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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수의 왕 Nov 17. 2019

Orange is the new 큐브릭 2

시계태엽 오렌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시계태엽 오렌지'를 2회에 나눠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1편에 보여드렸던 'Home'장면은 요즘으로 치자면 한참 유행했던 아이들 노래 '아기 상어 뚜루루뚜르 귀여운 뚜루루뚜르' 같은 사랑스럽고 귀여운 노래를 부르며, 그 즐거운 리듬에 맞춰서 약자에게 눈 뜨고 보기 힘든 폭력을 행사하는 마약장이들에 관한 모습이었습니다.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의 엽기적인 장면은, 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이번 편은 알렉스와 그의 일당들이 즐겨 찾는 'Korova Milk bar'에서 시작할까 합니다.


스탠리 큐브릭은 SF가 스토리의 중심이 되는 이 소설을 영화화 하면서 가까운 미래의 세계를 암시하기 위한 기호로 'Home'의 세트에 당시 새롭게 등장한 디자이너의 미래지향적인 디자인 언어가 사용된 새로운 시제품을 등장시켰는데, 이제 소개해 드릴 'Korova Milk Bar'의 세트에도 새로운 시대상을 반영하는 혁명적인 디자인의 가구가 등장합니다.

 


이곳은 마약 음료를 파는 속칭 범죄의 온상과 같은 곳입니다. 미성년자인 주인공과 그의 일당들이 드나들어야 하기 때문에 술이 아닌 우유에 마약을 섞은 음료를 파는 곳으로 설정을 했다고 합니다.


블랙 벽과 바닥을 배경으로 여성 인체를 본떠 만든 화이트 가구들이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강하게 주고 있습니다.



주인공들이 즐겨 찾는 Milkbar안의 가구들은 이미지에서 보시는 것처럼 여성의 누드를 모티브로 당시 신소재로 각광받던 파이버글라스를 이용해 제작한 가구들입니다.


사실, 이 가구들 아이디어의 원형은 영국의 Pop artist,  Allen Jones의 1970년작인 Hatstand, table and chair에서 빌려 온 것입니다.



 


이 조각 작품들이 창작된 이래 Allen Jones는 여성성에 관한 많은 논란을 불러왔습니다. 여성계와 보수적인 예술계는 이 작품에 대해 끊임없는 비평을 가했는데, 60년대에 영국에서 출간된 당시로서는 새로운 페미니즘적 물결을 대변하던 잡지 Spare Rib의 Laura Mulvey는 이 조각품이 '잠재적 거세 불안에서 영감을 받았다'라고 주장했으며, 다수의 전시회에서 페미니스트들의 물리적인 공격에 수난을 당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작가 스스로는 '그것은 부수적 피해이다. 나는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예술적 가치의 규범을 부수고 싶었다.  나는 그것을 할 수 있는 완벽한 이미지를 발견했다. 그리고 이 작품들이 무자비한 페미니즘의 도래와 일치하는 것은 역사상 우연이다' 라며 항변하고 있습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사실 이 원작을 그대로 영화에 사용하고 싶었지만 작가에게 거절당하고 어쩔 수 없이 아이디어 만을 차용해서 영화에 사용될 가구를 제작하게 됩니다.


60년대와 70년대를 관통하던 성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당시 대중문화 속에 소비되고 있는 섹슈얼리티를 포착한 팝 아티스트 알렌 존스의 이 작품들은 스탠리 큐브릭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고, 어떻게 보면  알렌 존스의 작품보다 오히려 더 성적으로 파격적이었던 영화에 등장하는 의자와 오브제들은 주인공 알렉스와 그의 일당이 가지고 있는 여성과 당시 사회에 대한 생각을 암시하는 또 다른 기호라고 할 수 있으며, 영화 전반에 걸쳐 그들이 저지르는 여러 악행을  관객들에게 이미지적으로 강조해 주는 소구점 들이라 생각됩니다.


영화의 다른 장면인 cat woman's room에서도 도발적인 pop art 조각품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네덜란드 Pop artist 인 Herman Makkink의 'Rocking Machine'입니다.


