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스스로 배에 주사 놓기, 호르몬 과다 투여로 인한 여러 부작용, 수술 보다 가벼워서 ‘시술’이라지만 분명한 통증, 끝을 알 수 없는 시도, 간절한 기다림… 시험관 아기 시술의 어려움을 나열한다면 한참을 받아적겠지만, 나는 일정을 컨트롤할 수 없는 게 가장 힘들다. 바로 다음 내원일 외에는 시술 일정 등 정확한 날짜를 알기가 어렵다.
3-4일에 한 번은 병원에서 몸의 상태를 봐야 하고, 그 변화를 따라 다음 시술 일정이 잡힌다.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건 바로 다음 병원 방문 스케줄 뿐이다. 덕분에 오랜만에 한국에 온 반가운 조카들과 아빠 엄마 언니 가족, 온 가족이 함께 계획한 여름휴가는 취소됐다. 내가 나서서 지리산 계곡 물놀이로 일정을 짰는데, 여행 일정에 난자 채취 일정이 ‘잡힐지도’ 모른다는 예고를 들었다. 그것은 확정이 아니었으나 그날일 수’도’ 있었다. 그곳 지리며 최적의 물놀이 스팟이며 조카들 따로 데리고 나와 캠핑할 계획이며 나를 빼고 보내기엔 무리가 있었다. 결국 계획은 취소됐다. 다행인지 휴가를 계획했던 날짜에 시술이 잡혔고, 길어진 장마가 비를 퍼부었다.
그렇게 한치 앞 밖에 알 수 없는 병원 일정도 예약이 되지 않아 오는 순서대로 진료를 봐야했다. 운이 좋으면 금방이지만 두어 시간을 훌쩍 기다린 적도 있다. 그나마 내가 다니는 평촌마리아병원은 사람이 많지 않은 편이라 이정도지, 어느 친구는 서너 시간은 기본으로 기다렸다고 한다.
모든 일정은 별 수 없이 후순위가 되고 나는 출근 시간이 들쭉날쭉하다. 어디가 아프다 분명한 설명도 못하고 사나흘에 한 번은 병원에 간다고 자리를 비우는 내게 아무도 뭐라는 이 없지만 영 신경이 쓰인다.
이 들쭉날쭉한 스케줄을 성실하게 따르는 것 다음으로 못지않게 힘든 것은 건강한 생활 관리다. 운동, 불포화지방, 식물성 단백질, 비정제 통곡물, 지중해식 식단, 스트레스 받지 않기.
식단과 생활 습관을 더잘 관리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압박하게 된다. 날마다의 운동량이며 매 끼니를 건강하게 챙겨먹고 저녁 식사 이후론 아무것도 안 먹는 이 사소한 일이 참 어렵다. 아침엔 늦잠을 자고 저녁엔 릴스를 넘겨보며 멍하니 누워 하루를 다 보내기 일쑤다. ‘내일부터 잘해야지’라는 결심을 품고 잠들지만 다음날 아침도 늦게 일어나고 허겁지겁 출근해 일하고 집에 돌아와선 30분만 쉬자 하고 누웠다가 3시간을 쉬어버리곤 한다. 날마다의 운동량을 채우는 것도 쉽지가 않다. 많은 난임 전문가들이 통계 결과를 내밀며 등산이나 달리기 같은 과격한 운동은 성공률을 떨어뜨린다며 몸에 부담이 없는 걷기나 요가를 하라고 권하는데 워낙 만만하게 해오던 걸 미루려니 맥이 풀렸다.
챙겨야 할 약이 많고 약마다 ‘아침 공복에’ ‘공복에 물 한잔 마시고’ ‘점심 식후에’ ‘앞뒤 2시간 공복에’ 하는 복용법이 있어 억지로 일정을 세울 수밖에 없기도 하다. 하지만 공복을 지키고 건강한 식단으로 밥 차려먹는 데 신경쓰다가 다른 일을 잘 못챙기기도 한다. 덕분에 내가 건강해지는구나 울며겨자먹기로 다독이다가도 한순간에 무너지고 말기도 한다. 그러면 스스로를 자책하지 않기가 힘들다. 스트레스가 제일 유독하다는데 스트레스 받지 않으려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어떤 인터뷰를 읽게 됐다.
“임신이 되지 않았을 때 실망과 불안감이 생길 수 있지만 이 모든 게 더 행복한 결과를 위한 과정이니까 너무 스트레스 받지 않고 준비 하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임신에 대한 고민은 저희에게 맡겨 주시고 하루하루 행복하게 보내시면서 여유를 가지고 기다리셨으면 해요.”
내 주치의의 인터뷰 내용이다. 깃털(남편)이 운전하는 차 조수석에 앉아 이 인터뷰를 소리내 읽었다. “중요한 말이다!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인터뷰 내용을 유심히 듣던 깃털이 말했다. 마지막 문장을 읽고 또 읽었다. 아직은 낯설은 내 주치의가 어딘지 믿음직스럽게 느껴졌다. 병원에서 알아서 잘 이끌어줄테니, 그저 일상을 편안하게 살라는 다독임으로 들렸다.
8월 중순 두 번째 시술을 실패하고 한 달여 시간이 지났다. 보름 정도 회복기를 가지고 세 번째 시술을 시작했다. 그사이 우리 일에서 가장 바쁜 추석과 두 번의 박람회를 지냈다. 버거운 하루가 누적되며 밤마다 소박한 만찬을 차렸다. 막걸리며 맥주, 소주, 와인을 다양하게 곁들였다. 그게 몸에 더 부담을 준다는 걸 알면서도 이번은 한번 속 편히 느슨하게 해보자는 마음이었다. 먼저는 오늘을 행복하게 사는 일이지. 고생한 하루에 축배를 드는 일도 그중 하나일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