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다르고 "어" 다른 미묘한 말의 세계
1. 그게 아니라
분명 상대방이 한 말과 내가 한 말은 동일한 말인데, 습관적으로 "그게 아니라~"라는 말을 붙이는 사람이 있다. 마음이 급하거나 상대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때 하게 되는 말이다. 상대방이 어떤 말을 했을 때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면 상대방에게 역으로 질문을 해 상대방의 의도를 조금 더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 좋다. 사실 상대방의 말을 내가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아는 것은 메타인지의 영역이라 말처럼 쉽지는 않다. 의도적으로 질문을 많이 하다 보면 이 메타인지 능력도 향상이 되니, 유효한 질문의 빈도를 지속적으로 높여보자.
"그게 아니라 ~인데요? (X)"
"일리가 있는 말씀이신 것 같아요. 혹시 저는 ~라고 생각하는데, 00님 생각도 비슷하신가요? (0)"
2. 예전에 한 번 말했었는데~
커뮤니케이션의 책임을 상대방에게 넘기려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물론 언제, 어디서, 어떤 건으로 말했었는지 기록과 함께 이렇게 말한다면, 오히려 상대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맥락을 파악하도록 돕는 좋은 행동이지만, 그러한 것이 없이 이 말만 한다면 꽤 치명적이다. 경청이 중요하다고는 하나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 커뮤니케이션은 쌍방이고 의사전달의 책임은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에게 있다. 다만, 그 정도가 꽤 다른데, 듣는 사람보다 말하는 사람에게, 팔로워보다 리더에게 더 많은 책임이 있다. 책임이 더 많은 리더가 이 말만 내뱉게 되면 꽤 치명적이다.
피터 드러커에 따르면 "현대 사회의 지식 노동자는 모두 리더"라고 했는데, 그 이유는 개개인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현대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한다면, 조직 자체가 위태로워지기 때문이다. 면접관이 면접장에서 한 말 한마디 때문에 회사의 평판이 큰 도전을 받는 정보화의 시대이다.
"예전에 한 번 말했었는데, 이 부분 왜 누락된 거예요? (X)"
"0월 0시에 ~에 대한 요청을 드렸었는데, 아직 처리되지 않은 것 같아 리마인드 차 다시 한번 전달드립니다. 확인 부탁드려요! (O)"
3. 언제 말한 적 있어요?
2와 쌍벽을 이루는 말인데 말을 전한 사람에게 커뮤니케이션의 책임을 온전히 넘기는 형태의 말이다. 대화는 상호작용인데 상대방은 분명히 수차례 강조해서 말했지만, 그 끝에 돌아온 답변이 "왜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결정하세요?"이면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상대방이 분명히 말했는데 본인이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 경우 "상대가 말한 적이 있는지" 모를 수밖에 없다는 것에 있다.
"저한테 그렇게 말씀하신 적 있으세요? 왜 미리 말씀 안 하시고 이제 와서 말씀하시는 거죠? (X)"
"아, 그 부분 제가 캐치하지 못했었을 수도 있겠네요. 혹시 관련해서 예전에 전달해 주신 자료가 있다면 번거로우시겠지만 한 번 더 전달해 주실 수 있나요? 제가 확인 후 다시 말씀드릴게요! (O)"
실제로 이전에 상대방이 전달한 적이 없는 내용일 경우 기록을 확인 후 다시 피드백하면 된다.
