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야류 (東萊野遊) - 국립국악당 공연
지난 10월 29일(토)에 국립국악원에서 펼쳐진 국립부산국악원의 <동래야류> 공연 후기입니다
국가무형문화재인 '동래야류'를 새롭게 구성해 창작무용공연으로 선보인 것인데, 6월에 부산에서 첫 공연을 했다고 하며, '다양한 전통 공연 예술적 요소와 의미를 무용을 중심으로 새롭게 구성했다'는 평이 있었습니다.
'공연 예술적'이란 표현이 문맥상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되지 않다 보니 그것의 '요소'와 '의미'를 무용으로 새롭게 구성했다는 뭔가 초현실주의 스타일의 추상적인 공연 평에 호기심이 생긴 것 같습니다.
또한 한 평론가가 언론에 남긴 "전통의 대중화란 측면에서 보면 더할 나위 없는 유쾌한 해원의 춤판"이라는 글 역시 또 한 번 저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 같은데요 (해원은 아마도 '원통한 마음을 풀어준다'라는 解冤을 의미하셨겠죠)
왜냐하면, 동래야류란 원래 민중 놀이란 장르에 속하는 것인데 그런 마당놀이가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왔다는 것은 당연히 당시의 대중들에게 유쾌함과 통쾌함의 카타르시스를 전달했을 터이고, 그렇게 한 시대의 대중들에게 호응을 얻었던 문화가 그다음 세대에게도 즐거움을 주었기 때문에 대를 이어 전해지면서 전통이 되었을 텐데, 이런 대중의 사랑을 받던 전통문화를 지금에 와서 다시 '대중화하고자 한다는 측면'이라는 표현에 제 머릿속엔 형이상학적으로 피어오르는 새벽안개를 연상케 한 것입니다. (문장의 의미가 애매모호해서 저로 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는.....)
이런 궁금증을 안고 예술의 전당에 있는 국립국악원 예악당으로 향했습니다. 전형적인 한국의 가을 날씨답게 하늘도 파랗고 국립국악원 뒤로 조금씩 단풍이 들어가는 나무들의 다채로운 색상이 공연에 앞서 제 마음을 즐겁게 해 줍니다.
그렇게 공연장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고, 공연에 대한 기대보다는 호기심에 이끌려 온 터라 마음 편하게 공연의 시작을 기다리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불이 꺼지고 무대 위에 자리를 잡은 국악단의 연주가 시작되었는데, 공연이 진행되는 90여분의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습니다
오랜만에 너무나 즐거운 공연을 보게 된 것인데요, 한마디로 공연을 평하자면 100점 만점에 90점 이상을 주고 싶습니다.
각 장면마다 무대를 다양하게 점거한 각 무용수들의 개별적인 움직임들은 객석에서 바라보면 하나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유기적으로 생명력을 갖기 시작하는데, 이렇게 한 부분만을 확대하면 자연스러우면서 창의적인 움직임이 전체라는 계(界 - 무대 위의 세계)로 확장된 시선 속에서는 총체적으로 매우 단단하게 잘 짜인 모습으로 탄탄하게 장면 전개를 진행시키고 있다는 확신을 전해 주었습니다.
무대 뒤편에 자리 잡은 악단 역시 각 장면의 흐름에 경쾌한 리듬을 더해주고 있더군요.
전 무용을 '순간'이라는 시간적 요소가 포함된 설치 (또는 거대한 조각) 작품으로 바라보곤 합니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연속적인 무용극의 장면들을 아주 미세한 시간으로 나누어 매 순간의 이미지들을 비연속적인 이미지로 변환해서 확대해 본다면 그 하나하나의 시각적 이미지는 입체적인 조형 예술의 모습을 지니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마치 수학의 미분(微分)과 적분(積分)처럼 연속적인 극은 각 장면으로 그리고 각 장면들은 다시 총체적인 모습으로 분해하고 재결합된다는 것이지요.
이런 관점에서 이번 공연을 바라본다면, 매 순간 정지된 이미지로 다가오는 무대 위의 장면들은 아주 아름다웠고, 그것이 모두 모인 총체적인 완성도도 매우 높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렇게 공연을 보고 나니, 드디어 저명한(?) 평론가분들이 전달하고자 했던 깊은 뜻(?)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더군요.
그러니까 아마도 이 공연을 부산에서 보신 분들이 받았던 느낌은
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으셨던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물론 아직도 부족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각 출연자에게 요구되는 동작들이 요구하는 육체적 한계를 넘는 연기(춤)를 보여주기에는 아직 전체 단원들의 경험이 부족해 보입니다. 빠른 무대 전환의 장면들에서는 세밀한 표현이 종종 사라져 버리고, 음악 역시 너무나 극단적인 감정 유도를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또한 극장의 설비 수준이 공연 수준을 못 따라오는 부분도 많이 아쉬웠는데, 음향이나 조명 등 공연에서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할 부분들이 많이 보강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실로 오랜만에 찾은 예약당인데, 이렇게 좋은 우리의 전통문화를 보게 되어(알게 되어) 뿌듯했지만 동시에 만 원짜리 (학생이나 경로석등 할인을 받게 되면 몇 천 원 수준의) 한 장 밖에 안 되는 가격임에도 이틀 중 마지막 날 (토요일이라서 그랬는지) 공연이 진행되는 예악당 관객석은 빈자리가 너무나 많이 눈에 띄었고, 그나마 채워진 자리마저도 공연 관계자(가족 친지 및 친구들)가 대부분인 우리 공연 예술의 안타까운 현실을 재발견하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K-컬처가 커다란 파도를 만들어 나가는 이 순간, 이런 좋은 작품들이 제대로 소비되지 못한다면 매우 안타까울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2030년 부산 세계 박람회를 위해 부산시나 많은 기업체들이 많은 예산을 들여 우리 문화를 홍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개인적인 바람은 <동래야류>가 내년 파리에서 멋지게 공연되어서 문화 강국이라고 으시대는 유럽 사람들에게 진정한 한국의 문화를 보여줄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