큐브릭 감독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데요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실제라고 보여 왔던 많은 것들은 사실 환상 일뿐이다' ,  그가 이런 키치적인 팝아트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자신이 생각하는,  '예술이란 개념이 가지고 있는 사회의 역기능을 환기시키는 일종의 도발적인 시도'로 해석하는 비평가도 많습니다.


즉 막연히 예술이란 것을 대단한 가치를 지닌 것이라고 믿고 수용해버리는 대중의 수동적인 태도에 대한 충격요법이라고 할까요?


여러분이 밀크 바에 가게 된다면 이 가구들이 여러분에게는  과연 어떤 이미지로 다가오게 될지 상상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영화 감상 방법이 될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는 주인공 Alex의 방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방에서도 'Milk Bar'의 장면에서 논란이 많은 예술작품을 차용함으로써 보여주려고 했던 일반 대중들의 태도에 대한 비평, 즉 '대단하다고 막연하게 믿고 있었던 것들'의 허구성에 대한 독특한 감독의 취향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침대 위에 덮여 있는 독특한 디자인의 침구가 눈에 들어옵니다. 육각형 형태를 이루고 있는 뾰족한 모양의 원뿔들이 연결된 침구의 디자인은 '남성 성기'와 주인공의 '공격성'을 암시하는 도구입니다. 미성숙하고 안정되지  않는 느낌을 주는 노란색과 경고의 의미를 나타내는 오렌지의 투톤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창에는 커다란 베토벤의 초상화가 걸려 있습니다. 그의 음악을 잘 모르는 대중에게도 베토벤은 이제 음악의 신이 된 느낌입니다. 영화에서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은 주인공의 특이함을 나타내면서 동시에 그가 사회와 격리되는 사운드적인 효과의 기호로 사용되고 있는데요, 이렇게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을 좋아하는 주인공의 거주지역은 런던의 하층민 구역이지만, 그가 사용하는 턴테이블은 오디오 역사에 기록될 어마어마한 제품이 등장합니다.



JA Michell Transcriptor Hydraulic Reference이라는 모델은 당시 턴테이블이란 장비를 향한 오디오 업계의 광적인 시도를 잘 보여주는 기념비적인 제품입니다.


LP라 불리는 음반이 돌아가는 원형 테이블 위에 놓여있고, 그 LP판에 새겨져 있는 미세한 골 위를 가느다란 바늘이 스쳐 지나가며, 미세하게 새겨진 틈의 차이를 떨림을 통해서 읽어내는 턴테이블의 원리는  상상을 초월하는 정밀 공학적 접근이 가능한 장비였고, 이런 기계적 유혹 덕분에 아직도 우리 곁에는 많은 턴테이블 덕후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 제품에 Hydraulic이란 명칭은 돌아가는 회전판 하단에 액상 실리콘이 들어있어서 회전 시 발생하는 진동들을 줄여주는 역할을 하는 장치에서 유래됩니다.


이 모델은 이런 메커니즘적인 특징 외에도 장치가 가지고 있는 기능을 최적화하기 위해 시도된 디자인이 현재 기준으로 보아도 상당히 Modern하고 독특하기 때문에 MOMA에 소장되어 있기도 합니다.


또한 과거의 클래식 팬들이라면 광적으로 열광했을 법한 이미지 역시 재현해 내고 있는데요, 집으로 돌아온 알렉스가 음악을 듣기 위해 노란색 레이블의 그라모폰에서 출시된 베토벤 9번 교향곡을 카세트 데크에 집어넣는 순간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클래식 음반계를 휩쓸었던 그라모폰의 노란색 로고는 당시에 이 브랜드의 음반 또는 카세트테이프를 사는 사람으로 하여금 나는 고급문화를 소비하는 사람이라는 위선을 만족시키는 주요 상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치 티파니의 하늘색(또는 민트색) 박스가 여성들의 허영과 위선을 만족시켜주는 것과 동일한 효과입니다.



