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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느리 Apr 13. 2023

할머니가 보고 싶던 날

할머니와 피자


목요일 퇴근길, 내일은 쉬는 날이다! 들뜬 마음으로 차에 올라 누구에게 전화를 걸어볼까 잠시 생각에 잠긴다. 보통은 엄마, 아빠, 어머님.


오늘은 할머니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지난 몇 달간은 전화를 드리지 않았었다. 찾아뵙지 못하고 안부전화 한 통 드리지 못했던 게 죄송해서 더 멀리했던 우리 할머니.


"느리야!"


여든이 넘은 할머니는 기운 없는 목소리로, 하지만 반갑게 전화를 받아주셨다.


"할머니, 아파? 잘 지내?"


"아프지. 무릎이 아파서 누워만 있고, 피부에도 뭐가 나고, 달팽이도 어지럽고."


가슴이 미어졌다.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어서. 나이가 들어 몸이 아픈 할머니에겐 봄날의 예쁜 꽃도 꼭 슬픔 같을 것 같았다.


"애기는 잘 크고?"


"응! 학교에서 친구 엄청 많아!"


할머니는 그제야 희미하게 웃으셨다.


결혼 전, 나는 할머니와 10분 거리에 살았었는데, 할머니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맥주 한 잔 하고 싶을 때 불러낼 친구가 단 한 명도 없었었던 나. 그럴 때마다 나의 동행이 되어준 고마운 내 할머니.


우리는 단대오거리역 오빠닭에서 치킨을 뜯고, 신흥역 59 피자에서 피자도 먹고, 치어스 가서 치킨에 맥주도 마시며 수많은 저녁시간을 함께 보내곤 했었다.


"할머니! 피자 좋아하지? 피자 시켜줄까?"


"아니 괜찮아. 돈 쓰지 마."



언제나 돈이 걱정인 우리 할머니. 할머니 좋아하는 피자 시켜드린다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익숙하지 않은 배달앱을 깔고, 할머니네 주소를 어디다 입력해야 하나 한참 헤맨 후, 어떤 피자집에서 피자랑 스파게티를 주문했다.


한 시간 후, 음식이 왔다고 고맙다는 할머니의 전화를 받고 나는 또 죄송한 마음을 느꼈다. 고작 피자하나 보내놓고 나는 착한 손녀야 하는 비겁한 마음이 들어버릴까 봐.




잠자리에 션이와 함께 누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오늘 태권도 끝나고 19층 할아버지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는데, 휠체어를 가지고 어떤 할머니를 차에서 내려서 태웠어. 내가 할머니 어디 아파요? 물어봤는데 할아버지가 할머니 무릎이 아프대."


동네 어르신에게 말을 걸었다는 것이 신기한 것도 잠시, 할머니 생각이 나서 오늘의 이야기를 아이에게 들려주었다.


지금 션이가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듯, 엄마도 그런 사랑을 할머니에게 받았었다고. 그런 할머니가 연세가 많이 들어서 많이 아프시다고. 우리가 외국 나가 있을 때 할머니가 떠나지는 않을까 걱정이라고.


"에이 20년은 더 살겠지! 100살까지 살 수 있으니."


션이는 한참 동안 나이와 관련된 수많은 질문을 던졌다. 할머니 연세, 나와 할머니의 나이차이, 엄마가 85살이 되면 자기는 몇 살인 건지, 인간은 언제부터 할머니 할아버지인 건지.


"늙는다는 것은 참 슬픈 것 같아. 그런데 모든 인간은 언젠가는 늙게 된단다. 우리 할머니도 예쁜 소녀였던 적이 있었을 거야. 젊고 아름다웠을 때 할아버지를 만나 결혼도 하셨고."


"엄마 울어?"


"응... 근데 슬퍼서 우는 건 아니야. 사랑눈물이야. 너무 사랑해도 눈물이 날 수가 있거든."


션이는 우는 나를 달래주거나 안아주지 않았다.


"이제 그만 말해."



감성적인 엄마와 달리 우리 션이는 단단한 심장을 가졌나 보다.


할머니가 보고 싶은 밤.


"할머니 나 중국 가는 거 알지?"


"들었지. 이서방 회사에서 가라면 가야지."


"할머니 보고 싶겠다."


"나는 괜찮아. 애 잘 키워~"


아까 통화 중 할머니와의 대화가 마음에 콕 박혔다.


애 잘 키워.


십여 년 전 할머니랑 같이 피자를 먹던 날, 그 소소한 일상이 이렇게 소중하고 그리워질 줄은 몰랐다. 정말 꿈에도 몰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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