주류를 즐기던 때라 탄산수와 무알콜맥주로 대신해 보기로 했다.

탄산수는 그게 아니더라도 음료처럼 마시고 있던 참이라 전혀 거부감이 없었고, 무알콜 맥주도 뭐 나쁘진 않았다. 결국엔 탄산수만 마시게 됐지만.


강경 아아파 그게 나야..

커피는 어려웠다.

일단 잠이 안 깼다. 수면제를 먹고 잤기 때문에 초반엔 오전은 겨우 깨어있는 정도였던 것 같다.

그래서 그만둘까 해보았지만, 약의 부작용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강제로 끊게 됐다.


당시 처방으로 아침에는 푸록틴캡슐과 아리피졸정, 소화개선을 위한 하이라제정을 먹었는데 내게 푸록틴캡슐의 부작용이 심하게 나타났다.

두근거림과 어지러움, 메스꺼움, 흐린 시야와 같은 증상이 나타났으며 이는 커피를 마시면 더욱 심하게 느껴졌다. 커피를 끊고 있다 관성적으로 회사에서 내린 커피를 마시며 알게 되었다... :)

이 부작용은 세 달에 걸쳐 서서히 나아졌으며, 결과적으로 몇 달간 커피를 완전히 끊게 도와주었다.

완전 럭키러쉬자나~..


커피를 대신해선 각종 차를 마셨다. 보리차나 녹차, 허브차와 같이 카페인이 없거나 있어도 커피보다 적거나 몸에서의 반응이 미미한 것들을 마셨다. 잠을 깨기 위해 특히 히비스커스 차를 많이 마셨다. 

TMI로- 이때 100 티백 정도가 든 패키지를 샀는데, 히비스커스가 몸에 좋다는 얘기를 들어 약처럼 먹으려고 블렌딩이 되지 않은 100% 히비스커스를 샀고 어쩐지 한약 향이 났다. 다들 참고해서 후회하지 마시길...


결국 반년 이후에는 커피도 술도 다 마시게 됐지만 끊기 전보다 양은 아주 줄었다.

현재는 술은 외출이나 누군가와의 식사자리가 아니라면 마시지 않고, 커피는 매일 마시지 않으며 마시는 날도 한잔만 마신다.

술에 대해선 이 연재의 말미에 쓰겠지만, 우울증이 많이 호전되면서 자연스레 생각이 나지 않게 되었다. 나으면서 스스로에게 가장 놀랬던 것 중 하나다. 많이 마시진 않았지만 여전히 의존하고 있었던 걸까?


치료 초반, 이를 오랫동안 지속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별 것도 아닌 것들로 칭찬을 하곤 했다.

술과 커피를 마시지 않는 건 칭찬을 하기에 퍽 좋은 것들이었기에 치료 초반 귀찮음을 이겨내고 병원을 가는데 도움을 주었던 것 같다. 매일 스스로 속으로 '오늘도 커피 안 마시고 퇴근함ㅋ' 이런 뿌듯함을 느끼는 것도 나름의 재미였으며 커피와 술까지 끊어놓고 병원을 안 가는 멍청이짓을 하고 싶지 않았기에 꼬박꼬박 매주, 그리고 격주에 병원을 가게 만들었다.

혹 약을 먹는데 알코올과 카페인, 니코틴을 함께 취하고 있다면 점진적으로 줄여나가는 건 어떨까?

줄이는 것에 중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해낸 대견한 나(ㅋㅋ)에 집중하면 자기 효능감도 늘고 나름... 괜찮은 것 같다. 왠지 교훈을 주는 말미가 되었는데, 다음 글부터는 치료 중 인상 깊었던 순간들을 지난 일기를 보며 쓰지 않을까 싶다!


투비컨티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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