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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ny C Jan 02. 2019

발음과 노력

<핀란드에서 살아남기 - 1화>

나는 2016년 9월부터 현재까지 핀란드에서 석사 공부를 하며 살고 있는 20대 학생이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수도인 헬싱키가 아니라 Jyväskylä라는 핀란드 중부의 도시다. 

과연 저 도시 이름을 어떻게 발음하는가, 한국에서 대학원 원서를 준비할 때부터 궁금해했었다. 구글 맵에 보면 '이위베스퀼레'라고 표기되어있는데, 절대 현지에선 그렇게 발음하지 않는다.

오히려 '유바스큘라'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그렇다. 한글로 저렇게 표기하고 발음하면 편하다.


하지만 현지 발음은 편하지 않다. 

J는 영어처럼 'ㅈ' 발음이 아니고, 가장 어려운 것은 y의 발음이다. 입술을 내밀어 '' 모양을 만들고 입 속에선 '' 소리를 내야 한다. 한글로 표기하자면 ''와 ''의 사이에 나는 발음이랄까. 이렇게 특이한 y의 발음 바로 뒤엔 ä가 나타난다. 입술을 '' 모양을 만들고 입 속에선 '' 소리를 내는 느낌이다. 한글로는 ''와 ''의 중간이라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러므로 현재 내가 사는 핀란드 도시의 이름을 매우 천천히 이어서 발음하자면 '이유배아스키율래아'라고 해야 할 것이다.


위 글을 읽고 직접 입술 모양을 만들고 소리를 내보면 알 것이다. 현지인 같은 발음을 내기란 참 어렵고 귀찮고 헷갈리는 것임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현지인처럼 발음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싶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다.

나의 본명을 몇 번이고 들려달라 하며 외워서 본토 발음으로 불러주려 했던 핀란드인과 다른 외국 친구들 때문이다. 내 본명은 알파벳으로 표기하면 J로 시작하기 때문에 약 99%의 핀란드 사람들은 내 이름을 처음부터 제대로 발음하지 못한다. 심지어 y도 들어가서 아주 이상한 이름이 되어버린다. 해외에 살면서 영어로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을 가진 사람은 공감할지도 모르지만, 어렸을 때 이런 상황을 대비해서 더 쉬운 'Jinny'라는 영어 이름을 지었다. 영어권 사람들은 '지니'라며 잘 발음하지만 유럽에선 이렇게 짧고 쉬운 'Jinny'도 '이니', '이뉘' 등등 제대로 발음하지 못한다.


나의 이름이 제대로 불리지 못하는 것은 참 슬프고 여러 번 쌓이다 보면 생각보다 짜증 나는 일이었다. 표기법과 발음법이 달라서 제대로 발음을 못하는 상대방을 탓할 수도 없는 일이다. 핀란드인 교수가 출석을 부를 때 조심스럽게 눈치를 보며 내 이름을 잘못 부르면 나는 살짝 포기한 눈빛으로 허탈하게 웃으며 '응, 그게 나야'라고 대답하곤 한다. 하지만 어느 날 그 교수님은 수업이 끝나고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따로 말을 건넸다.


혹시 너의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는 방법을 알려줄 수 있니?


그때 갑자기 깨달았다. 왜 나는 함부로 혼자서 포기를 했을까?

나는 내 이름을 교수님께 열심히 알려주었다. 그리고 교수님은 아직까지도 나의 본명을 제대로 발음해준다.


핀란드에서 친구를 처음 만났을 때도 나를 소개할 때, "나는 한국에서 왔고, 더 쉬운 이름은 '지니'야"라고 하면, 이때 나오는 반응은 여러 가지가 있다.


"아 그래? 오케이. 지니, 만나서 반가워."
"더 쉬운 이름이라니, 하하. 어려운 이름은 뭔데?"
"한국이라~ 북한은 어때?" (... 제일 이상한 부류의 사람들이다.)
"아냐, 네 진짜 이름을 말해줘."


여기서 만약 내가 본명을 말해줬을 때, 상대방이 그것을 제대로 따라 발음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나에게 익숙하지 않고, 불편하고, 귀찮을 수도 있는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것. 그리고 심지어 상대방에 맞추려 노력한다는 것. 나는 이러한 모습을 내게 보여준 사람들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나는 핀란드어를 핀란드인처럼 발음하려고 노력하고 싶다. 열심히 노력을 해도 나만의 억양과 특유한 한국인의 핀란드어 발음으로 나올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와 다른 문화를 존중하고, 소통하고 싶어 하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다. 이것이 나만의 핀란드에서 살아남는 방법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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