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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캐리 Oct 13. 2021

이익준 교수가 장준혁 과장에게. 첫 번째.

우리가 바라는 의사.

코로나 시대를 겪으면서 우리는, 일상이 무너지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게 되었다. 늘 하던 것을 못하게 되고,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은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다. 그리고, 일상이 흔들리는 일 중에 가장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일은 병원에 가는 것이었다.







소위 말하는 '드라마틱'한 장면을 만들기 위해서는 의학 드라마만 한 것이 없다. 인간에게 죽고 사는 문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부분이고,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따라서 병원이라는 장소 역시 무섭지만, 언젠가는 가야 하는 곳이라는 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때에 따라 슬픔과 감동을 동시에 만들어 낼 수 있기에 병원이 배경이 되는 드라마는 오랜 시간 시청자에게, 동시에 작가들에게 사랑받아 왔다. 퀄리티 있는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서는 굉장한 전문 지식이 바탕이 되어야 하고 그를 위해 엄청난 취재를 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지만, 작가들은 언제나 그 모든 것들을 이겨내고 매력적인 의학드라마를 만들어 왔다.

사실, 의사라는 직업은 꼭 장르가 의학드라마가 아니더라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는 특수부대 군인들이 겪는 극한의 상황에서 펼쳐지는 멜로드라마지만, 여자 주인공 직업은 의사다. 드라마 <스카이캐슬>은 자식을 성공시키고 싶은 명문가 사모님들의 욕망을 다룬 드라마이지만, 그 사모님들이 그토록 자식들이 갔으면 하는 곳이 의대이고, 주인공들의 남편은 전부다 의사다. 드라마 <부부의 세계>는 제목 그대로 부부의 사랑과 믿음, 배신을 그리고 있는, 주인공이 의사인 드라마다. 


이렇게 많은 드라마에서 심심치 않게 의사라는 직업이 등장하지만, 우리가 의학드라마를 사랑하는 이유는 병원이라는 공간 자체가 삶의 다양한 모습, 흔히 하는 말로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모인 장소이고, 그에 따라 시대상을 적절히 반영하며 우리 사회의 문제를 잘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아직도 많은 사람이 드라마 <하얀 거탑> 속 장준혁을 기억한다.

(MBC/ 극본 이기원 연출 안판석/ 김명민, 이선균, 차인표, 송선미 등 주연)

장준혁(김명민 분)은 요즘 말로 따지면 흙수저 중에 흙수저 출신으로 성공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가득한 인물이다. 드라마의 큰 줄기가 준혁이 외과 과장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기에 이 드라마는 엄밀히 따지자면 의학 드라마라기보다는 정치 드라마에 가깝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수술 장면을 생각할 때,  빰빰빠라밤, 하는 배경음악과 함께 장준혁이 하얀 수술 장갑 끼는 장면을 떠올리는 것도 사실이다.

장준혁은 분명 자기의 분야에서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실력을 가진 의사이지만 자신을 너무 과신해 잘못된 진단을 내리기도 하고, 실수한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오기를 부리기도 한다. 그는 분명 실력은 있지만 환자를 먼저 생각하는 의사는 아니었고, 추악하고 치열하게 얻어낸 외과 과장 자리에 오르자마자 죽음을 맞이 한다. 나름의 권선징악 결말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가 장준혁을 마냥 미워할 수만은 없는 이유는, 우리도 한 번쯤은 잘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 아닐까. 장준혁 같은 사람은 실제로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 성공을 위해 발악하는 사람. 그것을 위해 자존심까지 다 내려놓는 사람. 그래서 때로는 불쌍하기도 한 사람. 그게 바로 장준혁이다. 


임팩트가 강했던 드라마이기에 <커피프린스 1호점>과 마찬가지로 죽지도 않고 때가 되면 나타나 지속적으로 회자되곤 했다. 2007년에 방영되었던 이 드라마는 지난 2018년에 다시 방영되기도 했는데, 최근 공중파 미니시리즈 시청률이 10%가 나오기 힘든 상황에서 주인공이 죽게 된다는 결말을 모두 알고 있는 이 드라마가 5%나 되는 시청률을 기록했다는 건 씁쓸하기도 하면서 놀라운 일이었다. 역시나 시간이 지나도 명작은 죽지 않고, 잘 만들어진 캐릭터는 잊히지 않는다. 





장준혁이 욕망에 휩싸여 환자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의사였다면, 반대로 환자를 가장 우선으로 생각하는 조금은 비현실적인 의사도 있다.  드라마 <낭만 닥터 김사부> 속의 김사부이다.

(SBS/ 극본 강은경  연출 유인식/ 시즌1 한석규, 서현진, 유연석, 양세종 등 주연/ 시즌 2 한석규, 이성경, 안효섭, 김주헌 등 주연)

<하얀 거탑>에서 장준혁의 라이벌이자 하나뿐인 친구로 나오는 최도영(이선균 분) 또한 절대 환자를 포기하지 않는 의사이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것은 외과이지만, 환자의 일상을 다루는 것은 내과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교통사고가 날 확률보다 독감에 걸릴 확률이 더 크다는 것만 봐도 그렇다. 내과는 삶의 질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지만, 안타깝게도 '드라마틱'하게 수술하는 장면은 만들 수 없기에 드라마 주인공으로 내과 의사를 선택하지는 않는다. 최도영이 딱 그런 케이스가 아닐까. 정의롭지만, 주인공은 아니다.

