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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재이 Dec 28. 2018

여름에서 봄까지의 여행

김사과 「천국에서」

  김사과의 소설은 확고하지만 불안하다. 꽉 차있지만 결여되어있다. 몽환적이지만 지극히 현실적이다. 그녀의 소설이 이중 잣대로 해석되는 것은 그만큼 그녀가 이야기하고 있는 인간의 모습이, 우리 사회의 모습이 이중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천국에서」는 그만큼 이중적인 의미로 해석된다. 제목인 ‘천국에서’가 마치 ‘지옥에서’와 같은 역설적인 느낌을 주는 것도 그런 까닭일 것이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습은 ‘멀리서보면 희극,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과 다를 바 없다는 작가의 언지일지도 모른다.


상류층, 중산층, 하류층의 삶에 대하여


 「천국에서」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들의 삶의 양식은 다양하고 개별적인 특성 또한 다르지만, 결국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한 구성원으로서의 삶의 질을 평가하는데 있어 사회 계층이 뚜렷하게 나뉘어있다. 상류층-중산층-하류층의 삶을 차례로 열거하여, 그들의 삶의 양식과 가치, 무가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케이가 약속 장소인 가로수길의 까페에 도착했을 때 재영은 이미 그곳에 와 있었다. 창가에 앉아 커피잔을 내려다보고 있는 재영은 언제나처럼 완벽했다. 숱이 많은 짙은 갈색 머리는 어깨 너머로 가지런히 넘겨져 있었고, 살굿빛 블라우스 위로는 값이 많이 나가보이는 가느다란 금 목걸이가 드리워져 있었다. 의자 아래로 보이는 신발 위에는 토리 버치의 금색 로고가 반짝거렸다.

본문 p.121 중에서


그동안 이어져온 부동산 가격의 상승 덕분에 아슬아슬하게 서울 중산층의 생활양식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이제 그것도 끝이었다. 아버지의 퇴직이 가까워오고 있었고, 하지만 저축보다 빚이 더 많았다. 상황은 점차 나빠지고 있었지만 대안은 보이지 않았다. 언제 회사에서 쫓겨나 닭을 튀기거나 커피를 팔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졸업이 한참 남은 케이와 동생에게 앞으로 얼마의 돈을 더 쏟아부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본문 p.128 중에서


 “…(중략)생각해봐. 세상이 교과서대로 생겼으면 아랫집 아줌마는 왜 그렇게 불쌍하게 살다 돌아가셨냐? 우리 아빠는 왜 용역한테 얻어맞아? …(중략)너 때문에, 너랑 있으면 나 삐뚤어진 걸, 평소에는 까먹고 있던 그걸 자꾸 확인하게 돼. 나 존나 초라한 거, 좆도 없는 거, 그런거 자꾸 생각이 나. 그래서 존나 싫어. 미치겠어. 열등감이라고 해도 상관없어. 아니, 열등감 맞아. 나 열등감 존나 많아. 씨발, 가진 거 많은 새끼들 다 죽여버리고 싶어. 근데 참는 거야. 그래봤자 나만 손해잖아.”

 본문p.284 중에서


계층 차이에 따라 그들의 삶의 양식이 다른 것은 당연하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 ‘물질’은 선택할 수 없는, 필수불가결한 존재이다. 소설 속 인물들의 모습을 돌이켜보면, 그들의 삶의 질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 행복감은 찾을 수 없다. 끊임없이 불안해하며 흔들린다. 작가는 이들의 모습을 조명하며 독자에게 질문한다. 물질적인 풍요가 우리에게 주는 가치는 무엇인가?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사유하는 인간에게도, 사유하지 못한 인간에게도 행복은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정신적인 안정감 또한 마찬가지다.   K는 말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안 나와. 당연하다. 거기 답이 있을 리 없다. 시작부터 잘못된 수식이니까.’


자본주의 사회에 대하여


케이는 한국에 돌아온 뒤, 뉴욕에서의 세련된 생활을 그리워한다. 왜 서울의 베이글은 이렇게 맛이 없어? 왜 서울의 커피는 이렇게 싱거워? 왜 우디 앨런의 새 영화가 개봉을 안하는 거야? 왜 사람들은 눈이 마주치면 웃는 대산 노려보지? 왜 서울에는 쎈트럴 파크 같은 게 없어? 왜 동네 공원에서는 재즈 공연 같은 걸 안해? 왜 서울에는 스트랜드 같은 헌책방이 없어? 왜? 왜 서울은 이렇게 후진거야? 그야 한국인들은 아무도 그런 데 관심이 없으니까.

