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 살 별이에게 쓰는 아주 늦은 편지-
상담을 공부하고, 상담사로 살아온 지도 어느덧 5년째다.
처음 수련을 받을 때, 한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하셨다.
“상담이 어려운 이유는, 상담이 곧 삶을 나누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중 누구도 ‘삶’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아니잖아요.”
그 말이 오래 남아 있다.
나 역시 지금, 상담이 얼마나 어렵고 버거운 일인지 뼈저리게 실감하며 살고 있다.
올해 나는 한 내담자를 잃었다.
이제 겨우 열여섯, 어린 소녀였다.
그 아이가 스스로 삶을 정리한 일은, 아마 오래도록 내 안에 상흔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 친구를 애도하며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은,
그에게 하지 못한 말을 편지에 담아 보는 것뿐이었다.
그 편지를, 이제야 다시 꺼내 본다.
별아.
선생님은 아직도 실감이 나질 않아.
그래서일까, 지금은 눈물도 잘 나오지 않는다.
아마 선생님은, 너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거라고
당연하게 믿고 있었던 것 같아.
너랑 같이 가려고
맛있는 돈가스집도 미리 알아두었는데,
선생님은 당분간 돈가스를 잘 못 먹을지도 모르겠다.
별아.
장례식장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듯
해맑게 웃고 있는 네 동생을 봤어.
엄마는 너를 더 잘 살피지 못했다며,
내내 스스로를 탓하고 계셨다.
그 추운 새벽, 네가 옥상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외롭고 쓸쓸했을까.
잠든 엄마와 동생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네 모습을
홈캠으로 보았다고,
그 얘기를 하시다가
엄마는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그저 하염없이 눈물만 쏟으시더라.
별아.
오늘 밤에 전주에서
아빠가 널 보러 오신다던데,
네가 그토록 듣고 싶어 하던 말을
아빠에게서 들을 수 있었을까.
너무 많이 늦었지만,
그래도 아빠가 너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꼭 한 번은
해 주었으면 좋겠다.
고등학교에 가면
마음껏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거라며
기대와 설렘으로 눈을 반짝이던 네 모습이
아직도 선해.
새로 맞춰 둔 교복은
한 번도 입어 보지 못하고
그렇게 떠나버렸구나.
너를 겨우 세 번밖에 만나지 못했는데도
선생님 마음이 이렇게 먹먹한데,
너를 사랑하던 친구들과 가족들의 마음은
얼마나 더 애달플까.
별아.
이제와 하는 고백이지만,
네 앞에서 담담한 얼굴로 위로의 말을 건넸다고 해서
선생님의 삶이 아무 고통 없이 평탄하기만 했던 건 아니야.
선생님 인생에도
수많은 괴로움과 슬픔의 골짜기들이 있었어.
어쩌면 선생님도,
네가 살아냈던 그 세계의 언저리 어딘가에
한동안 머물렀던 사람일지 모르겠다.
그래서 더,
그때 너에게 이렇게 말해 주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어.
“별아, 그래도 우리
한 번만 더 살아내 보자.
같이 버텨 보자.”
그 말을,
선생님은 끝내 다 건네지 못했구나.
별아.
선생님이 미안해.
그냥… 다 미안해.
너를 보내고 나서
앞으로 만나게 될 또 다른 ‘별’들에게는
조금 더 따뜻하고,
조금 더 좋은 어른이 되겠다고
선생님은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있어.
너를 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하는 이 다짐이
참 남루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라도 스스로를 다독이며
다시 상담실 의자에 앉아 보려고 해.
네가 그렇게 걱정하던 엄마는
선생님이 할 수 있는 만큼
곁에서 지켜보고, 또 도와 볼게.
너를 잃은 슬픔을
그분의 삶 안에서
조금은 더 잘 담아낼 수 있도록.
네가 있는 그곳이 어떤 곳인지는
선생님도 잘 모르겠다.
다만 부디, 거기에서는
정말 네가 해맑게 웃을 수 있는 자리이길,
마음이 조금은 더 평온한 곳이길
진심으로 바라고 또 바란다.
별아.
오늘은 날이 참 좋았어.
봄이 오려는지,
얄궂게도 햇살이 따뜻하더라.
너는 추운 겨울 새벽에 그렇게 떠나버렸는데,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또다시 봄을 준비하고 있었어.
어제는 선생님이 만나는 다른 친구와 상담을 하다가
그 아이가 아침, 점심을 못 먹었다며
배가 너무 고프다고 하더라.
뭘 먹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너처럼, 돈가스가 먹고 싶다고 했어.
당분간은 피하고 싶었는데,
너의 대신인 것처럼
그 친구에게 돈가스를 사 주었어.
선생님은 끝내 먹지 못했지만.
너랑도 그런 시간이
한 번쯤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선생님은 자꾸만
너에게 해 주지 못한 것들만 떠올라
더 미안해진다.
그래서인지,
너를 떠나보내고 난 뒤
혹시 선생님 마음이 다칠까 걱정해 준 센터에서
좋은 교수님께
상담을 받게 해주셨어.
너를 보내고 나서야
네가 받았어야 할 위로와 돌봄을
오히려 선생님이 받고 있는 것 같아. 이래도 되는 거니?
오늘, 네가 앉았던 상담실 의자를 바라보다가
또 한 번 울컥했어.
아마 당분간은 그렇게,
네가 앉았던 빈자리를
여러 번 바라보며
시간을 보낼 것 같아.
별아.
얼마 전에 카톡에
“오늘 ○○이 생일입니다”라는 알림이 떴어.
알림 창에 뜬 네 이름을 보고,
선생님은 오랜만에
네 프로필 사진을 다시 눌러보게 되었지.
요즘 선생님이 만나는 친구들 중에도
사는 게 너무 버겁고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다고 말하는 아이들이 많아.
그럴 때면 문득,
별이 너였다면 그 친구들에게
뭐라고 말해 주었을지
자꾸 궁금해진다.
지난주에는 그런 친구 한 명에게
다음 주에 선생님이랑
맛있는 점심을 먹자고 약속했어.
그리고 이렇게 말했지.
“그러니까 우리,
그날 점심 약속을 지키기 전까지는
절대 죽는 쪽으로는
결정하지 말자.
일단 그날 점심까지는
무조건 살아 있는 걸로 하자.”
그 일주일 동안
그 아이는 ‘죽지 말아야 할 이유’를
하나씩, 또 하나씩
조심스럽게 찾아보겠지?
별아.
선생님은 내일도,
또 그다음 날에도
네가 앉았던 그 자리에서
또 다른 한 아이를 맞이할 거야.
그 아이를 바라볼 때
선생님 눈동자 안에는
조금은 네 얼굴도 함께 섞여 있겠지.
너를 생각하면서
한 번 더 묻고,
한 번 더 기다리고,
한 번 더 조용히 말해 보려고 해.
“그래도 우리,
한 번만 더 살아내 보자.”
너는 밤하늘에서,
선생님은 이곳 상담실에서,
각자의 자리에서 반짝이며
언젠가 아주 먼 훗날,
서로를 떠올릴 때
“그래도 우리가
잠시라도 만났었지.”
하는 고마움이
조금은 먼저 떠올랐으면 좋겠다.
오늘 밤에도 어딘가에
유난히 밝은 별 하나가 뜨겠지.
그게 네가 잘 지낸다는
인사일 거라고 믿고 싶다.
부디 선생님이 만나는 아이들이
더 이상 하늘에서만 빛나는 별이 아니라,
이 땅에 자기 자리에서 빛나는 별로
오래오래 남았으면 좋겠다.
별아,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