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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숲 May 19. 2024

큰 비 02

쏟아지는 비는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다다는 며칠 째 집 안에만 갇혀있었다. 하지만 다다의 집에도 빗물이 들어차 고였다. 이제 막 피어난 아카시아꽃이 비바람에 못이겨 떨어지고 꺼멓게 녹아버렸다. 오래 기다렸던 찔레꽃도 마찬가지였다. 바람에 떨어지고 빗물에 녹아버리는 건 꽃들만이 아니었다. 람지는 올 가을 식량이 걱정이었다. 뽀구리는 빗물에 쓸려가는 숲을 바라보며 슬픔에 잠겼다. 공사가 미뤄져서 버드나무 연못은 파헤쳐지지 않았지만 진흙탕이 되어 범람했다. 뽀구리는 날마다 비를 맞으며 앉아 울었다. 친구들이 말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미미미가 번갈아가면서 뽀구리의 곁을 지켜줬다. 미미미는 뽀구리 이마 위에 올라 앉아 뽀구리의 큰 눈에 떨어지는 비라도 막아주려고 애를 썼다. 뽀구리 얼굴에는 눈물과 빗물이 범벅이 되어 흘렀다.


비가 쏟아지는 숲에 어떤 사람들이 찾아왔다. 앳된 여자 둘이었다. 두 사람은 우산도 쓰지 않고 슬픈 표정으로 숲을 살피며 이곳저곳을 영상에 담았다. ‘명품숲’을 예고하는 현수막 앞에서 분통을 터뜨리며 말했다.


“이 기록적인 장마는 기후위기입니다. 이 기후위기는 우리 지구와 더불어사는 모든 생명들의 터전을 헤친 결과입니다. 명품숲? 명품이란 무엇일까요?”


둘은 그 자리에서 이 모든 내용을 SNS에 공유했다. 그 게시물들은 큰 반향을 일으켜 하루도 지나지 않아 조회수가 1만을 넘었다. “숲을지켜주세요”라는 해시태그 게시물이 유행처럼 번졌다. 비가 쏟아지는 숲에 연이어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 사람들은 모두 카메라 앞에서 서서 우산을 접고 서서 인증 영상을 찍어 “숲을지켜주세요”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SNS에 공유했다. 하루에도 수십 명의 사람들이 숲에 찾아와 인증 영상을 찍었다.


사람들의 모습이 뽀구리의 눈에는 눈물과 빗물에 번져 뿌옇게 보였다. 저런 게 무슨 소용이람. 비는 그치지 않는데… 슬픔과 분노 무기력의 어디쯤에서 앉아있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이날도 찾아온 사람들이 비를 맞는 영상을 찍었다. 그런데 한 영상에 뽀구리의 모습이 담겼다. 뽀구리는 두 무릎을 모으고 비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며 울고 있었고, 미미미 삼형제가 뽀구리의 이마 위에 앉아 뽀구리에게 내리는 비를 막아주려 애쓰고 있었다. 미미미의 그 모습은 반점처럼 보였다.


그 인증 영상을 동물학자 고우니 박사가 우연히 보게되었다. 고박사는 그 영상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 개구리는 멸종된 줄 알았던 종 뽀고리가 아닌가!”


고박사는 팔로워가 100만이 넘는 글로벌 유튜버였는데 그날로 당장 영상을 제작했다. “멸종된 줄 알았던 뽀고리가 ㅇㅇ숲에 서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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