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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영신 Dec 16. 2021

내 마음의 지도를 갖고

: 한창 클 나이, 스물서른.

때로 몸에 알 수 없는 멍이 들어있었습니다. 덤벙대며 움직이다 어딘가 부딪힌 자국들이었죠. 저에게 그런 것들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손을 살짝 베인 것도 나중에 깨닫곤 했고 가려워 더듬어보면 이미 딱지가 앉아있었습니다. 약간 흉이져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인생을 막 살지도 않았고, 남들만큼 잘 살고 있었으니까요.


수능 시험을 보는 날이었습니다. 여느 날처럼 잠을 자고 먹어도 긴장으로 인해 두통과 소화불량이 생길만한 날이었죠. 오전 시험을 치르고 옆반으로 배정되었던 친구와 점심을 먹기 위해 마주 보고 앉았습니다. 그 친구는 도시락을 풀며 이렇게 말하더라구요. “내가 고기를 먹으면 잘 체해서 엄마가 버섯이랑 채소를 싸주셨어.” 저는 그 말이 그렇게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뭘 먹고 잘 체하더라?’


모르겠더라구요. 저는 저에 대해 잘 몰랐습니다. 무언갈 먹고 배탈이 나도 뭘 먹고 그랬는지 잘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몸살이 나서 앓아누워도 왜 그런지 떠올려보지 않았습니다. 가끔 뉴스에 어느 식당에서 뭘 먹은 누가 복통을 호소했다는 말을 들으면 '그 음식을 먹고 아프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의아했습니다. 반복적인 두통이 있어도 그냥 아픈가보다 여기며 진통제를 먹었습니다. 몸의 신호에 패턴이 있어도 잡아내지 못했던 거죠. 어느 날 또 다른 친구가 “나는 생리 전에 꼭 두통이 있어.” 이 말을 듣고 보니 저도 그렇더군요.


마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떤 감정이 휩싸였을 때, 그 이유를 모를 때도 있었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내 마음의 반응들을 보고 싶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내 마음에 대해, 나의 행동에 대해, 나의 반응들에 대해  그 이유나 작동하는 방식을 잘 알지 못하니 자신을 돌보기 어려웠습니다. 상처를 보지 않으면 치료할 수 없고, 왜 다쳤는지 알지 못하면 다시 다칠 수 있으니까요. 저는  '내 마음의 지도'가 없었습니다. 무엇이 취약한지, 어디에 울타리를 치고, 언제 문을 열 수 있는지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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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몸에 대한 이해와 연결고리들은 하나의 ‘돌봄의 증거’입니다. 이것은 비단 신체에 대한 이해 뿐만 아니라 마음에 대한 이해와도 관련됩니다. 자신이 어떤 환경에서 잘 집중할 수 있는지 적극적으로 찾고, 자신의 몸이 쾌적해하는 온도나 습도를 어떤 향을 싫어하고, 무슨 맛을 즐기는지 알고 추구하듯, 내 마음에 대해 알아야 자신을 돌보고 좋은 컨디션에 데려다 놓을 수 있습니다.   


세심한 돌봄이라는 것은 그저 잘 먹이고, 잘 재우고, 잘 씻기는 것이 아닙니다. 가령 아이가 떼를 쓰거나 불편해 보일 때, 부모는 기저귀를 살피거나, 배고플 시간인지 확인하고 자녀의 불편을 해소해 줄 수 있습니다. 이것은 부모가 부모 입장에서 아이를 바라보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대처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부모들은 보태어 이렇게 합니다. “아이고, 기저귀가 젖었구나. 그래, 더운 날인데 기저귀까지 젖으니 기분이 안좋았구나.” 이런 부모들은 대개 자녀를 잘 관찰하고, 관찰한 것을 혼자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말로서 자녀에게 돌려줍니다. 이것은 부모가 부모 입장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입장이 되어 공감하고 이해하는 것에서 나오는 반응입니다. '이럴 땐 네 마음이 이럴 수 있지'와 같은 말들은 비단 어떤 정보가만 가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 대한 이해와 수용의 폭을 넓혀주고, 동시에 안도감을 줍니다. 보다 광의적인 돌봄이 이런 것입니다.


“누구야, 너는 꼭 에어컨 바람을 직접 쐰 날은 열이 나더라.”

“누구야, 너는 어릴 때부터 걱정되는 일이 있으면 엄마옆에 와서 꼭 붙어 앉던데..오늘 그러네? 무슨 일이 있니?”


이런 식으로 원인과 결과를 연결지어주고, 마음을 읽어줍니다. 이것은 장차 아이가 자신의 신체와 마음을 이해하는 지도가 됩니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마음을 느끼고,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알게됩니다. 또한 부모가 준 것들 중에서 어떤 것은 맞고 어떤 것은 틀리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이 중 마음에 대해 인과관계를 알고 이해하는 것을  정신화라고 부르는데요. 개인의 욕망, 감정, 신념과 같은 주관적 심리상태(subjective mental states)를 기초로 자신과 타인의 행동의 의미를 이해하는 능력(Fonagy & Bateman, 2007)입니다. 정신화는 자신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타인의 마음도 같은 방식으로 작동할 것을 짐작하게 한다는 데에서 인간에 대한 직관적 이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상담을 하다보면 정신화 태도가 부족한 내담자들을 쉽게 만납니다. 정신화의 부족으로 인해 드러나는 문제는 대개 두 가지 정도입니다. 하나는 자신의 마음에 대해 영문을 몰라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몸에 멍이 들었는데 어디서 멍이 들었는지 알지 못하듯, 어떤 상황에서 감정적인 반응을 격하게 하는데 당사자도 왜 그런는지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타인의 드러난 행동이나 표현 등에서 아주 협소한 의미만을 읽어내는 경우 등입니다. 


아직 내 마음의 지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지금부터 조금씩 자신에 대해 알아가보세요. 단지 음식이나 패션이나 영화나, 커피에 대한 취향부터 시작해도 좋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자신 옆에 더 붙어서서 스스로를 배우고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세요. 어느 순간 보다 선명하게 '내 마음의 지도'를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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