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단상] 예술인도 결국 사회 속 일원일 뿐.
예술은 사람들에게 슬픈 순간, 힘든 순간에 위로를 주는데,
예술가는 슬픈 순간, 힘든 순간에 누구에게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것일까.
# 후배
추석 연휴 어느 늦은 밤, 후배 녀석이 집 근처까지 찾아왔다. 코로나19로 인해 들어갈 곳도 없어 공원 벤치에 걸쳐 앉아 차근차근 말을 시작했다. 다 크다 못해 이제 늙어가는 녀석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더는 음악으로 버틸 힘이 없다고 했다. 걷기 시작할 때부터 음악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해 온 거라곤 음악뿐인데 그 음악을 그만 놓겠다고 하니 오죽 마음이 아팠을까. 얼마나 많은 생각과 결심을 하고 내린 결론인지 아니깐 더 물을 것도 없었고 같잖은 위로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음악을 틀고 조용히 함께 들었을 뿐이었다.
# 긴급자금신청
'음악밖에 할 줄 모르고, 공연은 없고, 돈은 필요하고... 나 어떻게 해야 해요?'
허옇게 질린 아는 동생의 한숨과 같은 질문. 나 역시 딱히 다른 상황이 아닌지라 그 질문에 어떻게 답해줘야 할지 몰라 그냥 입을 다물었다. 다만 노트북을 꺼내어 모니터를 보여주었다. 예술인 긴급자금신청. 동생은 한참을 모니터를 보더니 나지막이 읊조리듯 말했다. '.... 살았다...'
동생은 이 서류, 저 서류 챙겨야겠다며 한층 안심한 얼굴로 돌아갔다.
# 크랙 실버
슈퍼밴드2가 종료된 지 꽤 되었다. 한 팀, 한 팀 귀하게 듣고 보았는지라 어느 한 팀만을 응원하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유독 신경 쓰이게 하는 팀이 있었으니, 이는 크랙실버. 앞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있던 중 보던 프로그램이어서 일 것이다. 메탈 음악이란 장르가 저변에 펼쳐진 장르가 아닌 지라 밴드의 색을 고수하면서 지금까지 음악활동을 하는 것이 결코 녹녹지 않았을 것이라 감히 예상하는 바 더 큰 박수를 보내지 않았나 싶다. 비단 메탈이어서 만이 아니라 예술로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기에, 공연계가 너무도 힘든 시기이기에 더 와닿지 않았나 한다.
기껏 기획했던 공연이 엎어졌단 공연기획자의 말,
축제가 취소되어 적자를 면치 못하게 되었다는 하드웨어팀의 말,
외에도 스치듯, 쏟아내 듯하고 간 많은 말들...
나 하나 보살피기에도 버거운데, 마음 아픈 소리 한마디씩을 하고 가니 나에겐 100마디가 쌓여있었다.
「예술인 복지법」 제2조 제2항에는 '예술 활동을 업(業)으로 하여 국가를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으로 풍요롭게 만드는 데 공헌하는 사람으로서 문화예술 분야에서 창작, 실연(實演), 기술지원 등의 활동을 하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마저도 너무 늦은 2012년, 법적, 사회적 제도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동안 예술인은 사회에서 그 지위와 권리가 규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각지대에 위치되어 있었고, 그 위치가 당연하며 마치 미덕처럼 여겨지기까지 해왔다.
예술인에 대한 사회적 인정과 보호는 아직도 시행단계이다. 예술이란 것이 정의하기 힘든 장르이고, 예술인을 규정한다는 것이 다른 직업군에 비하여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예술은 대중의 관심과 이해가 기반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기에 스스로 또는 예술계에서 인정된다고 해서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술이 우리에게 주는 위안과 위로가 가시적으로, 수치화되어 전해져 오는 것이 아닌 만큼 예술을 설명한다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다. 명료함보다는 모호성과 시대성 등 여러 부가적인 것을 동반해서 겨우 증명할 수 있다. 이러한 예술의 성격을 이해, 공감하지 못한다면 이 사회 속에서 예술인이 설 자리는 없다. 결국 예술가도 사회 속 일원이다. 다만 예술로써 사회를 반영하고 사회인의 감정을 기록함으로 참여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