반면, 우리의 김사부(한석규 분)는 외과 전문 자격증이 무려 3개나 있는 소위 트리플 보드 의사이다. 거기에 더해 그는 곧은 심성과 의사로서의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 수술 실력이 뛰어나고 자신만의 가치관이 뚜렷하다는 것은 장준혁이나 김사부나 마찬가지이지만, 어떻게 해서든 환자를 살리려는 의사라는 점에서 두 의사가 비교된다.


아주대학교의 이국종 교수를 보고 만들었다는 이 캐릭터는 이국종 교수가 집필한 책, <골든아워>에서 느낄 수 있는 그의 고단함이나 피로감을 조금은 빼고 감동적인 면을 더욱 살리려고 노력한 듯하다. 어떻게 돌아가는 세상인지, 배려하는 것보다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것이 잘 사는 방법이라고 여겨지는 사회에서 김사부가 가진 소신은 조금 별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시선은 실제로 이국종 교수가 다른 사람에게 받았던 시선일 것이다.

김사부는 너무 위험해 모두가 말리는 수술을 끝까지 고집해서 해내고, 실력이 출중한데도 뭔가를 더 얻으려고 하지 않고 환자만을 위해 의술을 부리는 사람이며, 가끔은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않고 일만 하는 모습에 주위 사람들의 걱정을 한 몸에 받기도 한다. 이런 그의 행동을 드라마 내에서는 '게멋부린다', 다시 말해 '낭만이 있다',라고 표현한다.





이렇듯이,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인간이 가진 냉정함과 따스함을 극적으로 잘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사는 작가 입장에서는 아주 매력적인 직업이다. 하지만 내가 실제로 만나본 의사들은 완전히 장준혁 같지도 않았고, 완전히 김사부 같지도 않았다. 그들은 그저 냉정하기만 한 이과 공부 쟁이들이라고 하기엔 상당히 다정했고, 감성적인 사람들이라고 하기엔 한껏 무심했다.

아빠가 뇌출혈로 쓰러졌을 때, 나는 세상의 모든 신에게 기도했다. 제발, 최악의 상황은 피하게 해 달라고. 그러나 일단 그 최악부터 얘기하고 본다는 의사들은 역시나 뇌출혈의 부작용에 대해 한껏 늘어놓았고, 수술 후에도 어쩌면 머리를 열고 나올 수도 있으며, 피가 더 안 쪽에도 고여 있으면 시간이 지난 후 재수술을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는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모든 일들이 제발, 우리 가족에게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뿐이었다. 아빠는 완벽한 아빠는 아니었고, 좋은 남편은 더더욱 아니었지만, 그래도 쓸데없이 병원에서 극적인 순간을 맞닥뜨리게 된 남은 가족들은 하나같이 그렇게 '제발'이라는 단어를 되뇌었다.  


대학 병원에서 환자의 주치의는 대부분 흔히 레지던트라고 불리는 전공의들이 담당한다. 나도 이제 나이가 꽤 들어 전공의들이 나와 몇 살 차이 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고, 스스로도 그저 시간이 지나 자연스럽게 먹기만 한 나이에 대한 신뢰도가 전혀 없었으므로, 주치의 말고 직접 수술을 해 준 교수가 직접 아빠의 상태를 조금 더 자주, 조금 더 세세히 말해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대학 병원의 교수들은 너무도 바쁜 사람들이었고, 수술 후에 실제로 환자와 하루 종일 붙어 있는 사람들은 의사가 아니라 간호사 선생님들이었다. 나는 아빠가 병원에 있는 내내 그들의 노고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돈을 받고 하는 일이고, 자신의 직업이라고 해도 다 큰 아저씨의 똥기저귀를 아무렇지도 가는 그들의 일상이 안쓰럽기도 하면서 존경스러웠다. 그러나 그 마음과는 별개로, 아이러니하게 나는 늘 의사의 한 마디가 고팠다. 코로나 면회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늘 아빠의 상태를 전해주는 건 간호사들이었지만 그들이 하는 말보다는 전문지식을 가지고 있고 실제로 수술을 집도한 교수가 어쩌다 가끔 전해주는 괜찮을 것 같다는 말이 그렇게 큰 위로가 되곤 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누가 그랬는가. 환자의 가족에게는 그저 의사의 한 마디가 신의 계시였다. 그리고 신은 완벽해야 한다. 우리로서는 의사들이 좀 더 살갑게 대해주기를 바라는 것이 사실이지만, 웃긴 건 너무 인간적이라 헐랭한 모습을 보여주는 건 또 싫었다. 냉철하면서도 따뜻한, 그 이중적인 모습을 우리는 의사에게 바라고 있었다.








(모든 사진의 출처는 해당 드라마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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