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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복다복 Dec 31. 2021

물이 안 나오는 아침

아침에 일어나니 물이 나오지 않았다. 지난밤은 영하 15도. 가장 추웠던 날. 수도가 얼은 것이다. 이런 일에 참 서툰 남편은 집주인에게 전화를 하곤 출근을 했다. 겨울 아침 아직 밖은 깜깜하다. 


물 안 나오는 집에 어린아이 둘과 내가 남겨졌다. 나도 출근을 해야 하는데 씻는 건 당연히 못하고 화장실 쓰는 것도 겁이 난다. 변기에 물이 남아 있으니 한 번은 물을 내릴 수 있다. 아이들에게 물을 내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였다. 아이들이 화장실을 쓰고 마지막으로 내가 쓴 다음 물을 내렸다. 아이들 물병에 물은 정수기에 남은 물을 넣어 주었다. 고구마를 씻지도 않고 에어프라이기에 넣고 돌렸다. 손도 씻지 못 한채 껍질을 까 먹였다. 그리고 학교로 어린이 집으로 보냈다.


집에 물이 나오지 않는 건 나에게 큰 불안을 준다. 안전하고 편안해야 할 집이 사라졌다. 불편하고 무섭다. 물이 안 나오는 집에서 어떻게 아이들을 키운단 말인가. 씻을 수도 없고 화장실도 갈 수 없는데. 설거지를 못 하는데 이 집에서 어떻게 아이들을 먹인다는 말인가.


씻지도 못한 채 출근을 해선 내 비밀을 숨겼다. 씻지 못한 나를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 집의 비밀을 아무도 모르기를 바랐다. 물이 안 나오는 우리 집은 나에게 가장 큰 약점이 되는 것 같았다. 내 불안을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기를 바랐다.


오늘의 나처럼 집의 비밀을 숨기고 학교에 온 어린 나가 있었지. 하루 종일 불안을 숨기고 여러 아이들 속에서 숨어 지내는 어린 내가 있었지.  우리 집은 안전하지 않다. 나를 지켜주고 보호해 줘야 할 부모가 늘 싸우고 있다. 부모의 싸움으로 우리 집이, 내 삶이 무너질지도 모른다. 나는 도망가야 했지. 더 안전한 곳으로 내 비밀을 숨기고.  다른 아이들과 같아지려고 애썼지만 그 불안을 갖고는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느끼고 생각할 수 없었지. 예민하게  놀라 도망치는 짐승처럼.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서서. 정작 알아야 할 것은 알아차 지리 못하고 엉뚱한 반응을 하면서 애써고 있었지. 


크고 시끄럽고 사람 많은 학교에서.

홀로 그렇게.


지금의 나처럼

어린날 나처럼


전문가 아저씨들이 몇 시간을 고생하셔서 수도를 고쳤다. 얼어 있는 수도관을 녹이는데 꽤 많은 시간이 들었다. 퇴근 후 한두 시간 정리 끝에 우리 집은 다시 안전하고 편안한 곳으로 되었다. 나는 내 불안이 아이들에게 전해졌을까 봐 걱정하였다. 

"물이 안 나와서 걱정했어?" 

"응."

아이들의 불안은 날아갔다. 부디 남아 있지 않고 가볍게 떠나갔기를 바란다. 내 어린 시절을 떠났고 그 불안에서도 떠났다고 물이 안 나오면 그것을 고쳐줄 전문가를 부를 수 있다고 나 자신을 안심시킨다. 나는 다시 불안의 비밀을 안고 살아갈 필요가 없다. 우리 집은 안전하고 편안하다. 그렇다. 그렇다. 내 아이들의 불안을 날려 보내듯 어린 나의 불안을 날려 보내고 싶다. 흔적도 없이 날려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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