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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영신 Dec 16. 2021

[상담자의 다이어리]

할머니의 머리핀


언젠가 시장에서 깐 더덕을 사려고 바닥에 쭈그려 앉은 할머니 앞에 섰을 때였다. 더덕을 까고 다듬느라 할머니의 손은 검은 때가 들었고,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그 손의 끝에서 더덕은 새하얀 속내를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그런 곳을 좋아했다. 단순하고 정교한 행동을 반복하기 위해 정교하게 셋팅된 공간.


Dans l'atelier de Bernard Jeunet / art by Jeremy Price from pinterest


구둣방에서 만나는 거룩한 장인들의 오래된 도구는 오직 한 사람을 위해 길이 들어있고, 하루에 12시간은 족히 엉덩이를 받치고 있었을법한 세월의 흔적이 밴 방석은 주인의 엉덩이 모양을 이미 알고 있는 듯하다. 원하는 모양으로 스티로폼을 깎아 청테이프를 둘둘 말아둔 팔걸이는, 망치질 두어 번 후 팔꿈치를 자연스레 쓰윽 내리면 쾌감이 들만큼 딱 팔을 받쳐준다. 플라스틱 의자 발치에 있는 작은 난로는 신발을 벗어 내밀고서 손을 비비는 손님 쪽으로 돌려놓여지고, 모두가 신을 수 있는 적당한 크기의 슬리퍼가 내밀어지는 공간. 고개를 들어 공간을 둘러보면 작은 달력의 끝은 너덜하게 넘겨져있고, 작은 서랍 속엔 주인의 정확한 분류로 제 자리를 찾아 들어간 못과 나사 따위가 가득한 그런 공간 말이다.


그 날도 그랬다. 더덕 만원어치를 말씀드리고 넋을 잃고 그 공간의 한 사람의 손끝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칼의 손잡이는 어김없이 주인할머니를 위해 천조각이 둘둘 말려있었는데 분명 그것은 손목에 무리를 덜어주는 초개인화된 완벽한 디자인이리라. 손 때 묻은 대야의 귀퉁이는 과감히 구멍을 뚫린 채 적당한 끈이 달려있다. 씻기워진 더덕을 건져두고서 한쪽에 세우기 위한 것인 듯하다. 구멍난 바구니와 그 밑을 받치는 다른 바구니 색과 모양 모두가 짝꿍처럼 조화를 이루고 있다. 더덕을 깎기 위해 모든 것이 다 준비된 작은 세상을 보는 듯 하다. 할머니의 손 놀림도 오차가 없다. 정확한 곳에서 시작해 정확한 곳에서 끝난다.  


@TrashySoda from pinterest


할머니의 머리칼에 꼿힌 헤어핀을 보기 전까지 그곳에서의 모든 가치는 효율성인 것만 같았다. 주름지고 두꺼워진 피붓결, 손의 마디는 굵어져있다. 작업복으로 최적화된 옷은 소매끝이 낡았고, 덧대어 집은 조끼는 할머니의 취향인 잔꽃무늬가 뭉개져 있었다. 다만 한 올 한 올 넘겨진 그 머릿칼에는 할머니의 단정한 성격이 묻어있었고, 머리를 고정해주는 꽃은 화려한 빛깔을 자랑하며 할머니를 하나의 존재로서 완성시켜주고 있었다.


나는 이런 장면이 너무도 근사하고 사랑스럽다. 고되고 거친일에 스스로를 내맡기고 기계처럼 일을 하는 그 순간에도 나를 나답게 하는 취향을 발휘하고 그것을 존중하고 나를 아끼는 대목들 말이다.


우리는 때로 감정에 파도에 휩싸이고, 무너진 관계에 절망하고, 나를 내 버리고 싶은 순간을 경험한다. 그 순에도 보석같이 나를 지키는 힘, 그것은 한 줌의 나에 대한 사랑일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할머니의 머리핀을 기억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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