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 또는 늦은 밤, 내 독서등으로 사용할 생각으로 인터넷서점 굿즈 목록 중 '선셋조명'을 선택했다. 동그란 조명을 비추면 붉은빛 가득한 해 질 녘 동그란 태양이 벽에 나타난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손가락으로 강아지 얼굴, 나비 등의 모양을 만드는 그림자놀이에 열중한다. 아이들의 시선은 구름 속에서 고양이를 발견하기도, 카페 벽지에서 용을 발견하기도 하는데, '동심'이라는 필터가 있다면 빌려 쓰고 다채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첫째가 만든 '그림자 잭오랜턴'
Vincent Bal 작가의 전시회에서도 비슷한 질투심을 느꼈다. 어느 날 차를 마시기 위해 찻잔을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가 그림자에서 코끼리의 형태를 발견하고 소셜미디어에 사진을 공유한 것이 그가 만든 'Shadowology'의 시작이라고 한다. 지난달 동료들과 처음 방문했는데, 우리 모두 각자의 가족들과 함께 다시 전시회를 찾아갔을 정도로 인상 깊고 유쾌하고 재미있는 전시였다. 전시회 출구 쪽에 직접 그림자 작품을 만들어볼 수 있는 코너도 마련되어 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다.
둘째가 만든 '사다리를 오르는 사람'
뛰어난 묘사력, 흉내 낼 수 없는 색 조합 같은 예술적 감각은 없지만 사진이나 그림자를 이용해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떠올려보는 작업의 매력에 홀려버린 나와 몇몇 동료들은 우리만의 작은 전시회를 열어보기로 했다. 일과 시작 전, 점심시간 등을 활용해서 다양한 사진을 찍고 전시한 뒤 각자의 작품을 설명하는 도슨트 해설까지 진행해 보았다.
이 글의 표지 사진은 이 전시회를 위해 찍은 사진들 중 하나인데, 솔방울을 보고 떠올린 고슴도치와 'When a pig flies(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이라는 영어 표현을 결합해서 '하늘을 나는 고슴도치'를 표현한 것이다.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초록색 옷을 입고 푸른 나무들 사이에 숨어 있는 내 사진에 '몰개성화'라는 제목을 붙였을 때도 모두 즐겁게 웃고 진지하게 감상해 주었다.
"When pigs fly는 어떤 일이 일어날 확률이 굉장히 낮고 거의 불가능할 때 쓰는 말입니다. 하지만 사진 속 고슴도치는, 단지 2~3초뿐일지라도 분명히 날고 있어요. 지금까지 내가 예술가가 될 일은 평생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이벤트를 통해 잠시나마 예술가가 되어보니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어요. 글을 쓰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흥얼거리고, 몸이 가는 대로 흔들어 보는 일. 구름과 그림자 속에서 토끼와 거인을 보고 이야기를 상상해 보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요, 우리. 제 작품을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