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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숲 May 19. 2024

가을

가을이 왔다. 한창 자라고 무성해져야 했던 봄과 여름에 해를 보지 못한 숲은 열매를 많이 맺지 못했다. 람지는 숲을 온통 다녔지만 겨울을 지낼 만큼 알밤을 모으지 못했다. 최대한 힘을 빼고 에너지를 아껴써야 했다. 벌써부터 주린 배를 견뎌야 했다. 하지만 이 겨울을 잘 나리라 마음을 굳게 먹었다.


그래도 숲 친구들의 막걸리 모임은 꾸준히 이어졌다. 외롭고 버거운 나날이었지만 친구들을 만나 맛있는 막걸리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사치스러운 행복이었다.


이른 아침 서리가 내린 어느날, 드디어 두털이가 자신이 빚은 술을 갖고 왔다!

"약속했지? 너희들에게 제일 먼저 맛보여주겠다고. 내가 빚은 막걸리야."


짜릿하게 새큼한 막걸리였다. 막걸리를 마시니 정신이 번쩍 차려졌다. 맛있는 막걸리였다.


"와, 두털아! 맛있어!!"

“상큼하면서 살짝 바디감이 있는데?”

“상쾌한 단맛이 팡팡 터지는데 과일 주스 같아!”

"포도 껍질의 새콤함과 달콤함이 느껴져!”

"두털아, 이 막걸리는 말이야. '맛있는 막걸리'야."

"그래, 이 막걸리에 이름을 붙인다면 바로 '맛있는 막걸리'야!"

친구들은 두털이가 빚어온 이 막걸리가 몹시 마음에 들었다.


"얘들아, 나는 이 막걸리를 계속 만들려고 해."

두털이는 이 술을 앞으로도 계속 만들고 싶었다. 하늘까지 닿을 듯 산뜻한 과실향이 상큼하게 넘실대고 달큼하면서도 새콤한 산미가 매력적인 막걸리. 실은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맛이었다.


두털이는 이 맛을 재현하기 위해 고된 시간을 보냈다. 날이 추워지자 막걸리가 잘 되지 않고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렇게 기다린 막걸리의 맛은 너무 들큰하거나 아님 썼다. 두털이는 지치지 않고 끈질기게 막걸리를 빚었다. "발효 온도를 더 올려보자." "술이 잘 되도록 평소보다 더 자주 저어줘야겠어." "만족스러운 맛이 나오면 재빠르게 식혀 낮은 온도에서 오래 숙성해보면 더 좋아지는 것 같아."


모두 힘든 겨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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