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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복다복 Jul 28. 2021

숨, 긴 숨

한글 배우기

오빠는 한글을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다 깨쳤단다. 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나는 가르쳐 주어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였다. 빨리 이해하지 못했고 잘 배우지 못했다. 학교 들어가기 전 엄마에게 한글을 배웠다. 그 시간이 너무 무서웠다. 늘 엄마에게 야단 맞고 울면서 끝이 났다. 나는 못 하는 아이였고 못 했기에 야단맞았다.

초등학교 1학년 어느 날이었다. 학교 선생님이 숙제를 내주셨다. 애국가를 4절까지 써 오라고 하셨다. 엄마는 엄마가 애국가를 불러 줄 테니 받아 적으라고 하였다. 숙제는 받아쓰기 숙제가 아니었다. 그냥 쓰기만 하면 되는 숙제였다. 1절은 몇 번 틀리긴 했지만 그럭저럭 받아 적었다. 하지만 받아쓰기 틀릴 때마다 엄마는 화를 내었다. 문제는 2절 처음부터였다. 나는 애국가 2절을 처음 들어 보았다. 엄마가 '남산 위의 저 소나무'라고 말하였을 때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알고 있는 '젖소'나무라고 생각했다. 나는 '저'에 받침을 썼다. 내가 어떤 받침을 써도 엄마는 틀렸다고 화를 냈다. 그러면서 내가 공부상으로 쓰고 있는 플라스틱 둥근 상을 막대기로 내리쳤다. 틀렸다고 해서 또 다른 받침을 쓰면 또 엄마는 막대기로 상을 내리쳤다. 엄마가 막대기로 상을 내리칠 때마다 그 플라스틱 상은 조각이 나서 부서졌다. 나는 지우개로 같은 곳을 계속 지우고 다시 썼다. 어떤 것을 써도 맞는 답이 아니었다. 내가 쓸 때마다 엄마는 상을 내리쳤다. 상은 조금씩 조금씩 부서져 나갔다. 울면서 썼다. 소리 내서 울면 또 야단맞으니까 울음을 참았다. 하지만 참아도 울음은 계속 비져 나왔다. 공부상은 거의 다 부서졌다. 상다리도 하나 날아갔다. 내 공책 하나만 겨우 놓을 수 있었다. 무엇이 답인지 모른 채 꺽꺽거리면서 울고 있는 나만 있었다.

사람들이 경험한 어떤 것들은 몸의 세포 안에 기억된다고 한다. 그래서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은 트라우마가 연상되는 상황에서 감정이나 생각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것이다. (몸은 기억한다/베셀 반 데어 코르크/을유 문화사) 그때 그 상황들은 내 몸에 어떻게 기억되어 있을까. 어떤 답도 찾을 수 없었고 무엇을 쓰더라도 야단맞았고 편안하게 울 수도 었었던 그런 상황. 나는 숨을 멈추었다. 내 몸이 기억하는 감각이다.

멍 때리면서 TV 동물농장을 보고 있었다. 비가 많이 와 창고가 무너진 바람에 흙더미에 묻힌 강아지들이 일주일 만에 구조된 사연이 나왔다. 어미 개가 시끄럽게 짖었고, 그 근처를 파자 놀랍게 강아지들이 살아서 나왔다. 어린 강아지들은 거의 일주일 동안 아주 적은 공기고 살아남았다.

나는 강아지들처럼 잠시 숨 쉬기를 멈추었던 것이 아니였을까. 그렇게 해서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던 순간을 살아남았던 것이 아니였을까. 숨을 멈추었던 순간이 아마도 내 몸은 기억하고 있겠지.

첫째가 7살. 아이는 한글에 관심을 보이고 읽으려 하였다. 길에 보이는 '다이소, 주차장' 이런 글자들을 읽었다. 그래서 어느 엄마들처럼 한글 교재 몇 권을 사서 아이와 함께 공부하기로 하였다. 하루에 15분만. 내가 의욕이 조금 앞서기는 하였다. 아이에게 이것저것 가르치고 싶었다. 한 달 정도 하고 아이는 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학교 들어갈 때까지 나와 함께 한글을 배우려고 하지 않았다. 모든 한글 교재를 싫어했다. 나는 답답하고 조바심이 났지만 참았다. 기다린 것도 아니었다. 그냥 참고 참았을 뿐이다. 아이는 아이 나름의 방법으로 한글을 익히고 있었다. 답답했다. 자음과 모음의 조합으로 익히면 금방 배울 텐데. 아이는 원하지 않았다. 나는 늘 조바심이 났다. 아이가 조금 더 빠르게 글을 읽었으면 했고 공부에 뛰어난 모습을 보였으면 했다. 하지만 아이에게 공부를 강요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내 이성이 나를 눌렀다. 한글을 배우는 거 때문에 아이를 야단치거나 하면 안 되었다. 어린 시절 나처럼 아이는 무서운 경험을 해서는 안된다. 편안하게 자연스럽게 아이의 삶을 살아야 한다. 결국 나는 두 가지 상반된 기대를 아이에게 하고 있었던 거다.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공부를 잘하기를, 또 다른 한 편에서는 공부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기 않기를.

아이는 받침 있는 글자는 잘 모른 채, 글도 겨우 더듬더듬 읽는 둥 마는 하고 학교에 들어갔다. 아이가 입학하던 해 코로나로 학교에 거의 가질 못했다. EBS에게 배우는 한글을 더뎠다. 읽기도 쓰기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한글을 배우리란 기대는 무너졌다. 답답한 1학년이었다. 아이가 2학년이 되어 학교에 날마다 가면서 읽기, 쓰기 문제는 그제야 해결이 되었다. 맞춤법은 다 틀리지만 그럭저럭 쓰고, 그럭저럭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처음에 기대한 만큼은 아니었지만 아이는 잘하고 있다. 본인이 원하면 제법 긴 책도 혼자서 읽고 혼자서 끄적끄적 무언가를 쓰기도 한다. 심지어 책을 쓴다고 제법 길게 무언가를 쓰기도 한다. 내가 도와서 한 것이 아니다. 학교를 다니면서 스스로 깨쳤다.

아이에게 내 조바심과 답답함을 대 놓고 드러낸 적은 없었다. 아이에게 한글 공부를 강요한 적도 없다. 하지만 아이는 늘 나와 살을 부비는 사이다. 내가 참고 있는 동안 내가 참고 있는 숨을 느꼈겠지. 내가 숨 쉬지 않으면서 아이에 대한 조바심을 드러내지 않는 것을 아이는 몸으로 느끼고 있었을 거다. 그래서 더 고집부리고 나와 함께 공부하지 않으려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는 아이 나름의 숨을 찾았다. 나와 함께 공부하는 대신 자기가 원하는 속도로 원하는 방식으로 배우고 익혔다.

8살 나는 옳은 것을 쓰지 못해 숨을 참고 있었고, 이제 내 아이가 그때 나와 같은 나이가 되었을 때, 아이에게 옳지 않은 것을 할까 봐 숨을 참고 있다. 현명하게도 내 아이는 숨을 참는 엄마를 보고 배우지는 않았다. 더 잘해야 한다는, 더 빨라야 한다는 내 조급함을 배우지 않았다.

후-----.

긴 숨. 살아있는 모든 것이 들이쉬고 내 쉬는 숨. 그리고 그 숨의 속도에 따라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길. 편안하게 숨 쉬면서 내 몸의 기억을 바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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