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책은 그림책계에 고전이라고도 하겠다. 여러 그림책 강연을 들으러 다녔을 때 빠지지 않았던 그림책이었다. 여러 군데에서 추천받은 이 그림책을 소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처음에 읽어봤을 때는 그림도 내 마음에 들지 않았었고 왜 고양이는 백만 번이나 살았던 걸까? 고양이가 백만 번이나 살았던 데에 대한 이유나 백만 번이라는 숫자, 고양이의 감정에만 집중했었다. 이 책을 샀었지만 과연 사서 봐야 했을 정도였는가? 에 의문이었다. 이번에 다시 이 그림책을 펼쳐보았을 때는 문장 한 문장 한 문장에 집중해서 보게 되었는데 그래도 내 나름대로 처음보단 더 깊이 있게 볼 수 있었던 듯했다. 역시나 여러 번 보고 싶은 소장가치가 있었다.
백만 번이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고양이가 있었다. 회색에 얼룩덜룩한 무늬를 가진 고양이였는데 이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고양이는 뱃사공의 고양이였다. 고양이는 뱃사공이 너무 싫었다. 그렇지만 그 뱃사공은 고양이를 너무너무 좋아하고 사랑했다. 바다에 나갈 때면 항상 데리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고양이가 바다에 빠져 죽었다. 고양이는 울지 않았지만 뱃사공은 고양이를 부여잡고 울었다. 그리고 고양이를 묻어주었다. 고양이는 한 때 왕의 고양이기도, 마술사의 고양이기도 했고, 한 할머니의 고양이기도 했으며 한 여자아이의 고양이이자 도둑의 고양이기도 하는 등 정말 다양한 인생을 살았었다. 그 주인들은 고양이의 의사는 묻지 않고, 고양이를 무조건 좋아해 주고 사랑해 주었다. 그러나 받아들이는 고양이의 마음은 달랐다. 그때 만났던 주인들이 모두 싫었다. 아마 자신의 기분과 의사는 묻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주는 사랑이 귀찮고 싫었던 듯했다. 고양이는 누군가에게 얽매이지 않고 속박당하지 않았던 혼자일 때 비로소 좋아했다. 그때 다른 고양이들이 고양이가 좋아서 선물도 바치고 어떻게든 고양이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했지만 고양이에 눈에, 마음에 차지 않았었다. 잠시 혼자만의 자유를 즐기고 싶었던 고양이였겠지.
그러던 어느 날 고양이는 자신에게 관심이 없던 하얀 고양이를 좋아하게 되었다. 하얀 고양이의 마음을 얻기 위해 백만 번이나 살았다고 자신을 뽐내봤지만 결국 하얀 고양이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있던 찰나에 용기를 내기로 했다.
“네 곁에 있어도 괜찮아? “
이 한마디에 계속 시선이 머물렀던 이유는 그동안 고양이는 백만 번이나 살면서 차고 넘치게 사랑을 많이 받았지만, 그 사랑이 고양이는 싫었었다. 자신이 원했던 사랑이 아니었다. 혹여나 하얀 고양이 또한 자신의 사랑을 원하지 않을 수도 있고, 싫어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었기에 저렇게 물어볼 수 있지 않았을까? 아마 하얀 고양이가 곁에 있으면 안 된다고 했다면 백만 번이나 살았던 고양이는 하얀 고양이를 존중하여 그녀를 떠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한편으로는 도도했던 하얀 고양이의 성격상 고양이의 표현이 싫었지만 싫다고 말은 못 하고 고양이의 사랑을 다 받다가 나중에 죽고 난 후 또다시 태어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존중과 배려에 시선이 머물며 나는 자연히 이 책을 보며 우리 아이가 떠올랐다. 아이에게 나름 사랑을 많이 준다고 표현해주고 있는데 어떤 날은 내 표현이 싫은데 싫다고 말은 못 하고 귀찮고 힘들어도 받고 있는 건 아닐까? 이제 아이에게 무조건적인 사랑보다 때로는 아이를 존중해 주고 배려해 줄 때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네 곁에 있어도 괜찮니?”라고 말이다.
처음에 이 책을 봤을 땐 무조건 나는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이번 생과는 전혀 다른 생을 살아보고 싶다는 희망적인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요즘에 나는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지만 다음 생을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절반으로 줄어든 느낌이다. ‘이번 생 살아봤는데, 굳이 다음 생을 산다고 뭐가 얼마나 달라질까?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라는 마음이 절반 생겼다. 이는 어쩌면 지금의 삶에 엄청난 에너지를 쏟고 있기도 한 거겠지만 한편으론 다음 생에 대한 희망이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음 생을 살게 된다면 고양이가 잠시 좋았던 것처럼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고 길고양이처럼 자유롭게 살아보고 싶다. 결국 고양이가 하얀 고양이를 찾은 것처럼 옆에 누군가가 필요하게 되고 만날 수 있겠지만 잠시만이라도 자유롭게 살아볼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