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온한 데이터' 전에 참가한 영국의 작가 '레이첼 아라'
“남성 중심의 환경에서 겪었던 지속적인 성차별을 말하고 싶었다.”
오는 7월28일까지 종로구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3·4전시실에서 열리는 <불온한 데이터>에 참여한 영국인 예술가 레이철 아라(55)는 자신의 출품작 ‘나의 값어치는 이정도’(This Much I’m Worth)를 이렇게 소개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7m가 넘는 전광판에 열한 자리의 숫자가 눈에 들어온다. 25년간 남성 중심의 기술·산업 분야에서 일한 경험 때문이었을까. 총 127개의 네온으로 구성된 전기장치는 컴퓨터, IP카메라, 전선들로 복잡하게 엉켜 있다. 학교 졸업 후 전업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생존을 위해 불가피하게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시간이 이제는 작업에서 중요한 영감이 됐단다. 이 작품은 ‘엔도서’(endorser)라는 데이터마이닝 알고리즘을 사용해 자신의 가치를 숫자로 환산해 보여준다. 계산에 쓰이는 변수는 미술관 등의 후원 여부, 유명한 수집가의 작품 소장 여부, 전시 관람객 수, 페이스북이나 뉴미디어 공람수 등이다.
“지원기관이 어느 작가를 후원하거나 명망 높은 컬렉터가 작품을 소유한다면 그 작가의 가치는 올라가겠죠? 하지만 이런 것을 결정하는 환경도 지극히 남성 중심의 편향적인 특혜입니다.”
작품 가치를 보여주는 붉은 네온사인이 성매매 업소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것은 ‘여성의 상품화’와 관련 깊다. “런던 소호거리의 홍등가에서 본, 여성의 신체를 돈으로 거래한다는 간판에 분노했어요. 이는 미술시장 안에서 여성 작가의 처우가 평가절하되는 상황을 연상시켰죠.”
이 작품으로 한국 관객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지 물었다. “한국 문화, 페미니즘, 가부장제에서 여성 작가가 겪는 어려움을 조사하고 제작했어요.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전 세계 여성 작가가 겪는 공통 문제에 관해 생각해봄으로써 앞으로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 레이철 아라는 런던 골드스미스대학교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했다. 25년간 기술·산업 분야에서 일하며 익힌 기술을 바탕으로 영역을 넘나드는 설치와 조각을 한다. 페미니스트, 성차별, 퀘어에 관심이 높다. 에스테티카 예술상(2016)을 받았으며, 런던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의 레지던시 작가(2018)로 선정됐고, 런던 화이트채플 갤러리, 런던의 복합예술센터인 바비칸 센터 등에서 전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