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석사진기

by 이졍희
못 그려도 많이 그리고, 말이 안 돼도 많이 적고 싶다. 보여주기 부끄럽지만 창피함을 무릅써야 발전할 거 같아서.

즉석 사진기도, 찍는 현장 자체도 오랜만이어서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나는 사진빨이 없어서 카메라를 기피하는데, 그중에서도 이 즉석 사진기는 좀 두렵기까지 하다. 급해서 찍긴 찍는데 엔간히 돈 값을 못하고, 두루뭉술하게 대충 괜찮게 여긴 나 자신을 직시할까 봐. 거울 따위는 범접도 못하는, 아주 직설적이고 적나라하게 나를 보여주는 기계다. 이것이 실제 나라면 가끔 잘 나왔다고 생각한 내 모습은 대체 뭐지? 카메라 오작동인가.


아무튼 이 기계는 웬만하면 못난이로 만들어버리는 지나치게 솔직한 친구다. 특히 그 얼굴광. 백색 조명이 직빵으로 꽂혀 이마와 콧등이 번들대는 사진을 진짜 울면서 제출했던 것 같다. 난 기초 로션과 선크림 외엔 아무 화장도 안 하는 사람이라 입술색도 파리하고, 눈 밑에는 자루가 있어서 22살에 찍었던 즉석 사진을 기억해보면 매우 아프고 굉장한 노안으로 나왔었다. 그때 먹은 충격으로 10년 넘게 컴플렉스에 시달리다가 눈 밑 지방 재배치 받고 입술에 틴트쯤은 묻힐 줄 알게 됐다. 이후에 사람들이 표정이 밝고 건강해 보인다고 하니, 진실을 알려준 기계에게 고마워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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