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인지부조화: 몸은 한국인데 마음은 핀란드입니다

양육자 역할 수행과 자아 정체성 유지 간의 인지적 불일치 해소 방안

by Jinny C

아이와 키즈카페 바닥에 앉아 30분째 플라스틱 과일을 자르고 붙이고 있다.

“엄마!”라고 아이가 부르며 사과를 주니까, “우와, 맛있겠다! 고마워~”라고 대답하지만, 사실 내 정신은 이곳에 없다. 약 15분 동안 내 마음은 과거 동료들과 치열하게 일하고 저녁밥을 먹던 그때 그 방배동 식당, 그리고 나머지 15분 동안은 혼자 겨울에 여행했던 핀란드 작은 마을의 그 카페를 떠돌고 있다.


아이와 상호작용하면서 놀아줘야 하는 나이부터 부모들이 간간이 보이는 특유의 "영혼 없는 리액션"이 있다. 분명 아이와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지만 부모의 힘없는 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분명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엄마나 아빠를 발견할 수 있다 (아무 생각이 없을 수도 있다). 나중에 커서 아이가 눈치채고 "엄마, 듣고 있어?"라고 되묻는다면 좀 미안하지만 부모로서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게 참 어쩔 수 없다.




이런 상태를 심리학에서는 Cognitive Dissonance, ‘인지부조화’ 혹은 ‘인지적 불일치’라고 한다.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
사람이 두 개 이상의 상충되는 가치, 태도, 믿음, 행동 등을 동시에 갖고 있을 때 경험하는 정신적 스트레스 혹은 불편감

위 키즈카페의 예시를 보면, 엄마라는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나’와, 자유를 갈망하는 본래의 '나’가 충돌할 때 오는 피로감이라고 할 수 있다.

부모의 기초체력과 육아멘탈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네 번째 이야기, 이번 4화에서는 이러한 인지부조화라는 심리적 불편감에 대해 짚어본다.



우리에게는 누구나 이상적인 부모상이 있다. 직접 좋은 예시를 보고 겪어서 '나도 좋은 엄마/아빠가 되어야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반대로 고통스러운 경험을 겪고 '나는 이런 엄마/아빠는 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엔 '부모라면 당연히 이렇게 해야지' 생각하는 게 있거나, 부모로서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것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엄마' 혹은 '아빠'의 역할뿐만이 아니라, 누군가의 '친구', '부장님', '동생', '딸/아들', '이웃' 등 다양한 자아를 갖고 있을 것이다. 이중 가장 중요한 그냥 ''로서의 자아도 있다.


육아를 한다고 이 다양한 자아들이 꼭 부딪히는 것은 아니지만, 육아가 힘들어지면 특히 '부모로서의 자아'와 '나로서의 자아'가 가장 많이 부딪히게 된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사랑(해야)하는 '엄마'니까, '나'라는 존재가 조금 힘들더라도 매일 맛있는 밥을 만들어주고, 조잘조잘 이야기하는 것에 반응해 주고, 어깨 굽어지도록 안아주고, 주말에 데리고 나가 예쁜 것들을 보여준다. 나보다 먼저 내 아이를 웃게 해 주고, 울면 달래주고, 사랑해 준다. 그러다 문득, 나는 누가 이렇게 챙겨줄 것인가, 지친 나 자신을 돌이켜보게 된다.


한 가지 예시로, 핸드폰에 있는 내 사진첩을 들여다보며 느낀 점이 있다.

결혼하기 전후로는 나의 셀카나 남편이 찍어준 나의 사진이 좀 있었는데, 아이를 낳고 사진첩엔 나의 사진이 그리 많지 않다. 최근 사진부터 쭉 내려보면 85%는 아이의 사진이고, 10%는 각종 스크린샷, 그리고 나머지 5% 정도는 남편과 강아지 등 가족의 사진이 있다. 내 카메라로 아이 없이 그냥 나를 찍은 게 거의 1년 반이 넘었다. 애초에도 셀카를 많이 찍진 않았지만, 최근에 다시 한번 나의 시선의 85%는 아이에게 가고 있구나, 하며 새삼 느낀다. 그리고선 들었던 생각은, '이렇게나 계속 아이를 바라봐주었는데, 이제 점점 나 자신도 바라봐줘도 되지 않을까'였다.


이렇게 나는 억지로 ‘아이에게만 집중하는 현숙한 엄마’가 되려 애쓰지 않기로 했다.

왜냐면 '나에게 집중하는 나'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몸은 아이와 놀아주되, 머릿속으로 잠시 휴가를 떠나는 나를 죄악시하지 말자. 이러한 멀티태스킹이자 이중 플레이야말로 육아라는 고립된 경기장에서 선수가 정신력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하는 일종의 ‘심리적 대처 기제’니까. 이렇게 정신을 가다듬어야(?) 다시 아이와 최선을 다해 놀아줄 수 있으니까.



"아이와 놀아주는 '나'도, 여행과 맛집을 즐기는 '나'도, 둘 다 사랑하는 '나'다."





오늘의 체크리스트

□ 아이와 놀면서 딴생각이 날 때, 죄책감 대신 “나를 지키는 상상”이라 여겼나요?

□ 엄마라는 역할과 ‘나’라는 개인 사이의 거리감을 인정하고 스스로를 다독였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