그렇기에 클로즈업된 카세트테이프의 노란색 레이블은 허상으로 포장된 인간의 위선과 허영 안에 숨어 있는 비틀어진 비이성을 알렉스의 외부에서의 행동과 그가  방 안에서 음악을 트는 행동을 대비하여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이 방안에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영화에 사용된 포맷은 일반 카세트테이프가 아닌 미니 카세트테이프라는 특수한 형태였는데, 이 포맷은 녹음기용으로만 사용되었고, 음악용으로 음반사에서 정식으로 출시된 제품은 없었다고 합니다.


과연 이것도 대중의 허영을 향한 감독의 노림수였을까요?



이러한 인테리어 및 소품의 구성 방식은 앞서 보았던 Allen Jones의 작품들처럼, 알렉스를 논란이 많은 시대의 아이콘으로 만들어 내면서, 당시 시대가 가지고 있던 사회적 윤리와 예술에 관한 보편적 규범에 대하여 새로운 논쟁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감독의 의도 중 하나였던 것입니다.


 영화가 내포하는 의미나 서사구조를 보여주기 위한 위의 사례 외에도 영화에는 촬영 당시의 인테리어 스타일을 살펴볼 수 있는 재미있는 사례들이 등장하는데 간단하게 보여드리면



알렉스의 부모가 식탁에 앉아 있는 장면입니다. 오렌지 색 식탁이 보이시죠.

눈썰미가 있으신 분들은 아마도 '어, 저거 회사 카페테리아 같은 데서 많이 쓰는 테이블 같은데' 하실 겁니다.

우리가 흔히 호마이카 라고 부르는 라미네이팅  상판을 적용한 테이블인데요, 20세기 초 Formica사에서 개발한 라미네이팅 기술이 2차 세계 대전 이후 확산되면서 다양한 플라스틱 수지를 고온 압착하는 방식으로 테이블 상판을 만든 제품들이 등장합니다.  대량생산에 적합하고 다양한 색상과 디자인의 가진 베이스 위에 투명한 플라스틱을 부어 굳히는 방식이다 보니 컬러풀하며 저렴한 이런 가구들이 많은 인기를 끌기 시작했습니다.

영화에서도 집의 분위기에 적합하면서 오렌지 색상을 드러낼 수 있는 소품으로 이 제품이 사용된 것 같습니다.


 


실험적인 혐오 요법인 루드비코 요법의 혼란 속에 사회로 돌아온 알렉스가 다시 작가의 'Home'을 방문하고 있는 장면에서 나오는 가구는 'Home'의 주인이 가지고 있는 부의 정도를 보여주는 도구입니다.


Giotto Stoppino의  Glass and Steel Tube Dining Table과 Chair 세트인데요, 미드 센츄리 모던 시대의 가구로 아직도 오리지널 가구들이 고가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아르데코 시대에 시작된 유리와 스틸을 소재로 사용하는 디자인 경향이 시대를 거치며 좀 더 세련되어지고 기술의 발달을 통해 큰 통유리로 전체 상판을 구성하고 있는 제품입니다.

의자 디자인 역시 아르데코 시대에 시작된 steel tube를 구부리는 스타일에서 좀 더 발달한 모습인데, 그 원형은 가구 제조 기술의 새로운 장을 열었던 토넷의 의자에서 모티브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시계태엽 오렌지>에 나오는 가구와 인테리어에 대해 살펴보았는데, 감독인 스탠리 큐브릭의 특징이 영화의 인테리어와 소품 속에도 고스란히 묻어나고 있습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집요하게 원작 소설들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내러티브들을 다양한 장치와 장면을 통해 또는 새로운 촬영기법과 음악을 통해, 언어의 비쥬얼화를 시도하고 있으며, 이러한 그의  제작 철학은, 배우의 연기나 대사(스크립트)만으로 완성시키기에는 부족한 많은 디테일을 영화 속에 새롭게 부여함으로써, 영화에 있어서 미장센의 중요성을 부각하고 있습니다.


한 편의 서커스처럼 극사실적으로 묘사된 한 인간의 삶을 통해, 인간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인격과 인권, 그리고 사회가 가져야 하는 책임과 의무가 욕망, 위선, 허영 등에 의해 어떻게 변질되어 보이는지가 드러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최고의 명작 <시계태엽 오렌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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