"00님, 00건 제가 확인해 봤는데. 저한테 전달이 누락되었던 것 같아요! 같이 해결책을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4. 너무 길고 의도가 드러나지 않는 말
모든 정보는 각각이 가지는 가치가 다르다. 경찰서의 콜센터에 걸려온 시민의 긴급한 구조 요청과 우리 집 고양이가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노트북 키보드 위에 올라가 놀다가 입력한 글자의 정보로써의 가치는 분명히 다르다. 그런데 가끔씩 우리는 이러한 정보의 대한 가치의 판단 없이 모든 정보를 flat(평평하게)하게 전달하는 사람을 볼 때가 있다. 몇 가지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1. 정보마다 갖고 있는 가치가 다르다는 아주 중요한 기본적인 사실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거나
2. 본인의 생각을 정리하거나 말로 생각하는 연습이 부족하거나
3. 실제 서로가 생각하는 우선순위가 다르거나
최근까지 MBTI가 유행했는데, 사람들은 누군가가 T(사고형)이냐 F(감정형)이냐에 따라 성향이 다르다며 꽤 흥미로워한다. 나는 스스로 검사해 보면 근소한 차이로 T가 조금 더 높은 편인데(사실 나는 T가 높으면서 F도 높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두 가지 성향이 양립할 수 없는 것일까...?) F성향인 사람은 이 부분에서 강점을 발휘할 수 있다. 앞의 "경찰서의 콜센터에 걸려온 긴급한 구조 요청"을 생각해 보자. 어떤 감정이 드는가? 우리는 감정을 배제하고 업무를 진행하기 쉽지 않으며, 오히려 감정을 잘 활용한다면 우선순위를 판단하는 것에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이 부분은 아주 중요한 부분이에요~. 왜냐하면 ~ 이유가 있기 때문인데, 혹시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하신가요? 필요하시다면 (... 중략...). 말씀드렸다시피 이 부분이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추후에 다시 리마인드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O)"
5. 내 입장은~, 우리 입장은~
- 회사는 기본적으로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주로 경제적인 목표가 중심이 되는 경우가 많다.) 개인에게도 회사에게도 Win-Win 게임이 되어야 조직이 유지되며 성장한다. 둘 중 하나에게만 이익이 되는 경우 그 관계는 필연 오래가지 않는다. 당연히 개인의 입장과 상황도 고려가 되어야 하지만, 이러한 개인의 입장은 기본적으로 확장성이 없다. 어떠한 의견을 관철하려면 조직의 리소스가 소모되고, 사람마다 풀고자 하는 문제가 제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IT 스타트업처럼 회사에 Fit 한 사람이 절실하고 책임강이 높은 인재가 모이는 곳에서는 개인의 입장이 회사의 입장과 꽤 Align이 된다. 개개인이 일하기 좋은 환경이 되어야 회사도 분명 성장한다. 개인도 회사가 성장하기를 원하지, 잘 되지 않기를 원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시스템이 Win-Win 게임으로 짜여 있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괜히 "우리 팀의 입장은~"이라는 말을 사용해서 오해를 살 필요는 없다. 상대방의 관점, 공동의 목표, 비즈니스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말하는 습관을 만들어 보자.
1. "저희 팀의 입장에서 고려했을 때, 이 부분을 이렇게 바꾸면 일이 더 수월해질 것 같아요(X)"
2. "우리 회사의 이번 연도 목표가 생산성 향상인데, 이 부분을 이렇게 바꾼다면 일을 하는 시간이 X퍼센트 정도 줄어들어 생산 효율이 향상될 것 같습니다."(O)
사실 1번과 같이 말한 사람의 상당수는 회사도 함께 고려하여 2번처럼 생각한 후 1번처럼 말한다. 말 한마디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에 신경 쓰지 않아서, 시간만 많이 쓰고 임팩트를 내지 못한다면 억울하기 짝이 없다.
위 말하기 습관의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단순히 말만 바꿔서 될 것 같지는 않은데?"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왜냐하면 커뮤니케이션이 미리 되어 있지 않으며, 정보를 미리 확보해 놓지 않고, 기록하는 습관이 없으며, 급박한 상황만 지속된다면 위의 말하기 원칙이 지켜지지 않을 확률이 아주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행동보다 말이 중요할 수도 있다. 위에서 권장하는 것처럼 말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사람은 자신이 한 말을 지키기 위해 기록도 점차 남기게 되고, 커뮤니케이션의 시점도 빨라질 것이며, 급박한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고민하게 된다. 당장 무엇인가를 바꾸기 쉽지 않다면 먼저 말부터 바꾸어 볼 것을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