본문p.119 중에서


케이는 한국에 돌아온 뒤, 뉴욕에서의 세련된 생활을 그리워한다. 읽는 이에 따라 케이는 사대주의에 빠진 인물로 조명될 수 있다. 하지만 작가는 이러한 케이의 모습을 서사 속에 투영하여 소설의 초반부부터 후반부까지 시종일관 자본주의에 대해 비관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뉴욕이든 서울이든 마찬가지로 현대에서 자본주의의 삶의 양식이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은 다를 바 없다. 세련되고 근사해 보이는 세계의 이면에 감추어진 것은 자본의 논리이고, 그 속의 개인들은 자본의 논리를 무의식적으로 실천할 뿐이다. 자본주의 사회라는 ‘천국’에서의 삶이 케이를 더욱 무기력하게 만든다. 작가는 소설의 2부에서 직설적인 화법을 통해 자본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을 더 도드라지게 표현하여 현대 사회의 모순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그 여름 케이가 뉴욕에서 경험한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경제적 자유주의의 확산과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서양과 일부 아시아 국가의 중산층 젊은이들 사이에 퍼져나간 삶의 양식으로, 전후 부흥기가 남긴 마지막 한조각의 케이크였다. 즉, 케이를 포함한 이 젊은이들은 20세기에 대량생산된 중산층의 마지막 세대, 혹은 몰락하는 중산층의 가장 첫 번째 세대였다.

본문 p.90 중에서


문제는 남은 날들이 정말로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근미래의 파국은 이제 뉴스조차 되지 못하며, 실제로 몰락의 도미노는 중심부로 확산되고 있었다. 아직까지 오래된 습관을 반복할 수 있는 사람들은 운이 좋은 축에 속했다. 극소구만이 중산층적 삶의 양식을 감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미래가 없는 전략, 다시 말해 아무런 전략도 아니었다. 하지만 미래란 무엇인가? 사람들은 더 이상 미래라는 개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삶은 이미 완벽하게 일회용이 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파산한 삶을 외면한 채 값싼 즐거움으로 도피했다. 여전히 사람들은 습관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고, 차라리 자신의 미래를 은행에 저당 잡히는 것을 선택했다. 그러고는 여전히 자신에게 선택권이 있다고, 자신이 무언가를 선택했다고 믿었다. 하지만 사실 그들은 자본에 의해 세밀하게 계산된, 철저히 규격화된 컨베이어 벨트 위에 누운 채 이동하고 있을 뿐 이었다.

본문p.94,95 중에서


주인공 케이와, 매력적인 뉴욕 여자 써머와 그녀의 남자친구 댄, 가난에 허덕이는 지원 모두 자본주의 시스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언뜻보면 ‘천국’과 같아 보이는 뉴욕에서의 생활도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작가는 후기 자본주의 사회라는 수족관 속에 유영하는 인간들에 대해 비판하며 성찰하고 있다.


여행자의 삶에 대하여


여행은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행위’를 일컫는다. 케이의 여행 목적은 일관되지 않지만, 케이는 늘 여행자다. 뉴욕을 여행한 것이 그렇고, 광주와 인천을 여행한 것이 그렇다. 케이는 끊임없이 여행하고, 끊임없이 흔들린다.


그런데 여행자가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보다도 세상을 일련의 풍경으로 인지하는 것이다. 풍경이 된 세상은 아름답다. 거리에 가득 찬 쓰레기에서 고급 호텔에서 내려다보이는 스카이라인까지, 여행자의 시선 속에서 세상은 공평하게 아름답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여행자는 세상에서 한발자국 떨어져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여행자는 모든 것에서 한발자국 떨어진 채로 이미지로서의 세상을 경험한다. 이미지 너머의 세상을 발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행자는 풍경에 속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는 여행자의 바깥에 위치한다. 즉, 세계와 나는 단절되어 있다. 나와의 연결고리가 끊어져버린 세계는 끝없이 펼쳐진 이미지들, 다시 말해 스펙터클로 환원된다. 이런 상황에서 여행자가 유일하게 집중할 수 있는 것은 유랑적 감각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끝없이 펼쳐진 외부 세계에 압도되어 자아가 소멸에 가깝도록 해체되는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오직 이 경험만이 극단적으로 분리된 세계와 주체를 연결시키는 통로다.

 본문p.92,93 중에서


 본문에서 작가는 여행자가 유일하게 집중할 수 있는 것은 ‘유랑적 감각’이라고 말한다. 소설에서 케이의 의식은 여행을 할 때에도, 하지 않을 때에도 유랑적 감각에 의해 흘러가는 듯 보인다. ‘여행자는 풍경에 속해 있지 않고, 세계는 여행자의 바깥에 위치해있다’는 말처럼, 케이는 그 어느 풍경에도 이질적인 존재이며 세계의 바깥에서 환원되는 모습을 보인다.   케이에게 ‘여행’이란 지루하고 불온한 공기를 환기시킬 수 있는 통로였다. 하지만 결국은 케이의 삶도 여행이다. 삶 또한 끝없이 펼쳐진 외부 세계에 압도되어 자아가 소멸에 가깝도록 해체되는 경험’이다. 여행은 예기치 못한 일들의 연속이며 유동적이고, 이 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특성이다. 삶도 늘 불안하고 일회적이다. 여행과 삶은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늘 공존하고 있음을 케이의 모습을 통해 조명할 수 있다.


케이의 붉게 달아오른 뺨 위로 이른 봄의 투명한 햇살이 내려앉았다. 그녀는 봄이 왔음을 느꼈다. 여름에서 깨어날 시간이었다.


케이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여름에서 봄으로, 봄에서 겨울로 갈 것이다. 역행적이지만 성숙하는 여행. 늘 불안하지만 평온을 찾아 헤매는 여행. 단 한번뿐이지만, 끝도 없이 연속적인 여행. 그것이 우리의 삶이듯이 케이의 삶도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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