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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in Oct 21. 2021

찰나를 위한 결벽과도 같은

[일상 단상] 연습소리

동생 : 오랜만이에요. 건강은 어때요?

Dain(나) : 많이 좋아졌고 좋아지는 중이고, 너무 반갑네:)



일이 있어서 정말 오랜만에 모교를 방문했다.

그리고 우연히 아는 동생을 만났다. 

동생은 마른 몸이 더 말라있었고, 여전히 본인 몸 만한 악기를 들쳐 매고 있었다.



Dain : 학교는 무슨 일이야? 강의 있었어?

동생 : 네, 보강해주러 왔어요.

Dain : 어찌 지내? 너의 자금 사정 안 궁금하고, 결혼은 더더욱 관심 없으니 빼고 말해주렴.

동생 : ㅋㅋㅋㅋ 알았어요. 안 물을게요. 그리고 그럼 제가 더 고맙죠.



서로의 안부를 나눈 후 함께 교문을 향해가며 이야기를 나눴다.




동생 : 버티고 있어요. 그냥저냥 버텨지고 있는 것 같아요.

Dain : 버틴다라... 진심으로 지지 하마.

동생 : 어렸을 때는 ‘쟤가 나보다 악기를 더 잘하는지 못하는지, 콩쿠르에서 입상을 했는지 안 했는지,

        누구의 제자이고 누구의 줄에 서 있는지 등등이 그렇게 큰 부분을 차지했었는데,

        이런 것들이 이젠 전혀 중요하지 않아 졌어요.

Dain : ..... 늙었네?

동생 : 지금까지 악기를 놓지 않고 있는 모든 음악가들에게 절로 허리가 굽혀지고 머리가 숙여져요.

Dain : ..... 철들었네?

동생 : 그래도 아주 늙은 건 아닌 게 여전히 악기는 부숴버리고 싶어요. ㅋㅋㅋㅋㅋㅋ

Dain : 오, 젊네?


서로 낄낄거리며 걷다 보니 대학생이 된 기분이었다.




Dain : 난 그 큰 악기를 들고 아직도 힐 신고 다니는 당신이 존경스러울 뿐이야.


이런 신소리로 마무리하며 동생을 보낸 후 연습실 앞 밴치에 앉았다.




연습실에서는 학생들의 연습 소리가 들렸다.

코로나 시국이어서인지 토요일이어서인지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그래서 유독 한 연습실의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마침 아는 곡이기도 했고... 


그 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연습실 안의 학생을 향한 진심 어린 박수가 나왔다.

음악에 감동해서? 연주가 훌륭해서?

다 아니었다.

한 음, 한 음을 끈질기게 잡고 놓지 않는, 말 그대로 연습.

그 연습소리에 존경을 표하는 박수였다.


계속 한 음, 그 첫 음만이 들려왔다.

겨우 다음 음으로 넘어가도 한 마디가 최대였다.

다음 마디로 넘어갔음 싶은데, 쉬이 넘어가질 않았다.

무한 반복.


뚝. 


이마저도 그쳤다.

'그렇게도 성이 안차나? 뭐가 그리도 마음에 안 드는 걸까?'

하며 아쉽고 안쓰럽고 할 때쯤

다시 악기소리가 들려왔다.


아까 그 음이, 그 마디가.

결국 나는 자리를 뜰 때까지 완곡을 듣지 못했다.


찰나와 같은 무대를 위한 결벽과도 같은 연습.

(심지어 찰나여도 설 수나 있을지 없을지 모를 그 무대를 위한.)

그 누구도 도와줄 수도 없는, 묵묵히 자신만이 해나가야만 하는 연습의 외로움.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 또다시 연습을 하는 이에게 보내는 박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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