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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숲 Aug 20. 2024

꿈에서 나는 선잠에서 깨 부스스 일어났다. 저쪽에 초등학교 다닐 나이 즈음으로 보이는 소녀 둘이 한 아가를 사이에 두고 놀고 있었다. 그 아가는 내 아이였다. 아가는 엄마가 자거나 말거나 언니들과 노는 데에 정신이 팔려 즐거워 보였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그렇게 어렵다던데, 나는 하나도 힘들지가 않네! 저 소녀들은 누구지? 내가 아니어도 아이와 놀아주는 사람들이 많구나!’


나는 행복에 겨운 탄성을 질렀다. 곧이어 다음 꿈이 이어졌다. 이번에도 꿈은 잠에서 깨는 걸로 시작되었다. 잠에서 깨 고개를 돌려보니 내 왼편에 어느 사랑스런 아가가 단잠에 들어있었다. 그 아가는 내 아이였다! 이번에도 나는 외쳤다.


‘아이를 낳는 일이 그렇게 어렵다던데, 나는 이 아이를 어떻게 낳았을까? 하나도 기억나지가 않아. 이렇게 사랑스런 아이가 내 아이라니!’


황홀하고도 평화로운 꿈이었다. 그 꿈을 꼬옥 간직한 채 시험관 아기 시술을 시작했다.


첫 번 시술을 실패하고 바로 두 번째 시술이 이어졌다. 두 번째는 좀 쉬웠다. 몸의 변화들은 다 경험해본 것들이었고 그래선지 딱히 변화로 느껴지지 않았다. 첫 번에는 아침에 주사 하나면 됐는데, 이번에는 네 개를 맞는 날도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적어도 두 개 이상은 맞아야 했다. 심호흡 크게 하고 후우 - 날숨을 쉬며 주사 바늘을 꾸욱 찔러넣었다. 그렇게들 배에 멍이 든다는데 나는 뱃살이 많아 어디 주사바늘이 들어갔나 나왔는지도 모르겠다고 깔깔 댔는데, 결국은 나도 배꼽 양 옆으로 퍼런 멍이 들었다.


배아 이식 후 열흘, 이 세상에서 가장 느리게 가는 시간. 그 중에 4일 동안 오빠의 딸들 온유와 승희를 우리집에 모시게 되었다. 조심해야 하는 시기라서 변화를 주는 게 맞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조카들이 한창 자라는 3년 동안 떨어져지낸 터라 어떻게든 함께하고 싶었다. 조카들 덕분에 기나긴 열흘 그 중 4일이라도 정신없이 보낸다면 그것 또한 좋은 일이었다.


실은 무엇보다 내심 그 꿈을 떠올렸다. 열일곱 살 온유 열네 살 승희가 나란히 있는 모습에서 꿈속에서 만났던 소녀들을 떠올렸다. 그 소녀들이 사실은 온유와 승희였다고, 이 사랑스런 아이들이 아가를 데려다주었다고, 그렇게 탄생설화를 만들고 싶었나 보다.


아침 점심 저녁으로 정성껏 차려 먹이고 짬을 내 산이며 계곡이며 수영장이며 어울려 놀았다. 무리하는 내게 서른일곱에 아들 윤모를 낳은 언니가 말했다. “나 임신 6주 때 설악산 갔어, 지숙아. 안될 놈은 니가 아무리 애지중지해도 떨어질 거고, 될 놈은 뭘 해도 딱 붙어있을테니까 걱정 말고 하고 싶은 거 다해. 될 놈은 된다!”


결과는 비임신.


“휴대폰 카메라 모드 실행해서 주세요. 사진 찍어 드릴게요~”


찰칵! 찰칵! 간호사가 내 카메라를 들어 찍고있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바라본 벽면에는 뽀글뽀글 비눗방울이 여러 개 포개어진 듯 분열된 세포들이 엉긴 배아 두 개가 크게 확대되어 비춰지고 있었다. 자궁에 안착되기 직전 시험관에서 막 꺼내어질 배아들을 커다란 현미경이 확대해 비춘 것이었다. 별것도 아닌 그 화면을 빤히 바라봤다. 몹시 귀여웠다. 아직 생명이라 일컬어지지 않는 배아. 그래서 두 “사람”이 아니고 두 “개”다.


그 녀석들은 안될 놈이었던 건가…



오늘 세 번째 시도를 위해 찾은 병원에서 주치의는 말했다. “확률은 10%예요. 열 번에 한 번은 된다는 확률이요.” “열 번에 한 번이요? 열 번 하면 될까요?” 환해진 마음으로 되묻는 내 앞에서 의사는 확답을 못한다.


너는 언제 찾아올까? 네가 올 때까지 나는 끝낼 생각이 없는데. 이번엔 운동을 더 열심히 하고 더 밝은 마음으로 씩씩하게 지낼게. 일은 좀 덜 하고 맘 편히 노는 날이 더 많아져야겠어. 잠도 더 많이 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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